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샘예, 배고파예
“해동아, 와카노?니 오늘은 마니 힘들어 보이네? 안 조은 이리 생긴기가?”
“아입니더. 선샘예, 배가 고파서그라예. 어제 지늑부터 진짜로 굴뭣따아임니꺼.”
“와? 배 아판나?”
“그런기아이라예. 아부지가 지베 안 드러오니까 바블 몬묵엇슴니더.”
순간, 뜨끔했다. 잠시나마 해동이의 가정형편을 잊고 지냈다! 해동(가명, 12세)이는 엄마 없이 아빠랑 산다. 녀석의 말로는 엄마가 계시다고 하는데, 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엄마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해동이 아빠는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떠돌기 때문에 녀석은 그때마다 집에 혼자 남는다. 그러니 아빠가 멀리 일자리 찾아 떠나면 굶고 지내는 게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첫째 수업시간이 다 되었다. 그렇지만 해동이를 불러 사발면 하나를 사오게 했다. 우선 시장기만 다스릴 요량이었다. 학교가 주택으로 에둘러 위치해 근처에는 아침을 챙겨 먹을 만한 식당이 없다. 어린 아이한테 아침부터 라면을 먹이려니 뭣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머뭇거릴 일도 아니었다. 부랴부랴 동학년 연구실에 불러다가 커피포터에 물을 끓여서 사발면을 불렸다. 해동이는 채 불지도 않은 사발면 한 그릇을 훌훌 비웠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국물 하나 남기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근데 반 아이들은 해동이가 사발면을 먹는 사실만으로 짐짓 부러운 눈빛이다. 벌써 여러번째라 솔솔 풍기는 라면냄새에 다짜고짜로 입을 모은다.
“선샘예, 우리도 사발면 한 개만 끼리주이소예!”
녀석들, 사발면이 먹고 싶다고 야단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따뜻하게 챙겨주는 밥을 먹으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사발면 하나는 간식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아이들과 해동이는 너무나 다른 가정환경이다. 요즘 세상에도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많다
나라 경제 사정이 나락으로 치닫는 지금, 도회지의 노동자들만 힘 드는 게 아니다. 농촌 사람들은 그에 못지않게 힘겹다. 사는 게 너무 눈물겹다. 그러다 보니 여차하면 가정이 해체되고, 마침내는 농촌에는 늙은이들만 당그랗게 남았다. 아들며느리가 손놓고 떠난 손자손녀를 애달아하며 키운다. 이와 같은 조손가정의 난마는 도회지의 결손가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더구나 해동이같이 부모가 서로 등진 상태로 남겨진 경우는 양육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나마 학교급식과 방과후 보육실 혜택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사발면 하나를 먹은 해동이는 금방 환한 낯빛을 되찾았다. 어쨌거나 녀석은 성격이 좋다. 그래서 친구 간에 어울림이 원만하다. 어디 하나 궂긴 데 없이 해맑다. 녀석은 어른이 저질러 놓은 잘못에도 그다지 구속을 받지 않는다. 첫째 시간을 마치고 우유급식을 했다. 그만하면 점심때까지는 두어 끼 굶었던 배고픔을 벌충된다.
비록 사발면 하나 끓였지만, 해동이가 환하게 웃으면 마음이 놓인다. 며칠째 세찬 바람도 잦아들었다. 하늘이 말갛다. 당장에 사발면 한 박스를 사다놓아야겠다. 녀석이 배고프다는 말을 하기 전에.
__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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