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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치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1. 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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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치

박종국

캐나다 퀘벡 주에 남북으로 뻗은 계곡이 하나 흐른다. 이 계곡은 한 가지 특이한 점을 가졌다. 서쪽 산등성이에는 소나무, 측백나무, 당광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우거졌는데 반해, 동쪽 산등성이는 온통 히말라야 삼나무 일색이다. 이 기묘한 절경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어느 부부가 이 수수께끼를 풀었다. 차가운 겨울날, 거의 파경 직전이던 부부가 과거에 애틋한 감정을 되살리고자 여행을 떠났다. 그들이 이 계곡에 도착할 무렵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다. 부부는 흩날리는 눈보라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람의 방향 때문인지 동쪽 산등성이에 서쪽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이 쌓였다.

잠시 후, 히말라야 삼나무 위에 두텁게 쌓인 눈이 나뭇가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탄력이 좋은 삼나무 가지가 아래로 휘어지더니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을 아래로 와르르 쏟아 냈다. 눈이 어느 정도 쌓이면 이내 눈 더미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을 반복하면서 히말라야 삼나무는 눈보라에도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게 버텨냈다. 그러나 다른 나무의 가지는 꼿꼿하기만 할 뿐 눈덩이의 압박에 못 이겨 툭툭 부러지고 말았다.

분명 예전의 동쪽 산등성이에도 여러 나무가 함께 우거졌을 거다. 하지만 다른 가지는 굽힐 줄 몰랐기 때문에 눈보라에 가지가 꺾이고 쓰러져 하나 둘 사라졌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과 만남으로 어우러진다. 그러한 부대낌 속에서 나는 어떠한 그림으로 그려질까. 쓸데없는 데 한 눈을 팔아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소용없는 일에 얽매여 스스로 담을 쌓고 살지는 않았는지.

사람 사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혼자만의 외고집으로 자존심을 꺾지 않는다. 아무 일도 아닌 데 얼굴을 붉히고 괜히 말투가 사납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독한 편견에 함몰되어 나 이외는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다. 그러니 별로 심각한 일도 아닌 데 쉬 무너진다. 조그만 자신의 낮추고, 굽히면 더 나은 세상이 보인다. 결코 비굴스럽게 처신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당하게 살면서도 유연하다면 그보다 좋은 게 또 없다.

히말라야 삼나무 같은 인생을 산다면 그땐 실수를 더 많이 해도 좋다. 푸근하게 긴장을 풀고, 지금까지 그랬던 일보다 더 많이 정신 나간 짓을 해도 좋으리라. 그러면 심각한 일이 훨씬 줄어든다. 위험한 일이 적어지고, 일몰을 더 많이 지켜본다. 왜냐?어떤 세파에도 눈보라에도 가지가 꺾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엇이든 빨리빨리 외쳐대는 섣부른 세상 흐름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일을 나 몰라라 하기보다 자기 줏대를 굽힐 줄 알아야한다. 편협했던 일상사를 탈탈 털어내야겠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개성에 잔을 갖는다. 그렇지만, 부족함은 가진 만큼 나를 덮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잔을 채워야 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 낀 채 세상을 살 수 없지 않은가.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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