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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1. 1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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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난장판 만드는 '빼빼로 데이'
과자 들고 몰려다니느라 수업도 안돼.... 이건 정말 아닙니다
텍스트만보기   이부영(eboo0) 기자   
11월 11일은 누구나 다 아는 '빼빼로 데이'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은 모르고 잊고 지내도, '빼빼로 데이'를 모르고 지나치는 아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11월이 되면서부터 대형 할인 매장이나 동네 가게, 학교 앞 문방구점에는 벌써부터 화려하게 포장한 여러 가지 빼빼로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11월 11일 1자가 네 번 겹치는 날, 1자를 닮은 기다란 과자를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보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인 내가 먼저 과자를 사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에 다함께 먹으면서 소원을 빌어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추억의 한 장면이었다. 그 때는 그랬다.

'빼빼로 데이'가 언제 어떻게 누구가 왜 시작했는지 어쨌거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 '빼빼로 데이'는 영 이상한 모양이 되어간다. 작년에 수업에 들어간 반 아이들이 '빼빼로 데이'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올해는 두 손 두 발을 들어서라도 막아야겠다 싶었다.

▲ 아이들이 주고받은 빼빼로과자
ⓒ2005 이부영

▲ 화려하게 포장된 과자들이 가방에 가득 들어있습니다.
ⓒ2005 이부영

▲ 과자가 든 가방이 책가방보다 더 큽니다.

 

 

우리반 빼빼로 모아보니 20여만원어치
이 많은 것들을 누가 다 먹을까?
텍스트만보기   송주현(songjh03) 기자   
아침에 출근해보니 교실이 온통 시끌시끌했습니다. 교문 들어오는데 아이들 손에 뭔가가 하나씩 들려 있는 걸 보며 짐작은 한 일입니다. 어제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친구가 좋으면 뭔가를 주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꼭 이 날이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꼭 빼빼로여야만 하는 걸까?"

생일날 케이크를 먹고 소풍가서 김밥을 먹는 것처럼 빼빼로 데이에는 빼빼로를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아이들은 말합니다. 겨우 초등학생인데 말입니다. 빼빼로데이라는 행사 속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상술과 시장의 법칙이 이미 그 시스템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빼빼로 데이로 인해 수혜를 보는 제과회사와 그 어떤 관계도 없는 내가 교사라는 이유로 회사를 폄하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아이들의 생각에 편승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책상의 빼빼로. 여러 개를 사서 테이프로 붙여 하트 모양을 만들기 위해 이 아이는 용돈을 오래도록 모았다고 합니다.
ⓒ2005 송주현
"자, 각자 받은 빼빼로를 모두 책상 위에 올려 놓아보세요."

가방에서, 책상 속에서, 혹은 빼빼로 전용 쇼핑백에서 아이들이 주섬주섬 빼빼로를 꺼내 올려놓습니다. 많기도 해라. 책상이 좁아 보이는군요. 공부할 땐 이렇게 책상이 넘쳐 보이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마음도 이렇게 책상 가득 넘치는 빼빼로처럼 기분 좋고 이것을 보는 어른인 나도 기분이 좋으면 차라리 다행이겠구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이걸 통해 뭔가를 공부할 수 있겠는지 알아보자."

우선 각자 가지고 있는 빼빼로의 총 합산 금액을 내보기로 하였습니다. 빼빼로는 대체로 500원. 약간 장식과 내용물이 조금 더 있는 건 1000원대. 통이 조금 더 큰 건 3000원. 5000원짜리도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이 정도라면 한참 들뜨는 중고생들은 어느 정도일까요?

▲ 빼빼로와 카드. 무엇이든 나누기를 좋아하는 착하고 예쁜 아이들에게 빼빼로데이는 거스르기 힘든 명절인가봅니다.
ⓒ2005 송주현

▲ "같은 남자나 여자에게가 아니라 서로 남자나 여자에게 준 사람?" 물었더니 별로 없습니다. 모든 친구에게 하나씩 돌리거나 짝꿍에게 주거나 하는 방식인가봅니다.
ⓒ2005 송주현
내가 다니는 학교는 지방 작은 도시에 있는 초등학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37명입니다. 많이 받은 아이는 빼빼로를 1만5000원어치 넘게 받았고 적게 받은 아이도 최소한 1000원어치는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은 빼빼로에 들떠 있고 공부할 생각은 없어 보이고. 내친 김에 한 명 한 명이 가진 빼빼로 가격을 합산해보니 20만 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은 금액에 놀라는 눈치더군요. 오늘을 위해 한 달 꼬박 용돈 없이 살았다고 푸념하는 아이도 있고 이번 달과 다음 달 용돈을 미리 받아썼으니 앞으로 군것질은 포기해야겠다고 넋두리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자, 이십 만 원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보자. 당장 선생님은 곧 다가올 겨울에 자동차 스노우 타이어를 교체할 수 있는 비용이 되는구나."

