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커가는 아이들
박 종 국
올해로 교단에 선 지 34년 1개월쨉니다. 그 동안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습니다. 그만큼 세월도 빨리 지나칩니다. 앞이마머리 희끗해지고, 여느때보다 잔주름도 늘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처럼 나이를 이겨낼 장사 없습니다.
사는 게 참 바쁘고 빠듯한가 봅니다. 예전 같으면 빗발치듯 근황을 묻곤하던 제자들도 이제는 마치 가뭄에 콩 나듯 소식을 묻습니다. 그만큼 사는 형편이 팍팍해졌다는 증거입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글핏하면 대형비리로, 부정과 부조리로 야합하려드는 못된 인간들 땜에 사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더러 연락하는 제자들 면면을 보면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공부를 잘 해서 반듯한 직장을 갖고 사는 이들보다 그다지 내세울 게 없더라도 세상을 진솔하고 충일하게 사는 제자들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들은 격식을 따지지 않습니다. 허름한 포장마차 선술집에서 간단한 안주 쐬주 두어병이면 서로 옛이야기하며 불콰해집니다. 그런 제자들이 더 인간적입니다.
근데 참 이상한 일은 그렇게 깍듯이 챙겨주고, 부추겨주었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먼먼 객꾼이 되어버리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특히 유명대학, 고위직에 똬리를 제자일수록 인간적인 정리가 부족합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겉멋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초등학교 선생인 담임이 좋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한데도 공부를 못한다고 닦달 받고, 행동이 거칠다고 늘 타박받았던 아이들이 변치 않는 제자로 나타납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산다는 그들을 보면 여태껏 한우물을 파고 살았다는 자긍심을 갖습니다. 그들이 바로 못난 스승을 부추기는 건강한 삶의 활력에너지입니다.
해서 요즘 저는 색다르게 아이들을 다합니다. 똑같은 생각보다는 다 다르게 자라도록 일깨우는데 바쁩니다.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는 그냥 다독이지만, 좀 못미치는 아이는 보다 애써 챙깁니다. 10년, 20년 지내놓고 보니 그 편이 훨씬 교육효과가 클뿐더러 사람 사는 도리도 반듯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랍니다. 혹여 자녀를 한둘 밖에 갖지 않는 요즘 젊은 부모세태는 극성스러울 만치 아이를 위하지만, 아이가 긴긴 인생항로를 가는데 부모의 도움을 그다지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아이의 성장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조력자로서 역할에 만족해야 합니다. 아이의 잠재력과 가소성을 믿는다면 더욱.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면 하나하나 이름 먼저 불러주고, 다정하게 눈맞춤 하렵니다. 열세살 고만고만한 아이들, 천사의 속내를 갖지 않은 아이가 없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매를 보면 그 속에 풍덩 빠져도 좋습니다. 아이들은 풀꽃처럼 자라야 합니다. 하나는 작지만 모여서는 큰 꽃인 아이들. 그들로 하여금 행복합니다
|박종국에세이칼럼2017년 19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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