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슬프다, 그러나
박 종 국
석돌에 불붙듯 늦깎이로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사내. 그는, 날마다 마음 설레고, 헤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냥 몸 달았던 사내, 첫 눈에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안달했다.
둘은 첫 만남부터 콩깍지가 씌었다. 어디서든 서로의 이야기에 귀담아주었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같은 걸로 만족했다. 어디를 가든 연리지처럼 붙어 다녔다. 함께 하기만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비록 늦게 만났지만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자신했다. 세상일 늦은 게 빠르고 빠른 게 느린 법이라고. 때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얘기하면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사랑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세상에 쉬운 일 어디 만만하랴. 여기저기 걸림돌로 불거진 편린이 많았다. 낱알 같은 논쟁거리, 그 조그만 파장 하나마다 서로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을 맛보아야했다. 현재를 살면서 그 현실에 쉽게 조응하지 못하고, 삶의 울타리마저 여의치 못했다.
함께한 시간,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서로가 마음에 빗장을 탕탕 걸어 잠갔다. 부부는 정말 하찮은 일로 떠나보내고, 어쭙잖은 일로 사랑을 잃는다. 별스럽지 않은 일에 집착하고, 서로의 감정만 앞세우고, 자존심을 내세웠다. 뿐만 아니다. 사랑한다고 침을 튀겼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미미했다.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데서 오는 섭섭함만 크게 키웠다. 그 결과, 자기감정에 똘똘 뭉쳤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넌 뒤였다.
달도 차오르면 기울고 늘 핀 꽃도 없다. 그렇듯이 한번 시든 꽃은 다시 피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좋아서 당장에 헤어지면 하루도 못살겠다며 안달복달하던 사람도 막상 마음의 끈을 놓고 나면 언제 보았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산다. 사람이 그만큼 용렬스럽다.
그러나 정작 헤어진 둘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을까.’
‘난 어디가 잘못된 걸까.’
‘난 왜 사랑한 사람 하나 편하게 해주지 못했을까.’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이런저런 자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자책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갉아 먹는다. 이별의 원인은 어느 한 쪽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길이가 맞지 않는 의자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동안의 세월이 얼마나 억울할까싶지만 마음을 넓게 가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또한 이별을 겪고 난 사람은 누구나 상대를 배려하려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겠지.’
‘내가 잘못한 거지.’
‘내가 성급했지. 좀 더 참고 잘해 줄걸 그랬지.’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보다 차라리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오죽 했으면 헤어지게 되었을까? 헤어짐에 직접적인 원인은 크든 작든 문제가 아니다. 헤어지는 데는 직접적인 원인은 없을뿐더러 변명을 늘어놓을 까닭이 없다. 떠났거나 보냈거나 미운 일은 미워야 한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마음껏 미워하는 게 억울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 최선이다.
이별은 슬프다. 슬플 때는 마땅히 슬퍼해야한다. 누군 실연의 고통을 당하면 가면을 쓴다고 한다. 애써 기운을 내거나 억지로 더 명랑한 척 더 활발한 척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려 더 웃고 떠들어 댄다. 하지만 결국 한 밤중에 혼자되어서는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그럴 까닭이 없다. 억지로 명랑한 척, 억지로 바쁜 척, 억지로 괜찮은 척 하는 가면은 ‘이별의 감정을 정화’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담담하게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스스로의 삶을 추동하는 데 억지 춘향 할 까닭이 없다. 아니, 사랑을 잃었는데 바쁘게 일한다고 일이 잘 될까?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마음껏 슬픔에 빠져 드는 게 낫다.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영화를 보고, 종일 펑펑 우는 게 더 현명하다. 실연 한번 당했다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누구 한번쯤은 실연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쌓아두고 혼자 남았을 때 슬퍼하며 그 슬픔을 오래 갖기보다 마음껏 슬퍼하는 게 훨씬 좋다.
중요한 일은 서로 헤어졌다고 해도 추억은 그대로 놓아두어야한다. 애써 상대를 지우겠다고 고심하는 처사는 현명한 삶의 방편이 아니다. 거부할수록 더 생각날 뿐이다.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그러나 지워버린다고 해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일이 바로 추억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그 흔적을 지워야만 한데도고 좋았던 추억은 좋았던 대로 남겨 두어야한다. 그러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자동필터링 되어서 즐거웠던 순간, 행복했던 모습만 기억 창고 속에 남게 된다.
이별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는 자기 최면이 필요하다. 여자는 사랑하는 동안 예뻐진다. 그렇지만 이혼했다고 해서 미워지는 건 아니다. 부단히 노력한다면 그전보다 예쁘게 산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갖는 게 최우선이다. 술 먹는 일로 슬픔을 달래면 결국 나만 우울한 주정뱅이가 될 뿐이다. 날 버리고 간 그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나에게 등 돌리고 간 그녀에게 분통을 터트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별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후회하게 만들면 된다. 힘들더라도 자기 최면을 걸어서 생활에 충실하고, 미뤄두었던 취미활동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혼자라는 것은 또 다른 나의 삶이 예정되었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한층 더 발전된 나의 모습을 발현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그가 이혼의 굴레에서 툴툴 털고 다시 섰으면 좋겠다.
아무리 내 마음 끌리는 대로 산다해도 (0) | 2017.10.27 |
---|---|
오늘은 잔소리 하지 않는 날 (0) | 2017.10.27 |
오래 살고 싶거든 (0) | 2017.10.23 |
나이에 대한 일반적 시각 (0) | 2017.10.23 |
늙어도 아름답게 늙어야 (0) | 2017.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