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횡포
어느새 ‘갑질’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갑질’이란 갑(甲)과 을(乙)의 관계를 나타내는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함의이다. 힘과 영향력에 우위인 ‘갑’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에게 행하는 부당한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에 섰다고, 잘난 척하며,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기분 나쁘게 대하는 청맹과니를 지칭한다.
근데 힘의 우위관계에서 을이 갑의 하대를 부추기기도 한다. 즉, 보통 ‘을’은 ‘갑’이 주는 일을 따내기 위해 가격을 낮추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며, 갑의 눈치를 본다. 그래서 일반 거래상 '갑'이 우월적 지위에서 힘이 더 세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상대보다 돈과 권력이 많고, 그것을 이용하여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 '갑질'이다. 그리고 갑이 그런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금품이나 향응, 대가 등을 받거나, 을을 하수인 부리듯이 하는 일련의 행위도 갑질이다. 결국 갑질은 갑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거나, 혹은 비대칭적인 자원의 활용을 통해서 을에게 부당한 강요나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를 하는 일체의 행위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갑을관계는 위아래를 철저하게 구분 짓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우월감과, 그에 상응해서 아랫사람이 벌벌 기면서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충성심과, 자신은 원하는 바를 밝히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마음을 읽어 눈치껏 자신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는 독점욕, 세 가지가 핵심이다.
갑의 횡포인 이른바 갑질은 그 종류가 참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난다. 매번 뉴스로 거론 될 때마다 '왜들 저럴까?'하면서도 또 다른 갑질 형태를 띤 추태가 보도된다. 납품업체를 벗겨 먹고 사는 유통 공룡들의 갑질, 협력업체에 자행되는 갑질, 예식장 갑질, 하청업체들에게 이뤄지는 거대공기업들의 무지막지한 갑질, 배움의 전당에서는 윗자리 교수들의 학생들 착취 및 연구 결과 가로채비, 최근 나라 망신까지 시킨 대한항공의 땅콩 갑질, 백화점 손님 갑질 , 오죽했으면 이로 파생된 유행어가 라면 상무, 신문지회장, 땅콩갑질, 채용 갑질 등을 꼽을까.
이러한 갑을관계 문화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좌우된다. 이명박 박근혜정부 같은 보수적 정권하에서는 갑질 천국이었다.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에도 갑질이 없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 이들 사악한 정권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해서 현재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은 과거 정부 시절은 두고 잃어버린 십년 운운한다. 그 말인즉슨 자신들이 갑질을 제대로 못한 십년이란 뜻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정권이 바뀌어도 갑질은 계속된다.
갑질 횡포의 문제는 최근 뉴스와 인터넷에서 화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인식의 공감을 일깨웠다. 그럼에도 ‘갑질 논란’이 계속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생긴다. 예나지금이나 미래에도 이 같은 일은 계속된다. 이는 초고속으로 변화되는 사회와 그에 따른 사람의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기에 감정적 대립이 빈발한 결과이다.
그런데 뉴스는 공정하고 긍정적인 보도를 하기 보다는 화재거리가 먼저고, 듣도 보도 못한 안 좋은 사건 , 사고 등을 다루기에 전체의 세상의 일부만을 다루어도 크게 비쳐지는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맹점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과 상호간의 공존적 양보와 배려가 우선해야하는 갑질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또한 사람은 태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실현시켜 가는 사회적 환경에 노출되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보인다.
우리 사회가 천민적 대기업 중심의 문화로 발달하면서 경영자들이 상대적 우월감으로 문제시되는 행동에도 전혀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갑질논란’이 기업 경영인들에게만 보이는 사회적 현상은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누구나 상황에 따라 마다않고 갑질을 한다. 그게 못난 우리의 민낯이요, 한계다. 그러니 그만큼 갑질이 빈번하다.
사회의식(이즘)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법으로 규제하고, 사회시스템으로 보완한다. 하지만, 자기완성에 목적을 두지 않은 인간의 의식은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낸다. 특히 남의 잘못만 지적하는 이기심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초래한다. 그렇기에 갑질논란을 해결하는 단초는 스스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자기반성이 먼저다. 지금은 어떤 삶을 사는가? 모든 갑을관계 논란이 자신의 문제임을 알고 그 사슬을 떨쳐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갑질논란’은 인간성 교육의 부실에서 기인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인성 교육이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졌다. 집안 어른으로부터 따끔한 예절교육을 받았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먼저였고, 함께 사는 의미를 곱씹으며 몸소 실천했다. 그렇지만 바쁘게 사는 지금의 세상은 더불어 지내기보다 파편화된 개인의 능력은 우선 하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만 위하는 속 좁은 인간군상이 되어버렸다.
사람 사는데 인간의 존엄성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지위나 학벌, 경제적 능력과 명예에 상관없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먼저 배려하는 심성을 깨우쳐야 한다. 그래야 장차 사회지도자의 위치에 올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심성적으로 보인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 뿔난다고 일찍이 장원급제 했다던 ‘법꼬라지’ 말로를 보라. 어쭙잖은 ‘갑질논란’의 병폐는 처음부터 인간성 교육으로 해결하는 이외는 처방전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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