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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에 근무해온 지 꼭 31년6개월을 넘어섰다. 겪을 만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까지 아직도 그 해법이 오리무중인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에 저절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갈수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 정도가 아니라, 아, 정말 무섭다. 참 보기 드문 희한한 전쟁이다. 밀림의 야수들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듯싶다. 야만의 극치다. 소름이 끼친다. 사립학교는 사사로운 투자로 세운 것이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도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라니 할 말을 잃는다. 더구나 이런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본디 모습이라니 더 할 말을 잃는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학생들을 돈벌이나 부정과 비리의 볼모로 삼더라도 사유재산권 앞에서는 이의를 제기하면 안된다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한때 학생들 '머리통' 수효가 그대로 돈다발로 이어진다는 뜻에서 사립학교 운영을 놓고 '학생 장사'를 한다는 말이 나돌던 때가 있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본심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당당한 외침 앞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실상 사립학교 운영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적 소유물로서의 학교라는 뜻을 이해하기에 난감한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 사학재단이 학교 운영을 위해 내미는 전입금은 2% 미만이라고 한다. 75%는 정부 지원금이고 나머지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된다니 이런 내용으로 본다면 사립학교를 사적 소유물로 여기는 욕심(?)은 너무 무리한 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욕심을 법으로 뒷받침한 것이 지금의 사립학교법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5년 전쯤 여야 의원들이 두루 뒷돈들을 챙긴 뒤 사립학교법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건 이제 웬만한 이들은 다 아는 얘기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 '사립악법'이라는 해괴한 이름이다. 그 바람에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하여 학교를 쥐락펴락해온 이들의 엄청난 사학비리를 지금은 모르는 국민이 드물 정도가 되었다. 학생들은 아무래도 학교권력의 최하위 단위이므로,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하겠지만, 더 생생한 현장의 실체험으로 그걸 느끼고 있을 터이다. 우리나라 중고생의 50% 이상, 대학생의 75%가 사립학교에 재학중이라 한다. 학교와 학생을 놓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놓고, '사유재산권'이니 '내가 세운 학교니까 내 것'이니 하면서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이는 '어른들'을 보고,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 이상하네. 이거 '우리' 학굔데! 이러지 않을까? 이래서 사립학교에서 짤릴 뻔 했다
내가 교무회의에서 처음 발언을 한 것은 교직 10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 전에는 단 한번도 발언할 기회가 없었는데, 나만이 아니라 다른 평교사가 발언하는 걸 들은 일도 거의 없었다. 상상들이 가시는가? 지금은 물론 이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본질은 여전히 그렇고 그런 수준이다. 직접적인 파면 위협을 받은 게 두번이었다. 첫번째는 사직 의사를 밝혔다가 말을 안 들으면 파면시켜 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군대보다도 더 살벌한 절대복종의 문화에 충격을 받고 도저히 이런 학교에서는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하여 고민 끝에 사직서를 들고 교장실에 들어갔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을 때, 최고 수준의 학벌을 자랑하는 인격자로 소문이 나있던 '그 분'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정 그렇게 한다면 파면시키겠다'고 읊조렸다. 젊은 때여서 겁을 먹기보다는 '이 학교에 더 있어서는 안되겠구나'하는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개교한 지 4년쯤 된 신설 학교였고, 젊은 교사들을 맹훈련시켜서 전국에서 이름난 학교를 만들겠다고 밤낮 없이 몰아치던 그 병영학교! 두번째는 교직 십수년이 지난 때였다. 극빈자 학생들에게 분기별로 지급되는 정부지원 장학금의 3/4을 이중장부를 만들어 착복하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걸 지적했다가 이사회를 소집하는 소동이 일고 파면시키겠다는 협박이 들어왔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내가 직접 당한 것은 아니지만, 교무회의 때 해외연수 대상자 선정에 대해 질문을 했다가, 회의에서는 지시 전달사항 외에 일절 질문을 하면 안된다는 학교장(교주 교장이었다) 방침을 어겼다고 해서 한 교사가 파면된 일이 있었다. 이게 다 '법의 칼날'(그런 처분을 내린 분이 썼던 표현) 덕분이었다. 요즘도 툭 하면 듣는 소리가 법 얘기다. 그래서 사립학교 교사들은 특히 법 무서운 줄을 잘 안다. "사립학교법이 바뀌면 그 때 들어주겠다"는 소릴 이번 달에만도 벌써 서너번을 들었다. 법이 어떻고 저떻고들 한다지만 말싸움들 잠시 멈추고 학교에 직접 와서 사나흘 정도만 사립학교 교무실과 교실에 함께 있어 보시라. 이 나라 교육의 온갖 추레한 이치들이 법의 칼날 앞에 무력한 교사들과 순진한 아이들을 먹잇감 삼아 공공연히 작동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을 가슴 저리게 체험할 수 있을 터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교육이 제일 중한 일이고 그거 바로잡지 않으면 끝장난다는 얘길 노상 하면서, 그 바로잡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은 남의 일인양 하는 게 흔히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통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라는 옥중에 깊숙이 갇혀 있는 모양이다. 