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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교사의 삶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10. 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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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교사의 삶

 

박 종 국

 

들녘 알곡 여무는 소리 찰랑찰랑 대고, 산자락 알밤 툭툭 불거지는 소리 정겹다. 가울 문턱에 성큼 들어섰다. 오랜 가뭄에 팍팍했던 땅거죽도 간밤 곱살 맞게 내린 단비로 처연하다. 교정 느티나무는 벌써 완연한 가을빛으로 곱게 단장했다. 세 모과나무는 예년보다 더 큰 모과를 가지마다 줄줄이 달았다. 푸근하다.

 

학교는 날마다 아이들 건강한 웃음으로 세상을 연다. 우리 학교는 통학거리가 짧아 대부분 아이들은 8시 30분경이면 등교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 가영이와 동현이는 다르다. 녀석들은 등교시간이 빠르다. 나도 깨나 일찍 출근하지만 아직 한번도 녀석들을 앞질러본 적이 없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쫑꾸기 샘, 어서오세요.”

“그래, 반갑다. 오늘도 먼저 왔네.”

 

두 녀석의 힘찬 인사로 화사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살맛이 난다.

 

‘쫑구기 샘’은 아이들이 편하게 부르는 내 별칭이다. 열세 살, 6학년 아이들과 나는 무려 사십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난다. 근데도 아이들과 나는 동네 아저씨처럼 스스럼없이 지낸다. 가끔은 사소한 일로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아무리 속 나쁜 일이 생겨도 아이들은 금방 헤헤거리며 다가든다.

 

아이들과 함께 한 지도 어언 35년째. 그 동안 좋은 일, 궂은일도 많았다. 지내놓고 보면 그때 그 추억이 참 아름답다. 첫 발령지는 섬마을 거제도였다. ‘학산’초등학교, 전교생이래야 백여 명 남짓, 아담하기 그지없는 학교였다. 6학년 내 반 아이들은 머슴애 여섯에다 계집애들 열둘, 순수하게 만나 참 좋게 보냈다.

 

나도 섬마을 총각선생님이었다. 그곳에서 5년을 머물다 진해, 울산, 남해, 창원, 창녕, 마산을 거쳤다. 그새 삼십 년의 세월이 후딱 지났다. 하지만 원래 농투성이 아들로 태어난 때문인지 도회지 생활에는 항상 겉돌았다. 그래서 아예 고향 어귀로 거처로 옮겨 산다. 벌써 16년 째다. 숨쉬기가 한결 낫다.

 

시골의 생활은 한적하다. 아이들이 제 할 일을 찾아 외지로 떠나고, 집에 들면 절집이다.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많다. 허나 가끔은 제자들이 찾아오면 뜬금없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럴 땐 제자들보다 내가 먼저 아련한 추억에 몸을 떤다. 그래도 제자들의 바람은 한 가지다.

 

“선생님, 선생님은 평생 교사로 사세요!”

“선생님은 처음 뵈었을 때나 지금까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 좋아요.”

“선생님, 고마워요. 6학년 때 기억을 떠올리면 피씩 웃음이 나요.”

 

결코 자화자찬이 아니다. 제자들의 다그침과 같이 여태까지 난 교사로서 오직 하나의 외길을 걸었다. 더러 동기들은 장학사로 교감교장으로 승진했지만, 그다지 부럽지 않다. 누구나 제 삶의 준거를 가졌기에 내 삶이 옳다고 따져들 일이 아니다. 나는 평생 교사로 살겠다고 6학년 제자들과 다짐했다. 그렇기에 지천명인 지금도 평교사로 아이들과 부대낀다("선생님은 평교사로 사세요" 아쉽게도 이 맹세는 2018년 이후로는 지키지 못한다. 어쨌든 나도 작년에 교감자격을 받았다).

 

수업시간에 자주 아이들 모습을 담는다. 사진기를 들면 몇몇 녀석들은 초상권 침해다며 마다한다. 그렇지만, 결코 속내는 그렇지 않다. 우리 반 수업은 자유롭다는 게 그 증거다.‘셤머힐’수준이랄까? 그날그날마다 정해진 목표치를 달성하면 그 다음의 학습은 자의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수업을 도외시한다는 건 아니다.

 

선생으로서 충심으로 지녀야할 사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학습의 장에서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는 거다. 아이들과 공감하며,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거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인정’과 ‘칭찬’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우는 보약이다. 아이들한테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냈다. 모두와 똑같은 사랑을 나누어 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아이들 하나하나 눈 마주며 이름을 다 불러주었다.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변함없는 사랑이다. 조금 힘들어하고, 피곤해 하는 아이들을 부추겨주고, 까닭 없이 방방 대는 녀석들은 따끔하게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래봤자 눈 까딱도 하지 않을 아이들이다. 간혹 지청구를 들을 때면 입 꼬리가 샐룩거리는 아이들 표정이 여간 앙증맞은 게 아니다. 그 때문에 난 언제까지나 초등학교 평교사로 만족하고 산다.

 

‘선생이 선생답다’는 건 무얼까. 그것은 바로 아이들 곁에 섰을 때다. 아이들도 그런 선생을 원한다.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이 여느 선생님들보다 나잇살이 많은데도 그걸 탓하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 대한 ‘친밀감'(Rapport)이 높다고 자신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라면 그곳이 어딘들 즐겁지 않을 까닭이 없다.

 

교정의 느티나무 때깔 좋게 하늘거리고 아이들 웃음이 당찬 하루였다. 내일은 보다 일찍 출근해서 가영이와 동현이를 먼저 맞아야겠다. 벌써 녀석들의 생뚱맞은 얼굴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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