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못난 씨앗하나
-미리 쓰는 정년퇴임사
작고 못난 씨앗하나가 좋은 마음밭에 떨어지면
곧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야무진 열매를 맺는다.
농부(교사도 마찬가지다)는 좋은 씨앗만 골라서 씨뿌리는 게 아니라, 못난 씨앗이든 좋은 씨앗이든 가지리 않는다. 곡식이라면 이랑에 뿌리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러면 어느새 싹이 트고, 잎이 나서 성큼 자라고, 자기 이름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지난 41년동안 수많은 아이를 만났다.
풀꽃이 싱그럽고, 풀나무처럼 거침없이 그렇게 함께했던 아이들이 지천명의 나잇살부터 현재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1,700여명 남짓한 제자를 두었다.
한때 '아름다운숲을찾아가는사람들의모임(아차모)'을 결성하여 무시로 만났다. 그런 연유로 지리산을 함께 산행했고, 덕분에 제자 결혼식 주례도 19번이나 섰다(2021년 코로나19 펜데믹 이후로는 결혼식주례가 사라졌다. 결혼세태가 변했다). 하지만 주례를 섰던 제자 부부가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이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실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이 적확하다. 교사로서 평생직장으로 헌신했다는 게 자랑이자 보람이다. 그야말로 나에게 교직은 천직(天職)이었다(해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교사로 살겠다). 이제 올8월 말이면 정년퇴임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교직을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여한다.
몇몇 제자가 정년퇴임식을 운운하며 전화가 왔다. 고맙다. 그러나 나는, 일체 퇴임식 자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의례적으로 주어지는 정부훈장(황조근정훈장, 2등급, 41년이상 근속)을 거부했다. 41년 6개월 아이들과 함께한 일만해도 영광스러운데, 훈장은 무슨 훈장, 난 단언코 수상을 거부한다(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훈장은 받을 수 없다).
나는, 내 반을 거쳐간 제자가 세상어디서건간에 참된 인간의 도리(道理)를 다하고 살면 더는 기쁨이 없다. 스승 박종국 선생의 텃밭이 좋은 느낌으로 가슴에 남으면, 또한 그 감동이 가슴에 흐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 옛이야기하며, 가슴마다 사랑이 흐르고, 기쁨의 열매가 탄실하게 맺힐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작은 감동 하나, 작은 느낌 하나를 가슴마다 소중하게 간직하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선생 박종국을 아는 모든 분께 미리 감사드리고, 도타운 사랑을 전한다.
2024년 5월 20일
박종국
|박종국참살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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