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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합격 1명이 교육의 질을 좌우합니다.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9. 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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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합격 1명이 학교의 질을 좌우합니다"
학교 교육과정 편성도 서울대에 맞춰야 하는 실정
텍스트만보기   서종훈(prmk) 기자   
일선 학교에서는 특히, 고등학교는 2학기 말이 되어가면 다음 해의 교과과정 편성 때문에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이것은 교사 수급문제와 학생들 진학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중요성이 크고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차례 회의가 벌어지고 때론 교사들간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지역할당제 입학 문제로 시골의 조그마한 고등학교에서는 억지춘향격으로 서울대에서 제시하는 최소한의 과목을 교육과정 속에 편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물론 극소수 아이들이라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문제는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이 삼위일체되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한국의 최고 대학에 들어가면 그건 학생 개인으로도 또한 학교로도 대단히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임은 현재 한국의 교육현실이고 또한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일정 과목을 반드시 학교에서 이수해야 하는 현 서울대 입시 제도에 있다.

본교에 부임하면서 관리자들로부터 들은 첫 이야기가 "이번 2학년들에는 우수한 아이들이 제법 있는데, 서 선생님이 잘 길러 서울대학 한 번 보내 봅시다"였다. 물론 아이들을 잘 공부시켜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은 교사의 지극히 당연한 임무인 것을 알고 있지만, 직접 관리자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찜찜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서울대를 보내야 한다는 욕구는 점점 거세어져 갔고, 점점 담임인 나에게도 현실적인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학기 중에도 몇몇 아이들을 뽑아 특별 수업을 시키자는 의견도 나왔고, 실제로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오직 서울대에 보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에서 시작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역할당제에 해당되는 학교라도 서울대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교과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본교에서는 이미 내년도 교육과정까지 짜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짜여진 교육과정은 서울대에 지원하기 위한 교과과정 편성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교사 수급과 학생들의 수준과 적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교육과정이지만 부득이하게 서울대 입시안에 맞추어 변경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계획된 교육과정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년의 학교 교과 운영이 계획된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자체를 바꾸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파생시킬 수 있었다. 특히 기존 과목을 없애고 타 과목을 신설함으로써 교사 수급에 문제점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학생들이 선택하지도 않는 과목을 신설해야한다는 어려움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득이하게 회의가 열리게 되고 교육과정 변경을 위한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 우리 학교의 실정입니다. 특히 우리와 같은 시골 인문계 고등학교는 날이 갈수록 학부모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에서, 학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아이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여기에 맞추지 않으면 학교는 망하고 맙니다."

한 선생님이 서울대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변경하자고 주장하자 어느 선생님도 쉽게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다. 물론 교육과정 변경이 대다수 학생들에게 맞지 않을 지라도 학교의 존폐가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상반되는 의견을 내세우기란 힘든 실정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학생 한 두명을 위해 교육과정을 새롭게 고쳐 만든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 수급 문제도 있고…."

"무슨 말씀입니까. 서울대 합격만 내보십시오. 지역민들이 학교를 보는 눈이 확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4년제 대학 합격률을 높이면 뭐합니까. 대다수 학부모들이 오직 서울대 합격만을 그 학교의 평가 잣대로 보고 있는 실정에서…."

"그렇다고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지도 않고, 또한 수준에도 맞지 않은 교과목을 선택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선택이 아닙니까. 아무리 서울대 합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대다수 아이들의 입시 지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이 오고 가는 중에 아직은 교육 경력이 미천한 나로서는 '정말로 십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교육에서 서울대학이 차지하는 힘은 여전하구나’하고 뼈저리게 느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서울대의 위력, 아니 더 강하게 느껴지기만 하는 서울대의 위압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논의 끝에 결국 서울대를 위한 교과과정을 다시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의 존폐가 걸린 만큼 어쨌든 서울대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결정을 이끌게 된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부끄러웠다. 극소수를 위해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해야 하는 대다수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나아가 서울대를 위해 우리 교육이 언제까지 이렇게 끌려가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2005-09-17 21:05
ⓒ 2005 OhmyNews
공부 안 해도 대학 가는데 뭐!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학들, 과연 우리 아이들 위한 것인가?
텍스트만보기   서종훈(prmk) 기자   
"선생님 공부 안 해도 대학가는데, 왜 자꾸 공부하라고 하세요. 이 대학에 조건이나 되는지 봐 주세요."

