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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섭 장편동화 『열 살이에요』

박종국에세이/독서서평모음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9. 2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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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나이 별이 되고픈 '열 살 유동이' 
정하섭 장편동화 『열 살이에요』 


 
  박 종 국   

 


“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모든 세대와 모든 민족에게 남겨진 고귀한 유산입니다. 집집마다 그 집안의 선반에는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책들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진열됩니다. 책은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이 독자들을 계발하고 그들에게 정신적인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한 양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책을 버리지 않습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에서

  

그제부터 정하섭의 장편동화『열 살이에요』를 읽었다. 열 살? 뭐랄까, 아무튼 이 책의 주인공 유동이는 설날 아침에 빵빵하게 부푼 볼과 귀밑까지 찢어진 입으로 정신없이 떡국을 먹는다. 국물까지 아주 싹싹 핥아먹는다. 그것뿐이랴. 그러고 나서 살랑살랑 엉덩이춤까지 췄다. 왜? 설날 아침에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까.   


 

이 책을 읽다보면 열 살 유동이의 천진난만한 재치가 역력하게 나타난다. 그 모습 순진하고 건강하다. 유동이네는 5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어릴 때부터 유동이를 키워주신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잔소리꾼 이모와 같이 산다. 하지만 걸핏하면 가방도 안 들고 학교로 달려가는 덜렁쟁이 유동이로 하여 실실 배꼽을 잡는 일이 많다.

 

때문에 이모랑 잦은 실랑이를 벌인다. 그렇지만 이모는 이제 열 살로 ‘멋진 사나이별’이 되고픈 유동이에게 ‘꼬마딱지’를 선뜻 떼어주지 않는다. 유동이는 그게 불만이다.

 

  “유동아, 열 살이 되니까 좋니? 작년에 아홉 살 될 때보다 더 좋아?”

  “그럼!”

  “뭐가 그렇게 좋은데?”

  “음, 그건 두발 자전거하고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와 비슷해.”

  “그러니까 열 살은 두발 자전거고 아홉 살은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란 이거지?”

  “바로 그거야. 역시 엄마는 나랑 잘 통해! 그리고 숫자 구와 십은 같기도 해. 구는 하나지만 십은 둘이거든.”

  “구는 한 자리 수이고 십은 둘이거든.”

  “또 열은 십대잖아!” 

 “십대라는 말도 알아? 우리 유동이, 정말 많이 컸네.”

  “그럼!”

 

대화 글에서 보듯 유동이는 이제 코흘리개가 아니다. 어엿한 십대다. 그래서 설날 아침부터 생각이 다르다. 이젠 열 살이니까 멋진 어린이, 아니 멋진 사나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유동이도 가끔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봄날 점퍼를 잃어버리고는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가도 시장 앞 지하도 한 구석에 웅크린 할아버지를 보고 따뜻한 연민을 느낀다.

 

또한 엄마랑 시장에 갔다가 만난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그 거칠고 두툼한 손이며 볼이며 귀가 추위에 발갛게 얼은 모습을 보고는 문득 자기 할머니를 생각해 내고는 엄마에게 다짜고짜로 냉이랑 돌미나리를 그냥 다 사자고 한다. 그래야 열 살 유동이 마음이 가벼워진다.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 열세 살 아이나 열세 살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이 책은 나이를 불문하고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볼 만한 훈훈한 얘기다. 마냥 웃고, 떠들기만 하던 열 살 유동이에게도 어른들만큼이나 진지하다.

 

다시 일 나가는 엄마가 원망스럽지만 이제 열 살이니까 너그럽게 이해한다. 친구들과의 어울림을 통해서도 한결 우쭐해진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엄마의 덕을 톡톡히 본다. 유명 작가들로부터 사인을 척척 받아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열 살 아이의 천진난만한 동심을 맛본다.

 

이 책에서 할머니는 어떤 존잰가? 유동이는 할머니한테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 같은 대접을 받는다. 그래도 유동이는 할머니가 좋아 할머니와 공을 차기도 하고, 그로 인해 할머니가 몰살을 앓게 되고, 미안해서 열심히 팔다리를 주무르다 할머니 품속으로 파고든다.

 

할머니의 구수한 냄새! 유동이는 할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유동이는 할머니는 까끌까끌한 손마디가 안쓰럽다. 그러나, 유동이는 할머니 머리맡에 앉아 자글자글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유동이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다음에 커서 꼭 효도할 것이라 다짐하면서.

 

하지만 이렇듯 살가운 짓만 하는 열 살 유동이가 아니다. 자꾸만 엄마와 소원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춘기 감성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주변의 사소한 말 한 마디도 흘러 듣지 않는다. 열 살로서 의젓하게 대접받고 싶은데, 자기를 아는 어른들은 아직도 ‘꼬마’ 취급을 하는 게 불만스럽다. 누구나 이맘때 다 그랬지 않은가.

 

사춘기 감성이 도드라지는 유동이

 

그래서 유동이는 그 지청구를 엄마한테 다 푼다. 매일처럼 같이 타는 버스 안에서 엄마가 말을 시키는 게 싫고, 엄마가 인사하며 유동이의 볼에 뽀뽀를 하는 일도 피한다. “넌 다 큰 녀석이 아직도 엄마랑 같이 학교에 가냐?” 하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다그침이 들리는 하다. 그 때문에 누가 보지 않는지 자꾸만 주위를 살핀다. 이 또한 열 살 아이가 세상과 친해져가는 순정한 모습이다. 갓 사춘기를 맞았을 때 한번쯤 겪었을 일이다.

 

이런 일들은 유동이를 둘러싼 친구들로 인해 다 풀린다. 아빠가 안 계신 얘기도,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도 ‘수학보다 더 어려운 문제’지만 이해한다. 그러나 유동이는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모습, 엄마가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생각해 내고는 ‘그걸 리 없다’고,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자꾸 눈앞에 떠올라 오도카니 혼자라는 생각으로 외로워한다. 엄마의 말대로 사람 일은 정말로 알 수 없다.

 

아이들의 생각은 같다. 좋은 일을 보면 금방 따라한다. 따뜻한 행동 하나하나가 여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이속이나 대가를 따지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 그 자체가 청잣빛 가을하늘이다. 때문에 엄마랑 함께 다락방 창가에 엎드려 검푸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먼 데 불빛마저도 별들이 내려와 비춘 불빛 같다.


 

혼자서만 빛나는 별이 아니라, 다른 별빛들과도 잘 어울리는 따뜻한 별이 되어야

 

순간, 유동이는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저마다 가슴에 하나씩 품고 사는 별이라면 열 살 유동이는 ‘멋진 사나이별’이 되고 싶다. 그러나 다른 별들을 가리고 혼자서만 빛나는 별이 아니라, 다른 별빛들과도 잘 어울리는 따뜻한 별이 되고 싶다. 이 땅의 모든 열 살 유동이에게 소중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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