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월, 감이 발갛게 익어간다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0. 5. 14:59

본문

시월, 감이 발갛게 익어간다

박종국

가을 애상이 깊다. 구월에 맞이했던 감흥과는 사뭇 다르다. 세월이 빠르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게 무르익어가는 이즈음이 참 좋다. 시새워 짙푸름을 자랑했던 신록도 오색물감을 풀어놓을 채비에 바쁘다. 벚나무는 뭣에 그리 바쁜지 벌써 잎을 다 떨구었다.

아침나절 들판을 걸었다. 두어번 태풍이 스쳤건만 야무지게 여문 벼이삭이 찰랑대는 소리 정겹다. 황금들판이다. 메뚜기 떼 푸르륵 날았다. 발끝에 채이는 물방울, 아침에도 안개가 짙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긴 논배미를 다 지났다. 예년같으면 알곡을 다 털었을텐데, 추석이 한달여 빨라 시절이 뒤미쳐온다.

이즈음 농촌은 온통 바쁘다. 알곡을 털자마자 양파마늘을 심어야하고, 콩타작도 하고, 깨도 털어야한다. 들깨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노랗게 물든 콩잎을 따다가 된장에 묻어두어야 한다. 이렇듯 콩잎은 한소끔 된장 기운이 배여들면 맛나는 밥도둑이 된다. 들깻잎, 고구마순도 두고두고 좋은 밥반찬이다.

들길을 벗어나 고샅길을 타박타박 걸으니 주먹만한 동이감이 도톰하게 잘 익었다. 까치가 해작질을 하지 않으면 충분히 야문 결실이 가능하겠다. 지척에 사과대추도 가지가 휘어지게 영글었다. 고만고만하던 대추가 이마큼 크다니 요즘 과일육종은 종잡을 수 없다. 그만큼 유전자 변종이 많다.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한참을 걸었는지 희붐하던 안개가 다 걷혔다. 둔덕 바위에 앉아 휴대폰으로 이 글을 쓰자니 손이 바쁘다. 그럴 때 한 무리 유기견이 지나간다. 다복솔처럼 더부룩하게 자란 털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키우다가 내다버린 강아지였을텐데, 퀭한 눈빛을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배가 홀쭉한 게 영 맘에 걸렸다. 그에 비하면 우리집 강아지 행자는 분명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보다.

까치가 울어댄다. 한참 어렸을 때 까치는 마을 전체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였다. 오죽했으면 우체국 상징을 까치로, 시중 은행 로고도 까치로 삼았을까?그러나 지금의 까치는 길조가 아니라 흉조다. 더욱이 과수재배 농가는 어지간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녀석은 하필이면 최상급만 찾아다니며 쪼아댄다. 밭머리 수수도 빨간 거물망을 뒤집어 썼다. 덩달아 허수아비도 참새 쫓으랴 바쁘다.

이렇듯 이즈음의 농촌은 겨를없이 바쁘다.

|박종국참살이글

'박종국에세이 > 박종국칼럼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의(失意)  (0) 2023.10.17
십인십색  (1) 2023.10.14
무궁화, 나라꽃  (0) 2023.09.30
불면으로 야심한 밤  (3) 2023.09.26
세상을 보는 맑은 눈  (0) 2023.09.2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