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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단상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12. 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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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단상

 

요즘 들어 바빴다. 그런 까닭에 한주일 목욕을 놓쳤다. 하여 주말엔 짬을 내어 부곡온천사우나에 들렀다. 붐볐다. 바야흐로 목욕시즌. 다들 목욕재계하느라 부산했다.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탈탈 옷을 벗고 맨몸을 씻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온탕에 들어가 20분 정도 몸을 불렸다. 여태까지 목욕을 가면 온탕에 몸 담그는 시간은 10분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후텁지근함을 애써 견뎌내며 오래 버텼다. 두어 주일 묵은 때가 만만찮았다. 눅진하게 참아냈다.

 

휴일 목욕탕 풍경은 가히 인간 산림이다. 널따란 목욕탕 안이 온통 사람들로 북적댔다. 한쪽을 차지한 채 박박 때를 미는 사람, 벌거벗은 몸매로 뜀박질을 하는 사람, 더러 냉탕을 수영장으로 착각한 양 촐랑대는 사람, 개중에는 난감하게 옥근을 드러낸 채 오수를 즐기는 사람, 간간히 샤워기를 틀어놓고 잠그지 않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치기에 눈꼴사나운 행동이다. 뿐만 아니다. 탕 안에 물이 충분한데도 더운 물을 틀어놓고는 정작 본인은 나가버린다. 참 고약한 심성을 가진 인간이다.

 

탕 밖을 나와 덕지덕지 묵은 때를 밀었다. 팔다리며 사타구니까지 잘 불었다. 그냥 쓱 밀었을 뿐인데 우동사리가 밀렸다. 한참을 밀었다 싶었는데도 몸 곳곳에 들붙은 때는 그침 없이 나왔다. 특히 팔꿈치와 옆구리, 허벅지에는 버짐나무 껍질 벗기듯 한 옴큼 실타래 같았다. 발바닥 군살도 박박 밀었다. 날씩 차가우니 피부각질도 겨우살이 준비를 하려나 보다.

 

날마다 샤워를 하는데도 이처럼 눅은 때가 많았다. 여러 일들로 나댔던 탓이다. 춥다고 겹겹이 껴입은 옷 땜에 무시로 흐르는 땀이 때를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청결하지 못한 게으름도 한몫했을 테다. 옆 사람이 볼세라 자주 물을 끼얹었다. 쉼 없이 불거지는 때를 보며 심란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일수록 때가 많다는 속설에 그러한 면피를 감당했다.

 

한 시간 남짓 때를 밀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다 빠졌다. 거울에 비쳐진 뚱한 몸매가 말끔하게 부셔졌다. 지금까지 목욕탕에 갔어도 불과 30분이면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지겨우리만치 오래 버텼다. 목욕탕에 오는 모든 이들이 나처럼 머문다면 아마 문을 닫았을 거다. 이문이 남지 않은 까닭이다.

 

일전에 친구가 그랬다. 목욕탕을 사용하는 걸 보면 그 지방의 민도를 가늠한다고. 해서 내가 사용한 언저리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주말 겹쳤던 일과 때문이었는지 탈의실에 나가니 손 까딱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다. 그래서 대충 물기만 닦고 벌거벗은 채로 신문을 펼쳐들었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들이 한층 더 피곤하게 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판에 박은 이야기로 가득 찼다.

 

김장한다고 바빠도 아침점심을 충분하게 챙겨먹었는데도 배속이 헛헛했다. 여느 때는 구운 계란을 비치해 놓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내심 서운했다. 벌이가 시원찮아 판매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바깥에 나와 보니 저녁때가 한참 지나 사위가 캄캄했다. 그러고도 장모님과 아내는 한참 지나 차에 올랐다.

 

그나저나 먹성 좋은 나는, 어딜 가나 먹는 얘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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