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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이 할매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6. 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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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이 할매


박 종 국


어렸을 때 기억으로 순정이 할매는 동네 욕쟁이였다. 무슨 일이든 경우에 맞지 않으면 냅다 욕지걸이로 투사니를 벌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을 애경사 때도 먼저 달려가 걸망지게 욕 한 사발을 뱉어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근데 이상한 일은 할매가 아무나 대놓고 욕을 해도 실실 웃을 뿐 누구하나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대들지 않았다. 사실, 할매의 욕사발은 삼신할매가 자식을 점지해주는 만큼 넉넉한 덕담이었다.


머리가 굵어 고향을 들릴 때면 깍듯이 찾아가 문안 인사를 드렸다. 간혹 바빠 홀대 하면 동네가 시끄러웠다.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골목곡목을 에고패고 다녔다.

‘아이고, 뉘네 아들넘 호로 서러벌 넘. 어른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눈깔 빼딱하게 뜨고 지나치는 저 개망나니를 누가 싸잡을끼고! 다리몽댕이 팍 분질러삐야 직성이 풀리것따. 동네 사람들아! 에고, 동네사람들아! 저 넘이 사람을 무시하네.’

그러면 동네 시끄러워서라도 곧장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잘못을 빌었다. 해서 욕쟁이 할매는 마치 동네 터줏대감이라도 되는 양 기세등등하게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한번은 동네에서 배짱이라면 내놓아라하는 순기 할배. 그 꼴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며 대판 맞장을 떴다. 막 정월대보름을 보내고 동재를 준비할 때였다. 이때를 놓치랴 싶게도 욕쟁이 할매 제수로 쓸 돼지를 잡는 냇가로 쪼르르 달려가 대주 놔라 밤 놔라며 일장 훈시를 하였다. 한참을 한 이야기 또하고 또했다. 듣다못한 젊은 장정들이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렸다. 그러나 순기 할배는 달랐다. 마치 사흘 굶은 맹수 먹이를 낚아채듯이 말꼬리를 확 낚아채더니,

“어디 여편네가 시건방지게 어디 남정네 일하는 데 와서 오도 방정은 웬 오도 방정이고!”


순간, 욕쟁이 할매 아무 말도 못하고 쥐 죽은 듯 눈만 말똥말똥 했다. 애써 허드렛일 하며 고기 한 점 얻어먹으려던 우리는 그 사태에 다만 어쩔 줄 몰랐다. 평소 얌전하기로 소문난 순기 할배가 그처럼 결기를 세우는 말을 할 줄이야! 걸쭉한 입담으로 욕쟁이 할매를 한 방으로 입 막아 버렸다.

그리고 머쓱해진 욕쟁이 할매는 달다 맵다는 말도 없이 줄행랑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새 순기 할배는 마치 개선장군이라 되듯 의기양양하게 동네청년들의 받듦을 받았다.

 

그날 제수로 쓸 고기를 마르고 난 다음 특별 자리가 마련되었다. 원래는 간이나 허파, 창자만 칼잡이들이 소금 철철 뿌려 소주 안주를 먹었다. 그렇지만, 그 날은 달랐다. 순기 할배 특명으로 가슴팍 뒷다리 하나는 좋게 끊어냈다. 이는 숫제 동제가 먼저가 아니었다. 해묵은 억눌림에 대한 해방구를 자축하려는 모두의 바람이었다.

 

그 덕분에 냇가에서 장작불로 새까맣게 구운 돼지고기를 배 두들겨가며 얻어먹었다. 그 맛을 지천명의 나잇살에도 잊지 못한다.

수삼 년이 지나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고향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그만 아연실색할 뻔하였다. 글쎄, 그 날 순기 할배가 스스로 욕쟁이 할매를 찾아가 까만 밤 하얗게 지새도록 무릎 꿇고 빌었다는 이야기를 명기로부터 들었다. 명기는 여태껏 고향 붓도랑 떠나본 적이 없는 고향지킴이다.

 

이야기인즉슨 바로 욕쟁이할매가 순기 할배에게 윗대조상까지 욕 발림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나 심한 욕지걸이를 들었으면 기고만장했던 순기 할배가 단 하루도 버텨내지 못하고 바짝 백기를 들었을까?

 

꼽꼽하게 내리는 비. 그 감사함을 좌중을 모아 오겹삼결살로 화답하는데, 턱하니 맞딱뜨린 그. 순기 할배였다!

박종국참살이글 2017-37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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