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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교원평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교육부는 '교원평가에 대한 합의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2학기부터 시범학교를 운영하겠다고 함으로써 갈등을 더욱 더 증폭시켰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원평가'의 취지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공감하나 그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 입장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원평가의 주체로 학생, 교사, 교감, 교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학부모는 제외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원평가의 주체는 학생이면 족하며, 학부모는 물론 교원평가위원회에 교장, 교감, 교사는 제외되어야 한다. 그리고 평가 결과에 대한 것은 위원회와 평가 대상자에게만 통보되어 교장이나 교감이 평가 자료를 근거로 교사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며, 교사들 간에도 불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평가결과 낙제점(그 기준도 정해야 하겠지만)을 받은 교사는 퇴출까지도 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질 때 교원평가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평가하면 교원들이 눈치본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교육은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에 이뤄진다. 가장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이들이 서로에 대해서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게 되면 교사들이 학생들의 눈치를 보게 됨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교사들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학생들의 평가가 가장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며, 학생들도 소신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 교사와 눈치를 보며 교육을 하는 교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학생들이 어떤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줄지는 분명하다. 교사는 기능이나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교사냐에 따라서 그 과목이 좋아지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한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폭력교사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은 경험이 있다. 물론 단체기합이라는 명목으로 나보다 더한 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이 다반사였다. 여름철에 반바지 체육복을 입지 못할 정도의 멍을 허벅지에 늘 달고 다녔으며, 남녀공학임에도 한 겨울에 용의검사를 한다고 운동장에서 삼각팬티만 입고 성추행 수준의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교사는 바늘을 들고 다니면서 이유 없이 콕콕 찔러대기도 했다. 그들에게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도 '미친개'부터 '사이코'까지 다양했다. 그렇다고 존경하는 교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존경받는 교사들이 더 많았고, 비난받아 마땅한 교사들은 소수였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이 소수가 일으킨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도 자질이 의심스러운 교사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에게 보통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자질들, 손가락질 받지 않을 만큼의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충분히 교사를 평가할 만한 능력이 있으며 눈치보지 않고 소신 있게 교사직을 수행하는 교사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원평가'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가장 큰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원평가'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거부감도 상당히 클 것이다. 게다가 학생이 교사를 평가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평가'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그러나 평가를 통해서 잘잘못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다는 점과 사회 전반에서 교원만 평가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평가받지 않겠다고 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과정, 내용과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인해 합의도출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겠지만 일단 '교원평가'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하게 '평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좀더 그 취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름만 부드럽게 바꾼다고 그 내용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통해서 그간 배운 것을 평가하는 것처럼, 교원들도 학생들의 평가들 통해서 그동안 자신에 대해서 학생들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교직계획을 세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요즘에는 성직자들도 일정 기간이 되면 신도들에게 신임을 물어 시무여부를 결정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때론 마음 아픈 일들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갱신되는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교직도 성직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성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학생들에게 스승으로서의 자질을 평가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교육부는 교원평가 이전에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물론 분리해서 추진되어질 일은 아닐 것이다. 교원평가 역시도 공교육을 살려보려는 몸부림의 일환일 테니까. 사교육이 성행하는 근저에는 물론 '내 아이가 남들보다 특별하길' 바라는 학부모들의 이기적인 욕심이 들어 있지만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잡아야 학생, 학부모, 교사가 숨통이 트일 것이다. 얼마 전 방과후 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계획들이 보도되었다. 환영을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것은 꼭 방과후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왜 정규수업시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정규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특기교육을 왜 실시하지 못하고, 정규수업 시간에는 왜 유명강사를 불러다 특별수업을 못하는가? 방과후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규수업시간에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육은 죽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학원에서 배웠을 것을 상정하고 가르친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수행평가서를 거의 대리하다시피 작성해 주는 학원들도 있단다. 교육부에서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뭔가 대책을 내놓으면 지금의 현실은 학부모들의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결과로밖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이 참에 교육부와 관련 단체들은 속된 말로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자기의 입장에 대한 언론플레이만 하지 말고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숨통 트이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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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면 신문이건 인테넷 매체건 간에 신문 보는 게 두렵다. 날만 새면 '교원평가'로 시끌시끌하다. 세간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보는 눈들이 곱지 않다. 심지어 철밥통 운운하는 지경까지 왔으니 더 말해서 뭣하랴. 나는 그 비극의 시작을 홀대받는 교육부 인사 정책에서 찾고 싶다. 교단에 서 본 적이 없는 정치가들이 교육부 수장이 되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경제 논리로 풀어가는 모양새를 지닌 현재와 같은 체제에서는 교육 문제는 늘 '봉'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생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무조건' 교원평가를 반대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다. 교원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할 준비와 절차, 과정상의 문제, 즉 선결 문제를 해결하고 교원평가를 하자는 교직단체의 목소리는 이미 함몰되어 버리고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두들기는 형국이다.