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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관 유감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9. 2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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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관 유감


 
박종국



한 달에 두어 번 머리를 단장한다. 으레 남자늗 이발관에 간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론 줄곧 미용실에만 다녔다. 어언 30년이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군대에 입대하면서까지 미용실에서 박박 밀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미용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90년 초입만 해도 미용실 출입하는 남자는 드물었다. 그래서 여성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에괜히 주뼛해지고, 눈길 둘 데 없었다.

미용실이 어떤 곳이냐. 세상에 입심 좋은 아줌마가 다 모인다. 그런 데 서른 초입의 사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았으니 두고두고 얘깃거리였다. 그러고도 난 미용실을 벗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다닌다. 그것도 달랑 혼자서 여러 아줌마를 상대로 맞장구치면서까지.
 
이렇듯 기를 쓰고 미용실을 고집하는 이유는 딴 게 아니다. 비염을 크게 앓아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며칠 알레르기로 고생했다. 특히, 이발관 포마드 머릿기름 냄새는 가히 접촉 불가였다. 오죽했으면 아직까지도 카레를 잘 먹지 않을까. 물론, 미용실 퍼머넌트 냄새도 만만찮았다. 그렇지만 용케도 그 냄새는 알레르기와 무관했다. 계절이 바뀔때면 꽃가루 땜에 신경이 곤두선다. 나 하나쯤 이발관에 들리지 않는다고 밥벌이에 지장이 없었을 테지만, 이 자리 빌어 동네 이발사님께 죄송 말씀을 전한다.
 
그저께도 아들 앞세우고 미용실을 찾았다. 그런데 요즘 미용실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유명하다는 미용실일수록 남자미용사 차지다. 사근사근한 말씨며, 나긋나긋한 몸짓이 여느 여성미용사 못지않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낭창낭창 하다고 할까, 아무튼 크게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아들도 깎은 머리가 맘에 드는지 돈 아깝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 이 같은 환대는 이발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거다. 
 
어쨌거나 육십줄 문턱의 중늙은이가 미용실 기웃대는 게 눈꼴사납단다. 친구 말마따나 이제부턴 이발관으로 직행할까보다. 그러면 그 수다스런 아줌마의 넋두리는 다시 들을 수 없어 아쉽겠다. 30년 일관하였던 일을 하루아침에 접기도 그렇다. 그나저나 한 골목 건너 다닥다닥 자리잡은 미용실을 비켜서서 이발소 찾기 쉽지 않다.

"아버지가 하시던 걸 물려받아서 2대째 하요. 일제 때 문을 열었응께, 한 90년 됐제. 아버지가 은퇴하시고, 나 혼자 한 지도 55년 정도 됐으닝께."

동네 이발사 아저씨의 말이다. 어릴 때부터 이발관에서 아버지를 돕던 박 씨는 군대에 다녀온 기간을 빼고는 줄곧 이발관을 지켰다. 이발을 해주면서 번 돈으로 2남 1녀를 가르치고 혼인을 시켰다. 하지만 시대변화 앞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고 했다.

"옛날에는 잘 나갔제. 동네사람이 다 왔응께. 날마다 열댓 명씩은 깎았지. 추석이나 설 명절을 앞두고는 줄을 섰어. 이발할라고. 이발소도 밤을 지새웠고. 직공을 두고도 그렇게 했어. 직공들 발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박 씨의 회상이다. 지금은 간간이 찾아오는 단골손님뿐이다. 하루 한 명이 올까 말까 한다. 모두 60∼70대 주민이다. 손님의 발길이 아예 없는 날도 부지기수다. 이발 요금은 8000원, 면도까지 하면 1만 원을 받는다.

"소일 허요. 노느니, 심심풀이로. 내 집잉께 하제. 남의 집 같으믄 하겄소? 세 줌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할라고 하는디, 모르겄어. 얼마나 더 할지는. 눈도 어두워져서 오래 하기는 힘들 것 같은디."

박 씨의 말에서 속절없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다이얼비누냄새, 아저씨들의 로션냄새, 문득 이발소 냄새가 그리운 아침이다. 이제 이발소 냄새는 퇴장당한 추억의 냄새일까. 마침 읍내 사거리 지나다보니 신장개업한 이발소가 눈에 띄었다. 대단한 배짱도전이다.

|박종국 르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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