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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빚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2.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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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빚

박 종 국

「순자(荀子)」의 영욕편(榮辱編)에 '선언난어포백(善言煖於布帛)'이란 말이 나옵니다. 좋은 말을 남에게 베풂은 비단 옷을 입기보다 더 따뜻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황금천량 (黃金千兩)이 미위귀(未爲貴)요 득인일어(得人一語)가 승천금(勝千金)’이라고 했습니다. 천 냥의 황금이 귀하다기보다 한 사람의 훌륭한 말 한마디를 듣는 게 천금보다 귀합니다. 무턱대고 내뱉는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음 아파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은 ‘사람의 말은 곧 사람의 혼이요, 정신이요, 신이다’고 했습니다. 또 ‘사람의 말 속에 무한함이 애용됨은 그 혼과 정신 속에 그것이 살았기 때문이요, 그 마음과 혈맥 속에 깃들었다’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경우에라도 말은 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칼을 품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의 말은 맹수를 품기도 합니다. 더러는 말 속에 사랑을 담았는가 하면 원한과 복수를 깊숙이 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말은 각기 그 말 속에 품는 의미가 다를 뿐이지 죽은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한결같이 그 의미만 다를 뿐이지 언제까지라도 생생히 살았습니다. 말은 입으로부터 사랑의 씨앗으로 뱉어졌을 때 한 세상 떠도는 동안에 사랑의 전도사가 됩니다. 때문에 좋은 말, 아름다운 말, 사랑스러운 말은 세상은 한결 아름답게 채워줍니다.


한 심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보통 사람의 생활에는 말을 듣는 일이 45퍼센트, 말을 하는 일이 30퍼센트, 읽는 일이 16퍼센트, 쓰는 일이 18퍼센트라고 합니다. 통계 수치가 말해 주듯이 가급적 말을 듣는 쪽에 서서, 먼저 생각하고, 그런 다음에 말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일은 서로 연계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생각이 없는 말은 없고, 말없이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일은 시시각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은 나름대로의 갖가지 말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말은 곧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거울입니다. 그렇지만 말은 일단 입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그 말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말은 평생을 두고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도 합니다. 말빚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명심보감에 군평(君平)이 말하기를, “입과 혀라는 화와 근심의 근본이요, 몸을 망하게 하는 도끼와 같으니 말을 삼가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하고자 할 때는 먼저 이 말을 해도 괜찮은지를 충분히 생각한 다음 신중히 해야 합니다. 남에게 한 치라도 상처를 안겨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란트는 시들거나 지는 법이 없다고 알려진 전설의 꽃입니다. 그렇지만 아름답지도 못하며 향기마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미는 아마란트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녔습니다.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집니다. 아마란트처럼 자기는 어떤 경우에도 장미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는데도 갖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랑의 불만은 물질적 결핍에서 온다기보다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말빚에, 자기 불만에 속지 않으면 됩니다.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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