지금의 사립학교법은, 인사비리든 회계비리든 그것들을 음지에 기생하는 독버섯처럼 번성하게 하는, 철저히 그늘진 폐쇄 구조로 되어 있다. 이사회는 족벌로, 감사는 내부감사로, 예결산은 비공개로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교육의 3주체라는 학생·교사·학부모는 발언권이나 심의권은 고사하고 그 논의 과정의 속내를 절대로 들여다볼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운영자가 혼자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돈을 엄청나게 떼어먹었어도 보름 안에 게워내면 없었던 일이 된다. 워낙 부정 비리가 심해서 형벌을 받고 쫓겨나더라고 2년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 복귀하여 똑같은 짓을 얼마든지 되풀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법이 이 법 말고 또 있을까? 법에 어두운 나 같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이런 법을 앞세워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를 짓누르고 탄압하고 돈을 요구하여 배를 불리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사립학교 운영자들의 실태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가끔 드물게 만나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거의 일반화되어 있는 행태임을, 사립학교에 있어본 사람이면 두루 꿰뚫어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니 어떻게 이 나라 사립학교가 민주시대의 햇빛 아래 정말로 총명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교육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걸 아는 사람은 가슴에 쥐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투명 유리창을 달자
그 속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는 철저한 밀실구조의 사립학교 운영을 좀 건전하게, 교육기관답게, 부정이니 비리니 하는 것들을 견제할 수 있게 최소한의 투명 장치를 하자는 정도인 것이다. 사립학교법이 당장 개정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동안 비리로 얼룩진 상당수의 사립학교를 바로잡기엔 중과부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방형 이사제를 통해 의결정족수엔 훨씬 못 미치더라도 외부 추천인을 들여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든지, 교육주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마련한다든지 하는 민주사회의 기본 장치를 좀 두자는 내용이다. 즉, 밀실에 창문을 좀 만들어서 공기가 통하게 하고 투명 유리창이라도 달자는 그런 내용이다. 그러면 부패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놓고 집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흉악무도한 짓이라고 난리를 친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어른들이 정말 학생들 생각해서 이제 그만 양심으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한다. 부적격 교사를 퇴출시키는 법이 생긴다고 들었다. 부적격 운영자나 관리자들이 그걸 심사한다면 과연 어찌될까? 정말로 부적격 교사들을 교단에서 몰아내려면 그걸 판단하는 위치에 있게 될 사람들의 적격 여부를 먼저 가려야 진정한 뜻을 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부정과 비리를 조장하고 권장하는 조항으로 그들먹한 법은 그대로 방치해 놓고, 더구나 그걸 무소불위의 칼날로 휘둘러대는 제왕적 사학재단을 자율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대로 방치해 놓고 이런 제도를 시행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지지 않을까? 부적격자는 어느 분야에서든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걸 가려내는 사람과 제도와 기준과 그걸 집행하는 사람이 우선 적격이어야 한다. 사립학교법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고쳐야 한다. 이번에도 또 의원나리들께서 무슨 꿍꿍이에서인지 독이 잔뜩 올라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벼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 흉흉한 소문을 듣고 있자니 교단 말년이 참 헛헛해진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국민의 여론이 빗발쳐도 끄떡 않는, 부정한 돈과 부정한 권세로 똘똘 뭉친 사학재단들이 모처럼 자정대회를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정대회의 진의가 더럽고 탁한 것을 인정하고 그걸 정화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사립학교법에 섞여있을지도 모를 비민주적, 비교육적 요소들을 이참에 정화시켜서 법적 장치까지 함께 마련하면 훨씬 떳떳하고 아름다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동안 우리 교육계의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알려져 있는 사학재단들에 직간접적으로 연줄이 닿아있는 정치권과 언론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자기성찰에도 솔선수범하여 앞장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서로가 양심의 창문 하나쯤 달고 나면 너나없이 어차피 함께 살아갈 세상이 좀 밝아지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학생 없는 학교를 상상할 수 없다 전국에는 1700여개의 사립학교가 있다고 한다. 전체 학교 수의 중고교 40%, 대학교 85%에 이르는 이 사학의 운영자들이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는 때엔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결의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죽기살기식의 가공할 만한 발상에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고백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결단코 그런 게 아니기를 빈다.
그래, 좋다. 정말 학생을 위한다면 부정과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양심적인 사립학교법을 만들자. 그러려면 자식 있는 이들은 조용히 그 미래의 눈동자들을 정면으로 깊숙이 들여다본 뒤에 법을 바꾸든지 말든지, 학교 폐쇄를 법 개정 싸움의 무기로 삼든지 말든지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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