어떤 아이는 자기가 다니는 두 군데의 학원비라고, 어떤 아이는 지난 여름에 다녀 온 서울 여행비라고, 또 어떤 아이는 엄마가 일주일 동안 포장마차해서 번 돈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가정의 경제상황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합니다. 저렇게 돈에 밝은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빼빼로를 사게 된 걸까. 도대체 제과 회사들의 마케팅은 얼마나 위대하기에 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소중한 용돈을 모두 털게 만든 것일까.

그 회사의 관계자들은 오늘 하루를 아이들이 풍요롭게 보내고 나면 나머지 날들은 아이들에게 내핍한 날들이 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이미 샀고 또 만지작 만지작해서 손때가 묻었으니 바꿀 수는 없겠지. 그럼 이 걸 다 먹을 거니?"

주고받는 생각은 했지만 다 먹을 생각까지는 미처 못한 아이들. 작년처럼 아마 상당수 빼빼로들은 작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가 썩는다는 엄마의 잔소리와 단 것이 몸에 안 좋다는 교사의 충고로, 혹은 아이들 스스로 이미 끝나버린 행사에 대한 흥미저하로 아이들 책상 서랍을 전전하다가 쓰레기통으로 고스란히 갈 겁니다.

"저는 우리 아파트 노인정에 드릴래요. 할머니들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신대요."
"저는 동생에게 조금 주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 두고 천천히 먹을래요."

천사같은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빼빼로는 그저 설탕 많은 밀가루 덩어리의 삭막하고 멋없는 빼빼로만은 아닌 게로구나. 비록 제과회사의 눈에 보이는, 아이들 기르는 이의 처지에서 보면 정말 얄미운 상술에 의해 시작된 빼빼로 행사지만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천진한 마음이 곁들여지면 노인정의 할머니들과,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진짜 사랑의 빼빼로가 될 수도 있겠는 걸. 아이들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사랑스러운 마음이 뭔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2005 이부영
먼저 '빼빼로 데이' 때 초등학교 아이들이 사서 주고받으며 먹는 과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상표부터가 죄다 낯선 것들뿐이다. 모양과 크기도 가지가지여서 어떤 것은 아이들 키 만한 것도 있다. 그리고 만든 곳을 살펴보니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산도 많았고, 태국산도 있고, 아예 만든 곳을 밝혀놓지 않은 것도 있다. 온갖 화려한 색채와 모양으로 치장한 포장지도 과연 식품 포장재로 적당한 것인지 의심이 가는 것이 많았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과자에는 '빼빼로 데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국내 제과업계가 만든 '빼빼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고 이름 없는 회사에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과자의 성분을 살펴보았다. 성분을 살펴보려고 상표를 봤지만 성분을 제대로 표시한 것을 드물었다. 표시를 했어도 성의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표에 써 있는 것을 다 써 보면 소맥분(밀, 수입산 : 미국, 호주), 초콜릿 가공품(코코아 원료 2.7%. 어떤 것은 7%), 코코아 파우다, 미분당, 쇼트닝, 포도당, 마가린(대두, 어떤 것은 팜유), 백설탕, 정제가공유지, 전지분유(우유), 레시틴(대두), 버터향(우유), 계란, 탄산수소암묘늄, 합성착색료(식용황색 4호), 경화팜커넬유, 글루코스, 소이레시딘(대두), 우유향, 차아황산나트륨(산화방지제)이다.

이 과자를 먹으면 과연 몸에 좋을까? '빼빼로 데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빼빼로'를 선물로 주는 날인데, 이런 과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고. 또 아이들이 가지고 온 과자들은 상표 등록 표시도 없고, 만든 곳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것인데. 가만 보면 오히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이런 과자는 절대 먹지 말라고 말려야하는 것이 아닐까?

