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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잔잔한 감동을 주는 숨겨진 실화 ‘디그’

한국작가회의/영화연극음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5. 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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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잔잔한 감동을 주는 숨겨진 실화 ‘디그’


 

고고학과 관련된 영화라면 할리우드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떠오른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인디아나 박사를 보며 고고학자의 전형으로 생각했고 고고학을 다룬 영화는 스펙터클한 액션어드벤처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더 디그’는 고고학과 관련된 영화지만 ‘인디아나 존스’와는 전혀 다르게 잔잔하고 감성적인 전개로 깊은 울림을 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의 영국, 미망인이 된 이디스 프리티(캐리 멀리건 분)는 귀여운 아들 로버트(아치 반스 분)와 큰 저택에 살고 있다.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프리티 부부는 집 근처 큰 들판에 솟아있는 둔덕에 무엇인가 묻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넓은 땅을 구입하지만 땅을 파보지도 못한 채 남편을 먼저 보내야 했다. 홀로 남은 이디스는 배질 브라운(랄프 파인즈 분)을 고용해 발굴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둔덕에서 영국 고고학사에서 중요한 앵글로색슨족의 배 한 척이 발견된다.

 

영화는 진정한 리더쉽이란 인간에 대한 포용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인의 기원이 되는 앵글로색슨족의 유물이 발견되자 영국 정부는 박물관 직원과 고고학자를 파견시킨다. 변변한 학력이 없는 배질은 박물관 직원의 말에 따라 발굴 작업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디스는 자신의 사유지에서 발견된 유물이란 점을 강조하며 발굴 작업에 배질과 함께 끝낼 것을 주장하고 배질을 발굴참여자로 기록되도록 노력한다. 또한 발굴 작업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유물을 기증하는 등 인간적인 리더쉽을 보여준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것도 말한다. 로버트와 배질 모두 상상력과 호기심이 강하다. 미지의 세계, 우주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가득한 로버트는 만화와 영화를 보며 상상력을 키워간다.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질문하지만 그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는 사람은 배질뿐이다. 그런데 배질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열정적으로 발굴 작업에 매달릴 수 있는 이유도 과거 그 시대에 살았던 인간 역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발굴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일이며 후대에 그들의 뿌리를 알려주는 작업이다. 후대와 선대를 잇는 발굴의 현장, 배질을 통해 발굴의 의미를 되짚을 수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불안한 여건 하에서도 발굴을 진행하는 등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이 모여 인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려지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첫 장면에서부터 현장감을 살리는 핸드 헨들 기법으로 배질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임을 말한다. 또한 매 장면마다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촬영 그리고 카메라 구도는 큰 기교 없이도 인물의 감정을 적확하게 표현해낸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상미를 보탠다. 영화는 심미적 감성이 풍부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과거를 파고드는 고고학은 시대착오적인 학문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에 살았던 인간의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을 밝혀냄으로써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영화 속 배질의 대사처럼 과거가 현재와 미래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고고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턴 후(Sutton Hoo) 유적 발굴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더 디그’는 고고학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동시에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과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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