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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소유권 이전등기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4.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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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 105

 

차량소유권 이전등기

 

박 종 국(교사, 수필가)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처음 차를 마련하여 3년을 타고 난 뒤 지금의 차로 바꿨다. 어떤 차를 살까 무척 망설였다. 근데 공교롭게 그때 고등학교 후배 자동차 영업사원을 만났다. 1990년대만 해도 자가용이 흔치 않은 시기였다. 박봉이었지만 통학거리가 멀어 무리해서 차를 샀다. 게다가 영업사원도 평소 면식이 있는 후배고, 제시하는 조건도 파격적이었다. 그런데 자기 영업소에 석 달 동안 디스플레이 해 놓은 차라고 했다. 상관없었다. 더구나 3년 정도 타던 차를 적당한 중고차 값으로 되팔아주겠다고 했던 터라 서로 이문이 남는 거래였다.

 

남들은 내가 산 차가 기름이 많이 든다고 꺼려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16년 35만 킬로미터를 달렸어도 아직 잔고장이 없이 잘 굴러간다. 그런데 문제는 차를 소개했던 후배가 빈번하게 찾아와 자회사의 신형차를 사라고 권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아무리 달려 붙어도 난 아직까지 차를 바꾸지 않고 있다. 검버섯이 피고 낡아도 여느 신형차들 못지않게 잘 굴러가는 데 굳이 차를 바꿀 까닭이 없는 것이다(그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궁색을 떤다고 한다).

 

사실 내 나이에 중형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나이에 맞게 살라고 했듯이 차를 보면 중후하다. 고교 졸업30주년 기념식을 창원시내에서 가장 고급스런 호텔 연회장에서 가졌다. 난 30주년 행사에 동창회장과 추진위원장을 겸해서 도맡았다. 근데 계약을 비롯하여 행사 제반 진척 사항을 점검할 겸 자주 호텔을 드나들어야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명색이 추진위원장인데 폐차 직전의 차를 몰고 나타났으니…. 그만한 대접을 못 받았던 것이다. 아직도 세상은 겉 번지러한 것을 더 평가한다.

 

그렇지만 난 그러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 소유 차량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 모임을 통해서 자동차가 우리의 환경을 얼마나 파괴하고 훼손하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지 그 실태를 파악한 뒤론 더 더욱 차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아이들 노동력을 가장 많이 착취하는 생산품인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지구촌 환경오염과 파괴는 가장 큰 주범은 자동차다.

 

그런데 참으로 난감한 등기우편 한 통을 받았다. 몹시 화가 났다. 벌써 십여 년 전에 내 손을 떠난 차가 그 동안의 차량세와 면허세를 비롯한 각종 과태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다짜고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인터넷 경매를 하겠다는 통첩이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량을 가져간 후배한테 전화했더니 이미 내 차는 폐차됐다는 얘기였다. 기분 나빴다. 바빴지만 전에 살던 시청을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졌다.

 

“선생님, 아직도 차량 소유권 등기 이전이 안 되어 있네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렇다면 매 분기마다 자동차세 고지서가 내게 발송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지서를 받은 적이 없어요. 어찌된 겁니까?”

“여기 보세요. 지금까지 매년 보냈는데 반송되어왔다고 기록돼 있잖아요. 이번에도 새로운 주소지로 다시 발송했답니다. 그렇잖아요?”

“…….”

 

이미 차는 5년 전에 폐차 되었지만 그전까지 차량등기이전이 안 되었기에 소급해서 7년 동안의 자동차세와 면허세, 그 밖의 과태료는 전적으로 차량 소유주가 부담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자동차세법에 따르면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집을 경매 처분한다는 통고를 받고 시청에 찾아갔을 때는 불쾌했지만, 시종일관 상냥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고 나니 사투를 벌일 듯 한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차량을 사고 팔 때는 기본적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게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자리를 털고 나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껏 살면서 현상적인 일에는 그렇게 원칙을 따지고, 논리 비판적으로 재단하면서 유독 자신의 일에는 두루뭉술하게 처신하는 셈법을 갖고 살았다는 데 꼭뒤가 켕겼다. 물론 그러한 자기애적인 애착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무미건조하지 않았을까마는. 아무튼 이를 계기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곱씹어보았다. 201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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