과자를 살 때 들어가는 돈 문제도 크다. 이 날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으면 이 날을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작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과자를 안 사본 아이는 한두 아이였고, 과자 사는 데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쓴 아이가 꽤 여럿 있었다.

과자만 주는 것에서 떠나, 과자를 얼마나 예쁘게 포장하느냐, 과자를 여러 개 모아 어떤 모양을 만들어 주느냐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많이 주면 줄수록 좋아하는 마음을 그만큼 많이 표현한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과자 사는 데 쏟아붓는 돈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 이 날 교실과 복도는 빼빼로를 주고 받는 아이들 때문에 하루종일 떠들썩합니다.
ⓒ2005 이부영

▲ 과자 포장지가 쓰레기통뿐만이 아니라 교실과 복도, 운동장, 학교 주변에도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2005 이부영
'빼빼로 데이'날은 수업이 안 된다. 과자를 들고 쉬는 시간마다 이 반 저 반 몰려다니고, 공부시간에도 줄 과자와 받은 과자를 만지작거리거나 과자를 주고받는 문제로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다. 누가 과자를 많이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해서 마음이 상해있는 아이들도 많다.

또 쉬는 시간은 물론 공부시간에도 과자를 먹는 아이도 있다. 같은 종류의 과자를 하루 종일 먹고 있으니 몸인들 정상일 수 있을까? 점심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 배앓이를 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리고 이 날 교실과 복도, 운동장 심지어 학교 주변까지 과자 봉지와 먹다 흘린 과자부스러기로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나만 안 하면 이상할 것 같아 휩쓸려 하는 이런 식의 기념일,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과자 몇 개 사다놓고 오붓하게 지내는 것까지는 뭐랄 수 없지만, 어쨌든 학교 교실에서 난리치는 것만이라도 말리고 싶다. 아니 올해는 적극 막아야겠다.

 

'빼빼로 데이'가 슬픈 까닭
[손석춘 칼럼]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편지
텍스트만보기   손석춘(ssch) 기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께 편지를 드립니다. 민망스러움은 쓸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띄우면서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당신과 친구들의 정서를 제가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경쟁만이 살 길이라 부르대는 살풍경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탈출구'를 찾으려는 젊은 벗들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쓰기로 했습니다. 띄우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11월 11일. 그 날을 '빼빼로 데이'로 기억하는 당신께 꼭 들려드릴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소중한 이성친구에게 선물할 빼빼로를 이미 포장해놓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빼빼로 데이. 솔직히 중년의 저에겐 아주 낯선 날입니다. 그 과자를 생산하는 제과사는 단언하더군요. "빼빼로는 역사다." 1983년 '탄생'했다며 그 뒤 '누드 빼빼로' 따위의 새상품들이 출시됐다고 홍보합디다. 거기서 그치지 않더군요. 빼빼로는 문화랍니다. 1994년부터 부산에 있는 여고생들이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며 시작했다지요. 메마른 몸매를 예찬하는 세태를 감안하면, 가히 놀라운 상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본의 논리는 어느새 과자라는 상품에 '사랑과 우정의 메신저'라는 고결한 가치까지 부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랑과 우정의 가치를 담은 과자?

왜 굳이 빼빼로데이만 문제삼느냐는 당신의 힐난이 들려옵니다. 옳습니다. 따지고 보면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지금도 이름을 더하려는 숱한 상혼의 꾀를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11월11일은 한 제과회사가 퍼뜨린 과자의 날일 수 없습니다.

11월11일, 그 날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선 날입니다. 당신께 생뚱없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노조간부들의 비리가 곰비임비 터진 마당이기에 저의 편지가 마뜩지 않을 터입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당신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학교를 졸업할 때 무엇으로 살아가시렵니까. 착각 없기 바랍니다. 노동자입니다.

민주노총은 힘없는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출범했습니다. 창립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 손에, 때로는 친일파들 손에, 때로는 군부독재의 손에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지요. 가장 상징적 노동자가 바로 전태일입니다.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이 출범한 그 날은 전태일의 분신 날과 이어져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이었지요.

군부독재가 물러간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87년 6월항쟁 뒤 민주노총이 창립할 때까지 8년 동안 2000여명이 구속됐습니다. 해고자는 5000여명에 이르렀지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2003년에도 204명, 2004년엔 337명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찬찬히 돌아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도 이 땅의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생명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나 당신 친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대학가에도 '백수와 백조'의 노래가 퍼진지 오래입니다.

