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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된 냉이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3. 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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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된 냉이


주오돈(여산자연생태학교 교장)


올봄에 내가 산과 들을 누비면서 캔 나물은 여러 종류다. 그 가운데 쑥과 냉이가 가장 많아 이웃과 나눴다. 그다음이 전화 나물이다. 진례산성 동문지 너머와 진북 베틀산 기슭, 진동 도만리 산모롱이를 돌면서 캤다. 진례 송정으로 가는 임도에서 짚신나물을 캤고, 구룡산 기슭에서 엉겅퀴와 머위를 캐왔다. 달래와 부지깽이와 돌미나리를 채집하기도 했다.

가뭄이 오래간 지속되다 세 차례 비가 내렸다. 덕분에 초목은 생기를 띠고, 날로 푸름을 더해간다. 봄에는 어디든 길을 내서 발품을 팔면 친환경 찬거리는 얼마든지 확보한다. 그 덕분에 당분간 마트나 재래시장에서 푸성귀를 사는 일은 없다. 산나물은 우리 집 식탁에만 올리지 않고, 귀로에 맞은편 아파트 상가 주점에서 부침이나 튀김으로 술안주를 마련해 지인과 함께 봄 내음을 맡기도 했다.

 

 

삼월 다섯째 화요일. 산자락에서 본격적으로 산나물을 마련하기에는 철이 이른 편이다. 거리의 벚꽃이 저물고, 느티나무 가로수가 연녹색 잎이 돋을 즈음이 되어야 다래 순이나 취나물을 뜯는다. 산나물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하고, 막바지 들나물에 해당할 냉이를 캐러 길을 나섰다. 냉이는 쇠어지면 꽃이 피고, 뿌리에 심이 박혀 그렇지 않은 성체만 골라 캐야 한다.

닷새 전 함안 대산에서 송도교를 건너 남강 하류를 거슬러 백곡교에서 악양둑방으로 트레킹을 했다. 그날 의령 지정면 성당마을 못 미친 남강 둔치를 지나면서 봐둔 냉이를 캐러 길을 나섰다. 회사원이 출근하고, 학생이 등교할 시간대에 동마산병원 앞에서 의령 지정면 두곡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두곡리는 낙동강과 인접한 심심산골로 월북한 한글학자 이극로 태생지다.

농어촌버스가 칠원과 대산을 지나 남강 하류를 가로지른 송도교를 건너 마전마을을 지날 때 내렸다. 마전에서 성당으로 가는 남강 하류는 4대강 사업과 무관해 둔치 경작지가 그대로 살았다. 멀게는 지리산에서 실려 왔을 흙과 모래가 켜켜이 쌓인 기름진 충적토는 작물이 잘 자란다. 오래전 남강댐의 축조로 여름철 태풍 홍수에도 강물이 넘치지 않아 농사에 어려움이 없었다.

 

 

마전마을과 성당마을과 떨어진 둑 너머 둔치는 마늘과 양파를 가꾸었고, 일부 구역은 보리밭이었다. 마늘과 보리는 노지에서 자라고, 양파는 비닐하우스에서 속성으로 키워 일찍 수확해 시장에 낸다. 내가 봐둔 냉이는 마늘밭 가장자리에 많았다. 그런데 며칠 새 농부가 냉이에 제초제를 뿌려 시들시들해져 안쓰러웠다. 농부에겐 냉이는 마늘 농사에 방해가 되는 잡초였다.

생태계 변화는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자연재해를 입기도 하지만, 산불이나 농약 살포로 인한 인위적인 피해도 생긴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촌인데 마늘밭 가장자리 냉이를 김을 매듯 일일이 뽑을 인력이 기다릴 리 없다. 내 생각에는 마늘을 심어 거둬 수익에 미치지 못해도 냉이를 캐서 시장에 내다 팔아도 꽤 되는 농가 소득이 될 텐데 발상의 차이를 느꼈다.

 

 

마음먹고 나선 걸음이 헛일이 될 수 없기에 노지 마늘밭이 아닌 양파 비닐하우스 주변과 보리밭 이랑에 자라는 냉이를 캐 모았다. 그곳은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 냉이가 온전하게 남았다. 땅이 워낙 기름져 농사가 잘되지만, 비를 맞고 자란 냉이도 보드랍고 싱그러웠다. 캔 냉이는 마전마을로 나오다가 물이 맑은 천연 늪지에서 뿌리에 붙은 흙을 털고 헹구었다.

마전마을을 지나면서 쑥과 달래를 몇 가닥 캐 배낭에 채워 옛 송도교를 지나 대산 구혜로 왔다. 면 소재지에서 농어촌버스를 타고 칠원과 내서를 거쳐 합성동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집 근처 이르러 미리 연락이 닿은 친구 둘과 주점에 마주 앉아 잔을 채웠다. 주인 아낙이 조기구이에 이어 내가 배낭에서 꺼내준 냉이로 전을 부쳐내니 좁은 실내에 봄 향기가 번졌다. 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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