요즈음 교무실에는 수시 2차 원서를 쓰기 위해 많은 아이들이 찾아 온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맞은 편에 앉아 있는지라, 원서를 쓰기 위해 상담을 하러 온 아이들에 대해 곧잘 알 수 있는 편이다. 하지만 찾아오는 아이들 중에는 '정말로 저 아이가 대학가서 뭘 할 수 있을까'하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걱정을 안겨 주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선생님, 저희 같은 아이들이야 공부한다고 일류대학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하게 적성에 맞춰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괜스레 공부로 중압감 주지 마세요."
"이놈아, 그래도 공부 안 하고 대학가서 뭐할래.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되니. 요즈음 대학을 졸업하고도 실업자 되는 이가 얼마나 많더냐. 제발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대학가자."
"열심히 안 해도 오라고 하는 대학 많은데, 구태여 되지도 않는 공부 해서 뭐하게요."
"그래도, 이놈이…."

선생님과 실랑이 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로 저 아이에게 대학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이의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수시로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많기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3학년이 되면 아예 공부를 제쳐두고 자신이 들어갈 만한 대학부터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적이 상위권인 몇몇 학생들은 제외지만, 본교와 같이 시골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일찌감치 자신이 갈 만한 대학을 찾아 수시에 지원한다. 하지만 대부분 공부는 내팽개치고 대학에 간다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둔다.

최근에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대학에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데 그 근본 취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의 좋은 취지와는 반대로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우리 입시교육의 한 어두운 면을 드리우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학들이 우리 아이들을 마치 돈벌이 수단의 대상으로 여겨 오직 정원수만 채우려고 골몰하는 것같은 인상을 준다. 이에 발맞추어 우리 아이들은 노력하지 않고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데만 혹해서 무조건 들어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그 비싼 등록금을 낭비하고 마는 그런 지경에 이르고 있다.

수시가 시작되면 많은 대학 관계자들이 일선 고등학교를 방문한다. 그 방문의 목적은 다름 아닌 자기 학교에 아이들 좀 보내달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 달라고 선전하는 것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방문의 횟수가 지나치게 많고 때로는 입시 담당 선생님이 괴로울 정도로 방문이 잦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그런 방문을 아예 차단하거나 일정 시간에 한정해서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도 알리고 양질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일견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들을 무조건 유치하고 보자는 속셈들이 깔려 있는 듯 해서 과히 좋은 쪽으로만 보기 힘들다.

이런 점 때문에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지도에 상당한 혼란을 겪는다. 또 일찍 수시에 합격한 아이들 때문에 생활지도에도 많은 어려움을 떠 안게 된다.

분명 많은 대학들이 생겨서 우리 아이들이 좀더 쉽고, 또한 자신의 적성에 맞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그리고 때로는 좌절도 하면서 성장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처음부터 현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대학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그 아이를 위해서도, 또한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일선에선 정원을 반도 채우지 못해 정말로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런 대학에 입학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교육부의 입시와 대학에 관련된 정책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제대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에게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버린 대학도 문제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리 아이들의 생각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이란 잘 하고 뛰어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할 수 있도록,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밑바닥에는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 능력과 재능을 넘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진리가 바탕이 돼야 한다. 정말로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공부 안 해도 대학 가는데 뭐!"하는 자조 섞인 말을 두 번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런 환경으로 우리 교육체제는 거듭나야 할 것이다.
2005-09-11 15:1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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