젊은 벗, 11월 11일은 동시에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11월 11일이 한자어 '土월土일'(十一월十一일)임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밑절미인 흙(土)의 날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유지되는 기초인 농업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줍니다.

그렇습니다. 노동자들의 장구한 투쟁과 잊혀져 가는 농업을 되새겨보아야 할 날, 그 날이 11월 11일입니다. 바로 그 날 밥을 굶어가며 날씬해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퍼져간다면, 그것이 어찌 저의 슬픔에 그치겠습니까.

노동과 농업의 중요성을 되새겨보아야 할 날

물론, 당신이 저보다 더 이 땅의 모순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자본의 논리가 마땅히 우리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삶의 뿌리를 적잖은 벗들에게 잊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자신문과 텔레비전광고가 자본과 더불어 망각을 교묘히 부추기고 있지 않습니까.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몸을 붙태우며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호소했습니다. 스물 두 살, 눈빛 고운 청년의 마지막 당부를 젊은 벗 당신께 전해드리며 총총 줄입니다.

"내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빼빼로 대신 받은 가래떡 구이
텍스트만보기   김선태(ksuntae) 기자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상점마다 빼빼로 선물세트 판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보니 아이들이나 젊은이들 중에 빼빼로를 손에 들지 않은 청소년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학생들은 거의 다 손에 들고 다니는 것 같아서 일부 상혼에 멍들어버린 빼빼로데이에 대해 씁쓸한 마음이 앞섰다.

우리 학교는 이런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전교생을 상대로 빼빼로 안 사기 운동을 벌였다. 만약 학교에 가져오면 몽땅 압수하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우리 농산물이 팔리지 않아 고생하는 농민들이 많은 현실에서 외국 수입 원자재만을 사용하는 빼빼로를 많이 팔기 위한 판촉행사에 무조건 따르고 부화뇌동하는 것은 막아 보자는 취지로 이런 운동을 벌였다.

"각 반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에게 빼빼로데이가 상술에 의해 조작된 날이며 순전히 초콜릿을 많이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내일 빼빼로를 가지고 학교에 오면 모두 압수하겠다고 엄포라도 놓아서 아이들이 빼빼로를 사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며 우리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들에게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부장회의가 열리고 있는 교장실을 노크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2학년 김령희 어린이는 우리 학교의 보물이다. 내가 이 어린이를 이렇게 잘 알게 된 것은 학교 전자도서관의 감상문 게시판에 전교생 중에서 유일하게 매주 한 편 이상 꼭 감상문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독서하고 감상문을 계속 올리는 것이 고마워서 따로 불러서 격려도 하고 칭찬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욱 열심히 감상문을 올린다. 또 올리고 나서 혹 댓글이 안 올라오면 이틀만 지나도 "교장 선생님, 저 감상문 올려놨는데요"하고 독촉을 하는 참으로 고마운 아이다.

그런데 이 김령희 학생이 교장실 문을 두들기며 들어서는데 손에는 빼빼로 상자 두 개와 작은 비닐 봉지가 들려있었다. 협의를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그 아이를 보며 내가 말했다.
"어어? 령희, 오늘 빼빼로 사온 거야? 그거 안 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을텐데?"

아이는 "이거 아이들한테 받은 거고요. 어머니가 이거 교장선생님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어요"하면서 비닐봉지에 싼 것을 내민다. 나는 그것을 받으면서 "이거 뭘까?" 했더니 "가래떡이에요"하며 나간다.

▲ 예쁘게 리본까지 달아 보낸 가래떡 봉지
ⓒ2005 김선태
▲ 노릇노릇 잘 구어직 가래떡
ⓒ2005 김선태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봉지를 열어보니 가래떡을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 알루미늄 호일에 잘 싸서 보냈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어서 정성이 느껴졌다.

봉지를 열어서 한 개씩 먹으면서 협의회를 진행하였다. "정말 고맙네요. 학교의 지시 사항에 대해 이해를 잘 하시는 분인 것 같군요" 하며 그 학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에 진정어린 감사의 정을 보냈다.

아울러 우리 학교에서 추진한 빼빼로 안 사기 운동은 성공적이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각 학급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린이들이 빼빼로를 거의 안 가져 왔을 뿐 아니라 이런 학부형 한 사람이 나오므로 해서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우리 학구 안에 올바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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