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찬(酒讚)
박 종 국
요즘 들어 뜬금없이 술자리가 잦다. 몸은 지치고, 피곤마련 하지만, 딴은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주고, 찾아준다는 사실, 참 기쁜 일이다. 그래도 두주불사하고 곧장 달려가 자리를 채운다. 이제 지천명 나잇살도 다 채웠다. 친구 말마따나 예순 문턱이 코앞인데도 아직도 술자리라며 마다하지 못한다.
벌써부터 노년을 생각해서 술 담배를 끊고 몸 관리를 하는 친구들, 그들은 입을 모은다. 이제 술 담배 작작하자고. 하지만 내가 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한쪽 귀로 흘겨듣고 만다. 건강하게 살겠다는 건 부자로 살겠다는 욕망만큼이나 강하다. 물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했지만, 살다 보면 그것만큼은 늘 개 맹세가 되고 만다. 해서 능청을 떤다. 술꾼이 일꾼이라고. 객쩍은 말이겠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 변이다.
연사흘 술잔치를 벌였다. 직업상 아침나절부터 술 냄새를 피우지 못하기에 조심 한다마는, 코 힘이 좋은 반 아이들 눈치가 따갑다. 그래도 머리 굵은 아이들이라 애써 모른 체 한다. 연신 물을 들이키면서 속내를 씻어보나, 오전 내내 찌든 술기운은 쉬 가시지 않는다. 이를 두고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하는 친구는 사서 고생한다고 지청구를 한다. 그는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사람이 가장 미련하다고 얘기한다. 술 마시는 일이 미련한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조지훈은 그의 전집에서 술에 대한 유단론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 둘째, 술을 마신 친구, 셋째, 술을 마신 기회,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이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음주에는 다음과 같은 18단이 증거 된다. 즉, 9급 부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8급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7급 민주(憫酒), 마실 줄 알고 겁내지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6급 은주(隱酒), 마실 줄 알고 겁내지 않으며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 숨어 마시는 사람, 5급 상주(商酒),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4급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3급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2급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1급 학주(學酒), 술의 진경(珍景)을 배우는 사람이다.
또, 1단 애주(愛酒),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2단 기주(嗜酒),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3단 탐주(耽酒),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4단 폭주(暴酒),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5단 장주(長酒), 수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 주선(酒仙). 6단 석주(惜酒),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7단 낙주(樂酒),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8단 관주(觀酒),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는 없는 사람, 주종(酒宗). 9단 폐주(廢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일컫는다. 여기서 부주, 외주, 민주, 은주는 술의 진경(眞景)과 진미(眞味)를 모르는 사람이요,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해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를 모르는 사람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준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부주가 2급이니 그 이하 척주(斥酒) 반(反)주당들이다. 애주, 기주, 탐주, 폭주는 술의 진미(眞味), 진경(眞景)을 오달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 번 넘어서 임운 목적하는 사람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徒)란 칭호를 준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폐주[열반주(涅槃酒)]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을 매길 수 없다.“
괜스레 술 마셨다는 핑계거리를 찾을 요량으로 조지훈의 ‘애주헌사’를 옮겨 놓았다. 나는 어느 반열에 오를까? 별로 신통한 일도 아닌데도 주도(酒徒)란 칭호가 탐난다. 두주불사(斗酒不辭)는 패가망신한다고 소인배들은 말하지만, 이는 술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 한 잔 술을 마시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두 잔 술을 마시면 득도 한다. 석 잔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되고, 넉 잔 술을 마시면 학이 되어 하늘을 날며, 다섯 잔 술을 마시면 염라대왕도 두렵지 않으니, 이렇게 좋은 술을 마다하겠는가?
부모님께 올리는 술은 효도주(孝道酒)요, 자식에게 주는 술은 훈육주(訓育酒)며,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술은 경애주(敬愛酒)요, 은혜를 입은 분과 함께 나누는 술은 보은주(報恩酒)라. 친구에게 권하는 술은 우정주(友情酒)이고, 원수와 마시는 술은 화해주(和解酒)이며, 동료와 높이 드는 술은 건배주(建配酒)라. 죽은 자에게 따르는 술은 애도주(哀悼酒)요, 사랑하는 사람과 부딪치는 술은 합환주(合歡酒)라. 이러니 내 어찌 이 한 잔 술을 마다하리오. 하늘이 술을 내리니 천주(天酒)요, 땅이 술을 권하니 지주(地酒)라. 내가 술을 좋아하고, 술 또한 나를 따르니 내 어찌 이 한 잔 술을 마다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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