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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 마음 끌리는 대로 산다해도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10. 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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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 마음 끌리는 대로 산다해도

 


박 종 국

 


세상은 내가 보는 대상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 대로 느낀다.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좋다. 비바람 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장구름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면, 그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인다. 세상은 보는 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물은 멈추는 일이 없다. 항상 스스로를 움직여 다른 물상 변하게 한다. 그러다가 장애를 만나면 그 세력을 몇 배로 키운다. 스스로 맑으며, 더러움을 씻고, 안겨듦을 가리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다. 물은 망망한 큰 바다를 채우고, 결국에는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영롱한 얼음이 된다. 그렇지만 결코 그 성정을 잃지 않는다.

 


물은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원만한 얼굴이 되고, 모난 그릇에 담겨지면 스스로 모가 난다. 그렇다고 제 스스로 거부의 몸짓을 하지 않는다. 따뜻한 열기를 만나면 수증기로 품어지고, 차가운 냉기를 만나면 서로 엉겨 붙는다. 물은 스스로는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싫다고 내치지 않는다.

 


구두를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온통 구두뿐이다. 길가는 모든 사람들의 구두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옷차림에는 관심이 없다. 미장원 가는 길에는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 경우도 만난다. 누군가 근처 사진관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갑자기 멍해진다. 어디서 본 듯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다. 바로 집 앞 사거리 그 사진관을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면서도 전혀 기억 속에 없다. 마치 그 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더러 세상은 내 마음 끌리는 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이 원만한 성징에 따르면 까닭 없이 부대끼고 바삐 사는 걸 후회한다. 죽자고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나, 규정 속도로 더디게 달려도 도착지에 이르는 시간은 채 5분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린 마냥 허덕대야 직성이 풀린다. 조급증을 떨어봐야 오십보백보다. 손오공이 기상천외의 요술을 부려가며 세상을 호령했어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 때까지 진짜 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존재하지만, 다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게 다 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 중에 몇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얼마나 자기애적인 시스템인가.

 


그러나 사람이 사는 방편은 물의 속성과는 다르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정말 머리 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사람마다 선택기준이 다 다르듯이 받아들이는 정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세상은 공평하다. 기분 좋은 아침에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더 넓고 명랑해 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 땐 슬픈 일은 아예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 세상은 우리가 보는 데만 비춰진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문득 바라다본 수평선에 저녁달이 뜨는 순간, 아, 그때서야 그는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된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대상만 보이고, 또 보이는 물상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물을 그냥 지나친다.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녁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렇게도 찬란하게 열려 있음에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우리는 너무 슬픈 일들만 많이 겪고 산다. 그러니 언짢은 일들이 많아진다.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본다. 아무리 살가운 부부 사이라도 등 돌리면 곧바로 남이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나락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 데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 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불평하든지, 찼다고 만족하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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