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뒤끝
연말연초 편도선염을 지독하게 앓아 그 좋아하던 술담배를 딱 끊고 지냈다. 여태껏 계절 바뀌는 환절기면 연례행사치레였던 편도선염. 그때마다 딱히 일주일이면 씻은 듯 나았다. 한데 이번에는 달랐다. 병원진료에다 링거까지 맞았다. 약국 신세도 뻔지나게 졌다. 그런데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나잇살 하나 더한 탓일까. 면역력이 급박하게 달라졌다. 체력도 편도선염을 제어하기엔 딸렸다. 이래저래 20일정도 고생한 끝에 어제로 정상을 되찾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까. 그렇게도 병치레로 식겁했는데 그 고통이 끝나자마자 음주벽을 넘지 못했다. 제 버릇 개 주랴. 기분 좋게 마실 때는 건방증이 도진다. 몸 속에 알콜이 다 빠진 상태라 취기는 금방 왔다.
그런데 문제는 음주뒤끝이 문제였다. 꼭두새벽에 눈을 떠보니 숙취로 머리가 지근지근했다. 속도 거북했다. 예전같으면 이쯤이면 충분하게 숙취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떴어도 자리를 박차지 못하고 빌빌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한 끼만 굶어도 견뎌내지 못하는 나. 그렇지만 오늘은 아침점심을 건너뛰었다. 실로 가당찮은 일이었다.
사위가 빙빙 돌았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소주 두어병에 이렇게 맥을 못 추스러다니. 곁을 지키는 아내와 딸내미한테 면목이 안 섰다. 주군의 자존심이 한껏 구겨졌다. 그러고도 오후2시 무렵 겨우 일어나 씻고 라면 한 그릇으로 속풀이 했다. 숙취는 다 가셨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아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진영까지 일보러 갔다. 억지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내 죽을 맛이었다. 그러고도 도서관에 책 반납까지 했다.
설핏 감자탕 포장 하나 하자는 제안에 남편의 고역을 헤아렸는지 아내가 선뜻 응해주었다. 평소 아내는 바깥식당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조미료 다시다 범벅인 외식을 꺼려한다. 그런데도 오늘은 칼칼한 국물이 간절해졌다. 포장하기 위해 단골 감자탕가게로 갔으나,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게 상호를 내려버렸다. 24시 영업으로 야밤에도 문지방 닳을 정도로 손님이 복작대던 커다란 맛집이었는데, 경영난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칠원으로 돌아와 새로 문을 연 '남다른 감자탕'에서 중간 걸로 포장해서 셋이서 포만했다. 개업 초기 포장을 해서 그런지 양이 푸짐하고, 맛도 깔끔했다. 속풀이 단골식당으로 추천할만 했다. 덕분에 속이 개운하게 풀렸다. 역시 주독을 해장국으로 다스려야 한다.
하루 종일 음주뒤끝으로 후회하고 또 했다. 이번과 같은 고생은 처음이었다. 이후론 술이라면 넌더리가 나겠다. 오늘같이 숙취고통이 심하다면 두번 다시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시겠다. 이 얼마나 바보스련 짓이냐. 후회막급했다. 그래서 다짐 하나 했다. 가능한 음주는 절제하고, 간간히 피던 담배는 아예 끊겠다고. 작심삼일 할 헛된 맹세가 아니다.
분명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했다. 기회는 두번 주어지지 않는다. 이참에 나의 음주이력을 내려놓아야겠다. 건성으로 피던 흡연버릇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자연치유력을 잃기 전에 몸 생각해야 할 때다. 뱃살땜 에 365일 만삭이라는 아내의 지청구도 끝내야 하리.
"딸아, 배 나온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자기 관리를 하지 않은 사람이 가족 관리를 성실히 한다고 본적이 없다. 운동 부족으로 인한 병치레로 평생을 불행속에 살지도 모른다."
실로 섬찟한 얘기다.
_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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