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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착(放下着)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3. 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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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놓아라
빙하착(放下着)

박 종 국

산사 스님 사이에 빙하착이란 화두가 자주 등장합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탁발(수도승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시주받는 일)을 하러 길을 떠나 산세가 가파른 절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절벽 아래서 '사람 살려!' 라는 절박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발을 헛디뎠는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게 어찌된 된 영문이오?"
라고 스님이 물어보니 다급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사실 나는 앞을 못 보는 소경올시다. 산 넘어 마을로 양식을 얻으러 가던 중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행히 이렇게 나뭇가지를 붙잡고 살았습니다. 뉘신지 모르오나 어서 나 좀 구해주시오. 이제 힘이 빠져서 손을 놓을 지경이오!"
하는 절박한 얘기였습니다.

스님이 아래를 살펴보니, 그 장님이 붙잡고 매달린는 나뭇가지는 땅 바닥에서 겨우 사람 키 하나 정도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높이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장님에게 외쳤습니다.
"지금 잡은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 버리시오. 그러면 더는 힘 안들이고 편안해지오!"
그러자, 절벽 밑에서 봉사가 애처롭게 애원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면 천길 만길 낭떠리지로 떨어져 죽는데, 앞 못 보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좀 살려주시오!"
라고 애걸복걸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봉사의 애원에도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쳤습니다. 그런 와중에 힘이 빠진 봉사가 손을 놓자마자 땅 위으로 툭 떨어지며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장님은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졸지간에 벌어졌던 어처구니 상황을 파악하고 멋쩍어 하며 인사치례도 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리도 앞 못 보는 장님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봉사가 붙잡은 나뭇가지가 오직 자신을 살려주는 생명줄인 줄 알고 죽기살기로 움켜쥐듯이, 끝없는 욕망에 집착하며, 현재 자신이 가진 욕망을 놓아버리면 곧 죽고 못살듯이 아둥바둥 발버둥치는 눈뜬 장님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썩은 동아줄을 영원한 생명줄로 착각하고, 끝까지 붙들고 발버둥치는 불쌍한 우리네 중생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집착하는 일을 과감하게 놓아 버려야 편안하게 사는데,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빙하착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라,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이 얽혔습니다. 그 모두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버리라는 말이 빙하착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선승 조주스님이 말씀하셨다는 착득거(着得去)는 '지고 가거라'는 말로 빙하착의 반대어입니다.

|박종국참살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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