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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밥

세상사는얘기/명상사색명언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10. 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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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밥

박종국

요즘 농익어가는 가을햇살 덕분에 또박또박 흙 밟는 기분이 정겹다. 길섶에 핀 풀꽃도 만난다. 가을에도 봄철 못지않게 많은 꽃이 핀다. 뜰에는 여름철부터 핀 맨드라미,  칸나, 무궁화,  백일홍 등이 계속해서 피었고, 코스모스, 국화, 금계 등의 꽃이 새로 핀다. 산과 들에도 여러 가지 꽃이 핀다. 구절초, 쑥부쟁이, 고마리, 잔대, 무릇, 개여뀌, 해바라기, 코스모스 등 하고많다.

산비탈 구릉에 다람쥐 무리 도토리 줍느라 바쁘다. 가로수도 단풍 향연에 겹다. 가을 대지는 눈마중부터 풍성하다. 눈길손길 닿는데마다 화폭 가득 채운다. 이즈음 누구나 시인이 된다. 풀꽃하나 단풍하나에도 시심 절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이솝이야기를 보면 여우처럼 교활한 꾀를 두둔한다. 그리고 그 꾀에 속아 넘어가는 동물을 어리석다고 지적하며, 좀 더 세상을 악하게 살라고 일깨운다. 남을 속이는 사람의 부도덕을 지적하기보다는, 순진하게 남의 말을 믿는 사람에게 정신 차리라 경고한다. 결국 '항상 남을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현실에서 여우와 같은 사람이 '수완 좋고', '능력 좋다'는 말을 듣는다. 예나지금이나 남을 속이고, 영악스러운 사람이 잘 산다. 때문에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목을 맨다. 수완만 좋다면, 세상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대신 시키는 자의 천국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품의 용량과 성분을 속인다. 가짜 고춧가루와 참기름, 불량 제품을 만들어 건강을 해치는 양심 없는 생산자가 많다. 부실 공사를 예사로 하는 건설업자, 부정부패한 짓을 밥 먹듯이 하는 공무원도 부지기수다. 그 뿐만 아니다. 남을 속이는 치사한 사기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먹는 뻔뻔한 정치인도 많다. 아니꼽게도 아직도 그런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기 펴고 사는 세상이다.

반면에, 전혀 남을 의심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다가 되레 손해를 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는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다. 선의로 빚보증을 서 주었다가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은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잘 아는 사람의 권유로 돈을 투자했다가 속아서 돈을 날린 사람도 많다. 논문을 표절하고, 대필작품으로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자기표현에 어눌한 작가가 문단을 좀 먹는다. 아무튼 남의 등 쳐먹고 사는 인간이 버젓이 잘 산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주위 사람의 반응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십중팔구 그 사람에게 '못난이'니, '멍청이'니 하는 비난을 퍼부어 댄다. 당사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봐야 무슨 뾰족한 묘안도 없다. 그냥 앉아서 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여우의 밥이다.

이렇게 보면, 이솝이야기는 세상의 그릇된 일면을 보여 준다. 단순히 여우같은 사람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라 가르치고, 남을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남을 속여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게 현명한 처사인 양 따르도록 저의는 부담스럽다.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히려 까마귀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한데도 우리 사회는 애틋한 인간의 정을 나누고,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하는 당연함보다는 야비한 일이 우선시되어 실망스럽다.

진정 착한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는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그 무엇에도 비굴하지 않는 당당한 힘을 지녀야 한다. 착한 사람이 힘을 지녔을 때만 나쁜 인간을 내친다. 부정하고 불의한 사람을 고발하고 단죄한다. 그럴 때만이 까마귀같이 연약한 사람도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제각기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덮어놓고 까마귀 편을 들지 않는다. 내가 싫은 일은 남도 싫다.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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