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은 일 남도 싫다
박 종 국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들판을 거닐었다.
문득 나뭇가지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까마귀는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한 덩어리 물었다.
'흐음, 잘 됐다! 저 고기를 빼앗아 먹어야지.'
여우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까마귀님. 날씨가 참 좋지요?"
여우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지만 까마귀는 멀뚱멀뚱 밑을 내려다보았다.
여우는 계속해서 말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까마귀님은 정말 훌륭한 깃털을 가지셨군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보니, 윤기 흐르는 그 까만 깃털이 아주 멋져 보입니다 그려."
뜻밖에 여우의 칭찬을 들은 까마귀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때, 여우가 다시 말했다.
"게다가 까마귀님께서는 노래 소리 또한 일품이라던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 훌륭한 깃털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추셨다면 '새의 임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겠지요."
우쭐해진 까마귀는 자기의 노래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큰소리로 노래했다.
"까옥, 까옥, 까옥!"
그 순간 까마귀가 물었던 고깃덩어리는 밑으로 떨어졌고, 까마귀가 목청껏 노래하던 사이, 여우는 고깃덩이를 맛나게 먹어 치웠다.
많은 이솝이야기가 여우처럼 교활한 꾀를 두둔한다. 그리고 그 꾀에 속아 넘어가는 동물을 어리석다고 지적하며, 좀 더 세상을 악하게 살라고 일깨운다. 남을 속이는 사람의 부도덕을 지적하기보다는, 순진하게 남의 말을 믿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 경고한다. '항상 남을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현실에서 여우와 같은 사람들이 '수완 좋다', '능력 좋다'는 말을 듣는다. 예나지금이나 남을 속이고, 영악스러운 사람들이 잘 산다. 때문에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목을 맨다. 수완만 좋으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대신 시키는 자들의 세상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품의 용량이나 성분을 속이고, 가짜 고춧가루나 가짜 참기름, 불량 제품을 만들어 건강을 해치는 양심 없는 생산자가 많다. 부실 공사를 예사로 하는 건설업자, 부정부패한 짓을 밥 먹듯이 하는 공무원들도 부지기수다. 그 뿐만 아니다. 남을 속이는 치사한 사기꾼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먹는 뻔뻔한 정치인들도 많다. 아니꼽게도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기 펴고 사는 세상이다.
반면에, 전혀 남을 의심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다가 되레 손해를 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선의로 빚보증을 서 주었다가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은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잘 아는 사람의 권유로 돈을 투자했다가 속아서 돈을 날린 사람도 많다. 논문을 표절하고, 대필작품으로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자기표현에 어눌한 작가들이 문단을 좀 먹는다. 아무튼 남의 등 쳐먹고 사는 인간들이 버젓이 잘 산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십중팔구 그 사람에게 '못난이'니, '멍청이'니 하는 비난을 퍼부어 댄다. 당사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봐야 무슨 뾰족한 묘안도 없다. 그냥 앉아서 당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여우의 밥이다.
이렇게 보면, 이솝이야기는 세상의 그릇된 일면을 보여 준다. 단순히 여우같은 사람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라 가르치고, 남을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남을 속여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게 현명한 처사인 양 따르도록 저의는 부담스럽다.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까마귀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한데도 우리 사회는 애틋한 인간의 정을 나누고,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하는 당연함보다는 야비한 일이 우선시되어 실망스럽다.
진정 착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그 무엇에도 비굴하지 않는 당당한 힘을 지녀야 한다. 착한 사람들이 힘을 가질 때만 나쁜 인간들을 내친다. 부정하고 불의한 사람들을 고발하고 단죄한다. 그럴 때만 연약한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다.
평범한 사람들은 지나친 욕심을 갖지 않는다. 제각기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아무리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덮어놓고 여우 편을 들지 않는다. 내가 싫은 일은 남도 싫다. 하여 서로가 사악한 상대에게 당하지 않고, 다시는 속지 않을 대책을 찾아야한다.
요즘 따사로운 햇살 덕분에 또박또박 흙 밟는 기분이 새롭다. 길섶에 핀 풀꽃을 만나는 일도 즐겁다. 꿀벌 한두 마리 날아든다. 봄의 물상들의 움직임이 힘차다. 봄의 대지는 모두가 사랑이다.
|박종국참세상톺아보기2017년 24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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