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혀는 강철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벤다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5. 15. 14:05

본문

혀는 강철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벤다


카테고리 : 박종국의 세상만사 | 조회수 : 8792011-12-25 오후 11:15:00


박종국의 글밭 2011-293

 

혀는 강철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벤다

 

박 종 국

 

문득 내뱉은 말 한 마디로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있는지요? 속을 삼키지 못하고 그냥 툭 던진 말 한 마디로 서로 마음의 벽을 쌓고 지낸 적이 있습니까? 물론 마땅히 해야 할 말은 내뱉어야 속이 시원합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하여 서로에게 얼마나 아픈 상처를 주었나요? 말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만,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말은 오래 생각한 끝에 한 말입니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옮아갈수록 보태어져서 거칠어집니다. 온정이 깃든 말은 삼동(三冬)의 추위도 녹입니다. 친절한 말은 봄의 햇살처럼 따사롭습니다. 그러나 남을 폄하하거나 빗대어서 하는 말은 질이 좋지 못한 사람의 손찌검보다 더 나쁩니다. 말로 입은 상처는 칼에 맞아 입은 상처보다 더 아립니다.

 

대개 사람들은 마음이 장미꽃처럼 아름다워서 향기로운 말로 나직이 속삭입니다. 그런 대화의 자리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넘쳐납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근데도 우리는 무심코 허튼소리를 합니다. 흔히 행동이 재바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러죠. “이 바보 멍청아, 그것도 못해. 뭘 그렇게 꾸물대고 있어.”라고.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아이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활달한 아이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바보가 되고 맙니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강제할 만큼 말의 힘은 강합니다. 그러나 남을 헤아리는 따뜻한 말은 누구에게나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줍니다. 그런 말이라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하게 합니다.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허튼 마음을 진정시키기 때문이지요. 말을 좋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깨끗하게 부시는 일입니다. 옷감은 염색에서, 술은 냄새에서, 꽃은 향기에서, 사람은 말투에서 그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때론 기가 막힌 일이 생깁니다. 그땐 어떻게 대처하나요? 당장에 얼굴을 붉히고 목청을 돋우지 않나요? 보통 사람이라면 그러한 감정표현이 오히려 솔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처구이 없는 일을 당했더라도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감정에 치우쳐 무심코 내뱉는 말에는 가시가 돋아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후에 얘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약간 뜸을 들이는 것이 스스로의 낯짝을 지키는 일입니다.

 

오늘 목욕탕에서 말 안 듣는다고 등짝을 후리치며 욕지거리를 하는 못난 아비를 보았습니다. 눈물 바가지를 쏟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의 눈빛이 참 딱해 보였습니다. 저도 그런 태도를 보일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스펀지 상태로 무엇이든 금방 흡수합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판단하지 못하고 여과 없이 받아들입니다. 부모가 하는 말버릇이며 습관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 합니다.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해도 아이한테는 감정을 억눌려야합니다. 아이는 어른들의 말 빛을 오롯이 비춰내는 거울입니다.

 

혀는 강철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벤다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로 스스로를 옭아맵니다. 놓아버린 말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의해서 그 자신을 나타내고 평가됩니다. 말 한 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 놓는 셈입니다.

 

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란 정신생활의 목록일 뿐만 아니라 지표여서 그와 함께 자신의 삶이 풍부해지고 그와 함께 쇠약해집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수많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말을 즐겨 쓰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향기로운 말은 남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하고 찡그린 얼굴에 꽃을 피워주기도 합니다. 아세요? 2011. 12. 2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