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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폭발사건, 왜 '사기도박자'만 처벌받아야 하나요?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1. 5. 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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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폭발사건, 왜 '사기도박자'만 처벌받아야 하나요?

 

정성일 기자가 드립니다

 

지난 주에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제폭탄'이 연쇄 폭발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제폭탄을 이용한 공중장소에서의 '테러'행위가 일어난 건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일어난 폭발사건 이후 25년만이었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저희 기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의 테러행위가 아니냐"라는 추측에서부터 "폭발한 부탄가스통에서 '1번'이라는 글씨가 발견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 사건을 보면서 양극화 심화 등 민중들이 처해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극심하게 어려워지면서, 좌절한 사람들의 분노가 무차별 대중들에 대한 테러행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무차별대중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행위를 벌이는 양태가 우리나라에도 등장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비슷한 예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92년 LA폭동이라든지 2년전 프랑스에서의 폭동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전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들 사건은 시작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분노 표출이었지만 통제가 불가능해지면서 갈수록 무질서한 폭동으로 발전한 사건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과 같이 '먹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무차별적인 폭력행위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사회는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20대들이 폭동을 일으킨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가 되어 가고 있으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결과는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이런 '과도한' 추측이 들어맞은 것은 아니니까요.

 

경찰은 이번 사건은 주식시장에서 큰 손해를 본 40대 투자자가 선물시장에서의 수익을 얻기 위해 주식폭락을 유발하려 한 범죄라고 발표했습니다. 사건 당일이 선물옵션 만기일이었고 이날 주가가 폭락하면 풋옵션에 투자했던 해당 용의자는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의 이 같은 발표를 보면서 저는 또 다른 문제의식이 들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해당 용의자의 잘못으로만 돌려버려도 되느냐하는 문제의식입니다. 이번 사건을 국가가 만든 '합법적 도박장'이 유발한 범죄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주식시장은 일정 정도 도박성이 있지만 순기능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식가격이 올라갈 것인지 내려갈 것인지를 놓고 거래를 하는 선물시장 등 파생상품시장은 기본적으로 도박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관투자자 등 이른바 '큰손'을 제외하고 나면 개인투자자들이 이 시장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큰손'들도 제대로 예측을 못합니다. 최근 SK 최태원 회장이 선물시장에서 1000억원의 손해를 입은 일도 있었을 정도죠.

 

원래 파생상품은 투자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일종의 '보험'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한탕을 노린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래서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파생상품시장을 '여의도의 강원랜드'라는 말도 나돈다고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주식시장 규모는 세계 17위에 불과하지만 파생상품시장은 세계 1위라고 합니다. 결국 '거대한 도박장'을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도박장'에서 일어난 범죄행위에 대해 해당 범죄자만 처벌하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도박장에서 사기도박을 한 사람만 문제고 '하우스'를 개설한 국가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국가 자신은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정의롭게 살 것을 강요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요?

 

앞으로 다가오는 2012년 대선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면서 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민중의소리 정성일(soultrane@vop.co.kr)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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