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기는 '황금 밀밭 위의 파란 하늘', 또 한편으로는 '황금 해바라기 위의 파란 하늘'이다. 세계 해바라기 기름의 60% 이상이 흑해의 비옥한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밀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향한다. 해바라기 기름도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지속되면 지구 식량 물가가 폭등하게 된다.
러시아 침공 직후 한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러시아 점령군에게 외쳤다. "도대체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군인이 머뭇거리자 이렇게 말했다.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를 넣어둬라. 그러면 네가 죽은 뒤 우크라이나에서 해바라기가 자랄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잠시 시계추를 돌려 1970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 <해바라기>로 돌아가보자. 데 시카의 후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통속적인 신파 멜로드라마인데, 내 유년 시절의 최고 영화이기도 하다. 지금도 주제곡을 들으면, 파른 하늘을 이고 진 채 하늘거리는 대평원의 해바라기 밭이 나오는 오프닝 장면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된다.
주인공 소피아 로렌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이탈리아 남편을 찾아 우크라이나까지 가게 된다. 황금색 해바라기가 남실대는 나라. 그런데 소피아 로렌은 여기에서 우크라이나인은 전쟁 때 히틀러가 아니라 소련군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왜 그랬을까?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오랜 압제. 심지어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수백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인을 처형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여기에 소련의 혁명 자금을 위한답시고 우크라이나 곡창지대를 남김없이 수탈해갔다. 그 덕에 대기근을 경유하며 또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굶어 죽어야 했다. 오죽했으면 인육을 사고 파는 '블랙 마켓'이 형성될 정도였다.
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 소련의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하게 늘어선 걸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하찮은 식민지였다. 그래서 새로운 점령군 독일 나치가 등장했을 때, 그들과 함께 싸우면 지긋지긋한 소련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를 총알받이로 잔인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이 흑해의 곡창 지대는 바로 시체의 평야였다. 소련과 독일에 이용되면서 죽어간 우크라이나인들, 소련군, 독일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군인들의 무덤. 그 시체들 위에 해바라기가 자라 오늘까지도 파란 하늘을 인 채 하늘거린다.
러시아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군인에게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를 넣어두라는 한 말은 바로 저 광활한 해바라기 평원이 간직하는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말이다. 침략에 대한 저주이면서 평화의 염원이었다.
이런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우크라이나를 향해 왜 러시아 말을 듣지 않았냐고 말하는 한국 정치병 아재는 이제 그만 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제발 그만 빤스 좀 내려라.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어여,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고 해바라기 꽃도 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