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
휴일 오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부스스 일어났다. 치통과 편도선염까지 겹쳐 약에 절였던 탓이다. 그런 와중에도 토요일 강의까지 맡았으니 피곤마련했다. 또다시 약을 챙겨멱으려니 빈 속이 걱정, 해서 그제 끓여두었던 북어국에 밥 말아 아침겸 점심으로 때웠다. 아내는 입 안이 깔깔하다며 한 줌 떡국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늘 양은 고양이밥이다. 주중에는 안 그랬는데, 휴일은 세 끼 챙겨먹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애써부지런을 떨어도 두 끼면 만족한다.
이후 그동안 미뤄두었던 인터넷 서핑을 했다. 출근하는 날이면 이런 호사를 부리지 못한다. 먼저 메일을 확인했다. 스팸을 포함해서 백여 건이나 올라왔다. 요즘 들어 낯선 메일주소가 많다. 그만큼 내 신상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증거일거다. 그래서 대충 제목만 훑어보고 삭제해버렸다.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쓰레기메일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연구자에 따르면, 평생 메일을 받고 지우는데 3만여 시간이나 소요된단다.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편지나 전화에 비해 의사소통이 기민하고 편리하다는 점에서는 좋다. 하지만 그 땜에 ‘디지털치매’에 걸릴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참고로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휴대폰, 노래방기기 등으로 현대인들이 향후 디지털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컴맹이었던 시절, 그때만 해도 컴퓨터를 하지 않아도 산다고 은근히 자신했다. 워낙에 기계치라 기계를 다루는데 그다지 취미가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세상은 날로 변했다. ‘삐삐’만 가져도 별 불편함이 없었던 때, 하나둘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하자 나 역시도 그 편리함에 예속되어버렸다. 그뿐이랴. 학교업무는 물론 교육과정에 컴퓨터가 도입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그에 매달려야했다.
처음에 컴퓨터는 내게 상응치 못할 고민덩어리였다. 아직도 만년필로 글을 쓰는 나에게 자판을 두들기며 글 쓰는 자체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고집은 오래가지 못했다(사실이지 요즘 나는 컴퓨터가 없으면 쉬 글을 쓰지 못한다).
이어서 나의 소통공간인 불로그를 열었다. 벌써 많은 지기들이 다녀갔다. 더러 댓글로 부추김을 남겼다. 고마운 이들이다. 답글을 남기고 서핑을 한다. 새로운 소식들이 알차다. 한때 개인 홈페이지가 대세였으나 요즘은 블로그다(물론 새롭게 터 잡은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밴드도 활기차다).
여러 지기들이 올려다 놓은 글들을 퍼 담아 왔다. 고맙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냥 모셔오지만 내 블로그에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남기는 걸 잊지 않는다. 그게 상대 블로거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근데 딱히 퍼 담아 놓고 싶은 기사에는 으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라는 문구가 명시돼 난감하다. 무한정 들여다보지만 저작권문의 없이 고스란히 옮겨놓지는 못한다는 엄명이다.
블로그 차림을 대충 끝내고 나면 카페에 들린다. 내가 맘에 두는 즐겨찾기 카페가 서른 군데나 된다. 그중 카페지기를 맡은 데가 네 곳, 특별회원으로 활동하는 카페가 일곱이다. 참여 밴드도 스물아홉이다. 카카오톡까지. 그래서 하루 동안 내가 카페에 투여하는 기간이 대략 세 시간 남짓 된다.
이쯤이면 가히 카페 중독이다. 하지만 카페 활동을 통해서 또 다른 만남을 잇는다는 점에서 생활에 활력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이 마음 편하다. 더러 애틋한 감정을 갖는 카페지기도 만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터넷 바다에서 영유하는 공감일 따름이다.
이렇듯 사이버 공간에서의 더없는 만남이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가능할까.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일상 자체가 너무나 헝클어지리라 생각된다. 한때사춘기적 문학적 열망을 펜팔로 신열을 앓았다. 치기 어린 순수함으로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들을 편지로 쏟아냈다. 그리고 어느 백일장에서 알게 모르게 만났을 때 적이 놀랐다. 그 대상이 바로 지척 간에 사는 또래였기 때문이었다. 펜팔 당사자가 늘 만나는 이웃집 여고생이었다.
아마 지금 내가 블로그를 통해서, 카페를 통해서 만나는 이들도 어쩌면 나와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익명성을 요하는 인터넷 바다에서 다행스런 항해를 계속한다.
오늘도 다음 내블로그에는 많은 지기들이 다녀갔다. 블로그 방문자가 4,300,614명이다. 하루 방문자도 658명이다. 놀랐다. 난 문지방 닳도록 이웃 블로그를 방문하거나 애써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블로그는 여러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을 꺼주지 않아야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필요의 악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개인 블로그를 쉬 닫지 못한다. 중독이 심하다.
오늘 하루의 일상은 블로그를 여는 데서 시작해서 블로그를 닫으면서 마감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까지 치면서도―.
_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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