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호도한 다음, 제 식구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온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는 모습 앞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채, 마치 주홍글씨를 새긴 선생님 대접을 받게 하는 이 나라의 행태 앞에서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교원평가를 하지 말자가 아니라, 타당한 절차를 생략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목소리를 들어줄 귀가 없다. 하다못해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력평가에도 학기 초부터 평가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평가 계획과 평가 방법을 명시하여 갑작스럽게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 교사들을 평가하는 정책을 충분히 검토하고 그 진정성을 알리고 동의를 받음도 없이 법안 처리하듯이 밀어붙이기로 나가는 현재와 같은 오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에도 선생들은 매년 타의에 의해 평가를 받아 왔고 그 평가 자체에 익숙하다. 다만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관리자의 눈이 평가 기준에 부합한 안경을 끼었기를 바라면서 소신껏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생님들. 모르는 사람들은 당당하면 왜 평가받기를 싫어하냐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한다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이 인기평가가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가치 판단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청소년이 그들 앞에 서 있는 담임을 평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아찔함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훈계하고 진솔할 수 있는 스승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학부모들이 하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담임에 대한 한두 가지 정보로, 한두 번의 수업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잣대의 자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평가를 한다면 동료에 의한 다면평가가 더 낫다고 본다. 다면평가 역시 일반 회사에서 많은 문제점을 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대방의 평가를 낮게 해야 상대적으로 내가 올라가는 다면평가 때문에 직원 간에 반목이 생기고 불신이 깊어진다고 한다. 어떤 제도라도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교사들은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날마다 바르게살기를 가르치는 직업의 특성상 세상의 어느 집단보다 흉악하거나 몰지각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를 지닌 교사나 지탄받는 교사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물건도 대량생산 체제가 되면 확률적으로 불량품이 나오듯 교사 집단에도 원하지 않거나 본의 아니게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부적격 교사 퇴출방안'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자정 노력에 합의한 만큼 부적격 교원 퇴출 방안도 엄밀히 말하면 평가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에 평가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일을 못하는 교사가 많은 것처럼 비춰지게 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교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진 못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며 애쓰는 직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사들에겐 자존감이 중요하다. 열심히 가르치고 제자를 사랑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지금 앞뒤에서 날아오는 돌을 막을 겨를도 없이 뭇매를 맞고 있다. 교단에 설 자격을 인정해 준 국가로부터 받는 서러움이 무엇보다 크다. 온통 신문마다 선생님들 질타하는 목소리가 난무한다. 우리 문화는 칭찬에 인색한 문화임에 비추어 기회는 이때라며 후려치고 때리는 목소리들이 너무 커서 고막이 터질 지경이다. 어버이를 성토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참담한 심정처럼 자기 선생님을 평가하는 학생 앞에 서는 허물어지는 교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세울 수 있을까? 세상은 지금 자기를 위해 염려하고 아껴주는 스승을 저울질하라고 가르치는 형국이 되었다. 교원평가의 목적이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들의 자녀들을 책임지는 우수한 선생님들을 많이 확보하고자 하는 선의의 목적 앞에 아무도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선생님은 없다고 단언한다. 학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많이 존재하는 특별한 곳이다. 평가의 잣대를 무엇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교원평가에 대한 확실한 준거를 대야 한다.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들을 뒤흔들어 놓은 저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위한 물밑 작업은 아닌지, 특정 정치지도자의 정치용 몸짓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먼저 교직사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토론회나 선진 여러 나라의 것을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우리만의 철학과 논리를 지닌 탄탄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한다. 나무마다 수종이 다르듯 똑같은 교대와 사대를 나왔어도 그의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 학문의 깊이, 자기 성찰을 위한 노력, 꾸준한 연수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교직의 특성상 하루 이틀에 나타나지 않는 교육 효과도 그렇고 가르치는 방식이나 학부모를 대하는 방법도 천양지차이다. 눈에 보이는 학력 점수에 신경을 쓰는 선생님이 있는가하면 보이지 않는 인성면에 더 치중하는 선생님, 멀리 내다보고 인간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 등 그 모습도 매우 다양하다. 때로는 교실 수업보다는 관리자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느라 아이들보다 일을 우선시하여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인정받는 분들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평생을 교실에서 분필을 만지며 제자들과 동고동락한 노스승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제자들이 그 스승의 숨겨진 진정성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보낸 후라야 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의 매'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아차하면 선생님을 고발하는 교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위축될 교단의 모습. 한 그루 나무처럼 심어진 그 자리에서 오늘도 말없이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지쳐 있는 선생님들을 한 순간에 철밥통으로, 평가조차 거부하는 고지식한 지식인 집단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게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이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선생님의 자존심을 접고 직업인으로 살아야 함을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 내막은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모습만 생각하며 모든 선생님들을 향해 삿대질하게 만든 정부와 언론이 원망스럽다. 이 땅의 선생님들은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평가를 받지 않은 교사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말없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리라는 순박한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하였을 선생님들의 처진 어깨를 다독일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는가? '교사를 평가하려면 교사보다 더 나은, 승복할 수 있는 단체나, 사람, 정책으로 교사들의 동의를 구한 다음 칼을 들이대라!'고 의사 면허증이 없는 의사에게 대 수술을 맡길 수 없듯이 의대 공부를 하지 않은, 교육자의 길을 걷지 않은 정치가에게 재단 당하고 싶지 않음을! 우리 선생님들이 중병에 걸렸다면 수술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검증받은 의사에게 수술 받게 해달라고! 선생님들은 검증받은 시스템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제자들을 위한다는 명분 앞에 아무도 반기를 들 사람이 없음을! 정부는 이 땅의 선생님들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다독일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준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힘든 과정을 마치고 몇 년씩 임용 시험을 준비하여 교단에 선 우수한 선생님들에게 자괴감을 안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여론몰이의 방법으로 교단에 떠넘기지 말 것이며, 국가에서 인정해 준 교원자격증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국가발전의 한 축을 이루어 온 이 땅의 선생님들의 숨은 노력마저 뭉개지 않았으면 한다. 어버이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워서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로 떨어지는 것처럼, 선생님을 경시하는 풍조는 제자에게도 국가에게도 이익이 없음을 깊이 숙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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