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글밭 2011-299
그 밥이 그 밥아이가
박 종 국
세월 참 빠르다. 새해를 연사흘 남겨 둔 시점이다. 해맞이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방학이라 교실 정리를 했다. 책꽂이에 빽빽한 책을 펼쳐본다. 대부분 문우가 보낸 책들이다. 더러 출판사에서 리뷰를 부탁하며 증정본으로 보내 온 것도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까지는 서점에 들러 쏠쏠하게 책을 샀으나, 올해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나부터 이러니 자그만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는 이유가 아닐까.
송년모임에 갔더니 한 친구가 푸념을 해댔다. 그는, 지지리도 꼬여드는 생활에 와락 불 지피는 셈 꿍쳐 두었던 돈으로 죄다 로또복권을 샀지만, 고약스럽게도 본전치기도 안 됐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위로 삼아 소주 한 잔 권했더니 이제 손가락 빨게 됐다, 고 한다. 나 역시도 요즘 지갑이 가벼워졌다. 탈탈 털어봤자 친구 술 한 자리 살만큼도 안 된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달마다 월급을 받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사그라지고 만다.
술자리 익어가자 다들 가슴에 묻어뒀던 속내를 까발렸다. 그냥 칼바람이 헤집고 드는 포장마차, 달랑 돼지껍질 한 접시 놓고 벌써 많은 소주를 축낸 시간이었다. 망년회한다고 기분 좋게 모였지만 서로의 형편을 듣다보니 어쩌면 다 속앓이가 같을까 싶어 씁쓸했다. 그릇된 정치와 불황의 늪이 열심히 사는 서민들의 잔잔한 희망마저 깡그리 빼앗아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더더구나 좌중의 몇몇은 지난 삼십년 동안 손때 묻은 직장마저 내놓아야할 처지다. 말이 좋아서 퇴직이지 강압적인 해고다. 우리 나이 한 사람 임금이면 모든 일 쥐락펴락할 만큼 능력 있는 젊은이 둘 셋은 충분히 대체한다는 논리다. 친구는 청춘을 다 바친 결과가 너무 허망타고 마른 눈물을 삼켰다.
그때 텔레비전 뉴스에 이 땅의 훌륭한(?) 정치가들의 동정이 보도됐다. 화면 속의 그들은 꽃다발을 들고 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골빈 새끼들, 대체 하는 짓이라곤 오직 제 밑 닦는 일밖에 없어. ×같은 자슥들.” 누군가 대뜸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래, ×같은 새끼들, 만날 씨부러 봤자 그 밥이 그 밥아이가.” 좌중의 입이 거칠어졌다. 그 말에 나도 쌍소리를 나불거렸다. 근데 요즘 뉴스는 왜 하나같이 염장 지르는 이야기들뿐이냐. 우리의 술자리는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됐다.
딴은 술자리 많은 것도 복이다. 친구들은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나를 잊지 않고 자리마다 불러준다. 그때마다 다 응대할 수는 없으나 별 일이 없는 한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뜻 술값 계산하지 못하는 처지라 기가 꺾이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친구들은 내 형편을 알아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리가 신명나도 헤어져 집으로 향할 때면 온통 하늘이 빈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도 몸담고 있는 교육포럼에서 송년모임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한해를 잘 살았는지 제법 때깔 좋은 횟집이다. 참석 여부를 묻는 사무국장의 문자메시지가 몇 번이나 날아든다. 음주운전이 겁나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가면 모임에 늦지는 않으려나. 어쨌거나 오늘도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할 인생이다. 2011. 12. 28.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정치인 (0) | 2012.01.08 |
---|---|
지천명, 그 기막힌 세대 (0) | 2012.01.05 |
주부명절맞이 증후군 (0) | 2011.09.10 |
학력 간판의 허실 (0) | 2011.08.31 |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바로 세우는 힘 (0) | 2011.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