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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에 안경_박종국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5. 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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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09


제 눈에 안경


박 종 국(교사, 수필가)


자칭 책벌레인 나는, 화장실에 드나들 때마다 책 한 권을 챙긴다. 일 마무리를 할 때까지 제법 얄팍한 책은 다 읽는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밥 안 먹어도 마음이 푸근하다. 지적 자기만족감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런 나의 버릇이 한의사 친구는 변비 걸리기 십상이랬다. 정말 그럴까. 분명한 오진이다. 근 삼십년을 이러고도 아직 일처리를 못해 머뭇댄 적이 없다. 시시껄렁한 얘기지만 누구에게나 비밀스런 취미가 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책 한 권 꺼내들고 화장실 앉았다. 숱하게 읽어 표지가 나달나달해진 책이다. 접어진 데를 펼쳐보았더니 ‘주근깨 여왕’이란 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은 다가구 한옥입니다. 안채엔 금실 좋은 노부부, 아랫방엔 정식이네 세 식구, 문간방엔 영진이네 네 식구, 그리고 별채에 우리 세 식구, 모두 열두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일요일이면 그야말로 북적북적, 남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와 마당을 서성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뒤엉켜 노느라 정신없고…. 온 집안이 잔칫날처럼 분주합니다. 그 북새통에도 큰 다툼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은데 그날은 용진엄마가 심사를 긁었습니다.

  “어머머머 주근깨 좀 봐. 자기 그 주근깨 좀 관리해.” 

그렇지 않아도 늘어가는 주근깨 때문에 속이 상해 죽을 맛인데…. 나는 화가 났습니다.

  “나참, 내 주근깨가 자기한테 밥 달래 돈 달래?”

화를 참지 못해 한 마디 툭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피했고 무슨 일인가 싶어 남편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얼굴의 주근깨가 미운건지 용진엄마가 미운건지, 거울 앞에서 울그락불그락 화를 삭이지 못하자 남편이 물었습니다.

  “와? 또 누가 당신 얼굴 갖고 뭐라카드나?”

  “용진엄마가 날더러 주근깨 여왕이랍디다. 아이고, 그래도 얼굴에 찍어 바를 거 하나 살 수가 있나. 원…….”

내 속없는 핀잔에 피식 웃던 남편이 거울 속으로 들어와 말했습니다.

  “내 눈에 이쁘면 됐다. 용진엄마야 참 이상한 사람이네. 지한테 없으니까 샘나서 그런 거 아이가?”

  “으음…, 뭐라구?”

  “혹시 그 아지매가 주근깨 하나 꿔달라캐도 절대로 꿔주믄 안 된다. 알았제?”

남편의 그 말에 나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 또 웃었습니다.

내 얼굴의 주근깨조차 사랑스럽다고 말해 주는 남편, 남편의 그 사랑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면 그건 ‘고슴도치 사랑’입니다.  마누라가 코가 비뚤어져도 예쁘다면 ‘팔불출 사랑’입니다. 아내 얼굴이 주근깨 밭인데도 그저 예쁘게 보인다면 정녕 ‘콩깍지 사랑’입니다. 제 눈에 안경인 것이지요.


학교에서 보면 개중에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해코지를 일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녀석의 얼굴이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렇지만 교사는 고슴도치가 되어 제 반 아이는 귀엽다며 품어 안습니다. 예쁜 짓을 하는 다른 반 아이들보다 더 사랑스럽습니다.


북새통 같은 교실에서도 의연하게 책을 읽는 아이는 예뻐 보입니다. 게다가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눈치 주지 않았는데도 교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아이는 듬직합니다. 궂은일 도맡아가며 척척 하는 아이는 돋보입니다.


우리 어른들 사는 세상에도 강물처럼 나긋하고, 산바람같이 시원하며, 바다처럼 너른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 만나면 정겹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들은 제 눈에 안경처럼 만납니다. 그냥 제 눈에 안경을 씌우지 않습니다. 마음결이 따스한 사람들은 언제나 좋게 만납니다. 그게 세상사는 참맛입니다.201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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