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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땜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5. 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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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땜


카테고리 : 박종국의 세상만사 | 조회수 : 9882012-01-03 오후 3:41:00


[2012 박종국의 칼럼-2]

액땜

박 종 국

액땜일까. 지난해 세밑부터 몸치를 심하게 하고 있다. 연말 학교문집 원고를 정리하느라 의자에 오래 앉았던 탓만 아니다. 엉덩이짝이 쑤시더니 며칠 만에 앉았다 일어서는데 영 엉거주춤하게 되었다. 급한 일 미뤄두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혀를 찼다. 허리가 이만큼 망가지도록 왜 방치했냐는 핀잔이었다. 허리디스크에다 좌골신경통까지 겹쳤단다. 그래서 그런지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날 때면 허리·엉덩이·무릎후면·장딴지·발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통증을 견뎌내기 힘들다.

연말연시 모임도 잦고 찾아볼 때도 많은데 거의 두문불출했다. 오죽했으면 형님 댁도 처가도 새해인사가 빠졌다. 물론 내 속을 말하지 않았으니 ‘죽일 놈’하며 막되 먹은 놈으로 취급했을 터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사우나에 거의 살다시피 한다. 그런 덕분인지 이제는 잠시나마 의자에 앉아있을 만하다. 대부분의 신경통이 그렇듯이 예고 없이 잦아드는 통증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오른쪽 엉덩이에 의지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체가 대단한 인내다.

몸이 아프고 보니 그동안 젊은 혈기만 믿고 몸을 너무 혹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덜렁 아파보니 아내도 아이들도 소용이 없다. 물론 내가 아픈 티를 내지 않은 까닭도 있다. 그러나 연말 이런저런 일로 아내와 언쟁이 있은 이후로 사이가 원만치 못한 연유도 겹쳤다. 가제는 게 편이라고 아이들도 제 엄마만 두둔하고 있는 처지다. 하여 나는 일체 말문을 닫고 지낸다. 그럴 즈음 허리통증이 툭 불거졌으니 영 앓던 이 신세다.

오늘도 병원 가서 침을 맞고 병상에 누워 있으니 오만가지 일들이 다 떠올랐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은 좋았던 일보다 지지고 볶았던 일들이 더 많았다. 한 올 한 올 실타래 풀 듯 헤아려보니 다 부질없는 일들이었다. 한데도 이해되지 않은 것은 우리 집은 여자가 너무 코가 세다는 거다. 조그만 일 하나에도 너무 단말마적으로 남자의 자존심을 뭉개버린다(남들이 들으면 망신살이 뻗칠 얘기다). 머리 굵을 대로 굵은 아이들도 사단이 벌어졌다하면 객관적인 정황 판단보다는 무조건 제 에미쪽으로 치우쳐서는 나를 데면데면하게 대한다.

누군가 그랬다. 자식 애지중지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물론 요즘 세상에 덕을 보기 위해서 아들딸을 키우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적어도 최소한의 사랑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적어도 객관화해서 공감하고 소통할 일이다. 살아보니 난 아내는 물론 자식들한테도 좋은 아비 대접 받기는 글렀다. 모임에 나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보면 일맥상통한 이야기를 한다. 가장으로서 든든하게 대접받고 사는 사람들이 드문 세상이다. 그러니 가정을 에워싸기보다는 엇박자로 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사람을 참 좋아한다. 오죽했으면 자다가도 부르면 모임자리 나갈까. 한데도 가정에서만큼은 영 걸림돌이다. 때때로 아내가, 아이들이 싫어진다(이는 아내나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물론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극장이나 인간시대를 보면 다 큰 아이 입양해서도 행복하게 잘 살던데,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이도저도 아니다. 애초 콩고물을 잘 못 묻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제 새끼가 예쁘다 해도 아이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을 때는 따끔한 일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집엔 그러한 잣대가 부족하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니까 자꾸만 군더더기 같은 생각들만 떠오른다. 허리통증이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듯하다. 진통제를 거푸 먹었지만 그때뿐이다. 점심 무렵 주오돈 문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메일로는 거의 날마다 삶글(신변잡기)을 나누고 있지만, 문형의 전화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하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어디냐고 여쭈었더니 지척에서 다리품을 팔고 있다고 하셨다. 점심 같이 들자고 말씀드렸더니 학포를 거쳐 본포 다리를 건너시겠다고 마다하셨다. 새해 덕담을 나누고 서로의 건필을 바랬다.

재작년부터 이태를 고교동창회장을 연임했고, 작년에는 고교졸업30주년추진위원장의 소임까지 도맡았다. 어쨌거나 학교 근무하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건강하나 자신했기에 그 많은 일들을 걱정하지 않았는데, 새해 벽두부터 허리통을 앓고 보니 자못 건강을 챙기게 된다. 그렇잖아도 올해는 고교총동문회 부회장에다 경남작가회의 사무국장까지 맡았다. 또한 근무지도 옮겨야 된다. 몸이 두 개라도 힘겨울 텐데 당장에 허리를 끊듯 아린 통증을 참아낼 재간이 없다. 201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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