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상이 참 디다
박 종 국
어째 요 며칠 새 날씨가 으스스하다. 가을 날씨라면 서늘해야 제격인데, 낮게 드리운 구름마저 을씨년스러웠다. 때문에 하루 내내 기분도 구릿했다. 침울했다는 말이 옳을 게다. 아무튼 기운이 축 늘어졌다.
오전에 두 녀석이 티격태격 하며 싸웠다. 애써 뜯어말렸지만 눈앞에서 치고받으며 서로 으르렁거렸다. 고얀 녀석들, 큰 소리로 다그쳤지만, 반성은커녕 자기 속내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고집을 피웠다. 무시하고 들었지만 끝내 사단을 만들었다.
흔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좋게 부추기는 말일뿐 정작 싸움 당사자들은 분을 삼키지 못하고 씩씩댄다. 그렇잖아도 학교폭력에 대해서 단호한 때라 쉽게 개입하지 않았지만, 녀석들 학년 생활지도 선생님께 불러가 경위서를 쓰고, 서로 사과하고 끝났다.
그렇게 하면 좋게 해결될 일을 끝까지 고집피우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은 뒤 제 잘못을 가리는 아이들, 아무리 어리다지만 속절없이 고집 피우는 건 정말 아니다. 때로 어른도 떼 고집을 피우며 제 잘났다고 방방 뛰는 사람을 본다. 어찌나 제 속아지만 내세우는지 도무지 말귀가 통하지 않는다. 오늘 그런 애어른들을 보았다.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참고 견뎌야 할 일이 많은 게 초등학교 교사다. 더더구나 체벌을 경원시하는 요즘 세상이라 교권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라, 아이들 말을 듣지 않는다. 가뜩하면 ‘나 잡아먹어라’는 듯 거들먹거리고 능청을 떤다. 이럴 땐 화가 목에 찬다. 그래도 교사는 참아야 한다. 울컥하는 순간, 30년 아성이 와륵 무너진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다. 오늘 같이 바쁜 날이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6교시로 짜인 수업은 고사하고, 학부모교실과 중학교진학 학부모설명회, 수행평가 등등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러고도 전학 간 아이 나이스 서류 정리하고, 공문도 몇 가지 챙겼다. 이건 숫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업무처리 담당이다. 거기다가 교재연구며, 단원재구성까지 겹치면 혹사 아닌 혹사다. 생수 한 컵을 마셔도 입맛이 쓰다.
중학교 진학을 위한 학부모설명회에 참석한 어느 어머님이 물으셨다. “선생님 목소리가 왜 그래요?” 날마다 6교시 수업이 끝날 즈음이면 흰목소리가 난다. 마치 허스키보이스처럼. 이빈후과병원에 가보니 성대 결절이라는 진단이다. 지난 35년 동안 성대를 혹사했으니 이만해도 다행이다 싶다. 일반 직장 같으면 직업병 판정을 받아야 한다.
교실 창밖 어둠으로 싸였다. 퇴근해야지. 하지만 일어설 기분이 아니다. 몸이 피곤마련하다기보다 마음이 껄끄럽다. 사는 게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지만, 마치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돌돌 감겼다. 심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좀처럼 피곤하다는 얘기하지 않는데, 오늘 하루 일상은 참 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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