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03
설마가 사람 잡는다
박 종 국(교사, 수필가)
“박 선생! 배가 남산만하구만. 만삭 새댁보다 더 불룩하네, 몇 개월째야?”
“뭐 이것 갖고 그러십니까. 그래도 내 배는 인격 아닙니까.”
“허허허, 인격? 인격 좋아했다간 걷지도 못하겠네그려.”
“…….”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 걸지 말라고 했다. 이건 숫제 생사람 잡는 꼴이다. 그러나 오늘아침 그 말을 곱씹어 보니 얼굴 뜨겁다. 사실 그렇다. 지금까지 나에게 관심을 가진 이라면 한두 말을 보탰다. 배가 나왔다고, 살이 좀 쪘다는 지청구를 한다. 내가 봐도 분명 예전보다 몸이 푸짐해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2인치 바지에다 내의는 100호를 입었다. 그런데 요즘 허리는 그대론데 윗도리만큼은 100호가 무리다. 자꾸만 어깨 죽지가 삐져나오는 것 같다. 급기야 오늘은 불룩 불거져 나온 뱃살이 일을 냈다. 점심 때 집들이 가서 백숙 양껏 먹고 난 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바지 앞단추가 툭 떨어졌다. 허리띠를 매지 않은 탓도 있지만 뱃살 때문이었다. 아무도 보지 못해서 그렇지 누가 보았다면 한 마디 거들었을 것이다.
설마 이쯤 배가 나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겠냐고 귀 흘러들었다. 그런데 설마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목욕탕 갈 때마다 체중이 늘었다는 것을 체감한다. 사십년 동안 65킬로그램 이하를 유지하고 살았다. 그렇지만, 수년전부터는 70킬로그램을 넘나들더니 요즘은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듯하다. 미욱스럽게도 현재는 76킬로그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걷거나 앉는데 조금 부담스럽다.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다 옆모습을 비춰봤다. 순간 섬뜩했다. 임신 8개월 아낙의 배를 가진 사내가 거기에 있었다. 설마 내 배가 이렇게 나왔을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학교에서도 비만아를 위한 클리닉을 실시하여 비만아에 대한 예방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당 아이들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기 아이가 뚱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졸졸 빤다. 지독한 고슴도치 사랑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몸이 비대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합리화가 심했다는 증거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다.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스스로가 몸이 뚱뚱하다거나 상대적으로 비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꼬집어대더라도 자기 합리화한다.
인터넷 사이트 ‘비만 클리닉’을 몇 곳 둘러봤다.
비만 자가진단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자기 손으로 뱃살이 한 주먹 잡히면 그것만으로도 복부비만이며, 신장과 몸무게로 따져봐서 10킬로그램을 초과하면 중등도비만, 20킬로그램을 초과하면 고도비만 단계라는 것이다. 이런 환산법으로 계측할 때 난 15킬로그램 정도 과체중인 상태다. 설마 내가 비만일까 느긋하게 생각했던 자기 합리화가 결국 중년의 나이에 치명적인 비만체형으로 완결됐다.
그래서 결심 하나 했다. 독기를 품으며 걷기운동을 택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듯 오늘 밤부터 시작했다. 이제 날씨가 풀려 집을 나서 면내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땀이 비죽비죽 났다. 내친 김에 걷고 또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흔히 체중을 조절하기 위한 운동이라면 테니스나 축구, 골프, 등산 같은 것을 떠받들겠지만, 직접 두발로 걸으면 다른 운동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사는 향기 때문이었다. 오늘 밤 족히 8킬로미터는 걸었으니까 그 시간 동안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했다는 게 무엇보다 소중한 의미다. 팥죽 같은 땀을 흘린 뒤 찬물로 샤워하는 그 느낌은 무엇과 견줄 수 있으랴.
‘그래, 더 이상 배불뚝이는 인격이 아니다.’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오늘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한 시간 동안은 따로 시간 내어 반드시 걷어야겠다고. 체중도 70킬로그램 미만으로 되돌려 놓아야겠다고. 이는 크게 욕심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약속이다. 201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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