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하루
어제까지 병치레로 두문불출했으나, 오늘은 툴툴 털고 바깥나들이를 했다. 평소 같으면 단출하게 산행갔을 테지만, 목간 다녀왔다. 오전에는 반찬거리 장만해서 딸내미 수원 보냈다. 몇 가지 준비하지 않았지만 손이 많이 갔다. 시집보내고 나면 바리바리 싸서 챙겨보내야 할 일이 머잖았다. 그래도 지금은 무겁고, 성가스럽다며 마다해서 그나마 손을 덜었다. 장모님 말씀에 딸년 키워놓아봤자 다 도둑년이랬다. 그만큼 친정 등속은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겨울 부곡온천은 붐볐다. 단골 사우나는 여전히 북새통이었다. 지난해 부곡하와이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 단박에 손님이 뜸했다. 그러나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온천 전체가 활기를 띄었다. 다행스러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온천이란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로서, 그 성분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걸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부곡온천은 78도의 유황온천으로 국내최고의 온천수다.
탕 속에 들어가보니 온통 희붐해서 앞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워낙 입욕객이 많았다. 한참만에 가려보니 거의다 까까머리 중고생들이었다. 인근 부곡스포츠파크에 전지훈련 온 경향각지 축구선수들이었다. 다들 훤칠한 몸매로 한껏 단련돼 부러울만치 다부졌다. 세신을 위해 앉을 자리를 찾았으나, 어디 한 쪽도 빈 데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욕조에 들어가 삼십분을 기다려 궁둥이 하나 들이댈 자리를 차지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목간 가고, 날마다 샤워를 하는데도 때밀자 그냥 우동사리가 사렸다. 마치 묵은 때를 벗기듯 밀고 또 밀어도 땟국은 그치지 않았다. 달포가량 편도선염으로 밤마다 신열을 앓았던 땀이 눅은 때로 앉았나보다. 양팔이 욱신하도록 밀어도 하얀 우동사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체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아도 땟국은 부지런했다. 오늘 같으면 숫제 수챗구멍 막힐까봐 걱정됐다.
한참을 때밀다보니 어느새 사위가 조용했다. 그새 그 많던 입욕객이 목욕을 마치고 나갔다. 종잡아 시간 반은 애써 몸을 부셨다. 근래 들어 이만큼 목욕에 밀착한 적은 없었다. 대개 사우나 목욕탕은 남탕 벌어 여탕 적자를 감당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목욕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30분 내외다. 그만큼 물을 덜 쓰는 셈이다. 맨날 때만 불리고 나온다는 아내 지청구를 무색하게 했다.
그리고 처갓집에 들렀다. 썰렁하게 빈집, 맘이 짠했다. 장모님이 서울 언니댁으로 행차 가신 지가 달포가 지났다. 시골집은 집지킴이의 따뜻한 온기를 지녀야 제 구실을 한다. 마당 한켠에 고이 말려둔 대추 한 줌 집어들고 돌아왔다. 닭백숙요리에 넣을까, 칼칼한 목감기에 우려억을 요량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랑 행자 앞세우고 읍내 두루 섭렵했다. 그제보다 날씨가 많이 누그러졌다. 근데도 행자녀석은 돌돌돌 떨었다. 너무 과보호해서 키운 탓이다. 내처 키위야 환경에 곧바로 적응하고 건강하게 자라는데, 잘못든 버릇 어쩌랴. 녀석의 죄과는 아닌데. 암튼 행자 덕분에 오랜만에 땀나도록 걸었다.
아내는 배추전으로 간단하게 때웠으나, 나는 김치랑 멸치무침으로 양푼이밥을 먹었다. 그러니 기껏 운동해도 뱃살은 제자리다. 먹성 자체를 제어하지 못한다. 먹보의 한계다. 그리고나니 휴일 하루가 다 갔다.
_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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