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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1시30분.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에는 한 무리의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미국을 출발, 일본을 거쳐 이날 오후 한국으로 들어오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 전 <중앙일보> 회장이자 사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지상파 방송사를 포함한 TV카메라가 줄지어 서있고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들이 몰려 있으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부 여학생들은 행여 연예인이라도 오는지 싶어 취재진들에게 '누가 와요?'라고 묻다가 '홍석현'이라는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홍 전 대사는 옛 안기부 'X파일'에서 1997년 대선 직전 삼성그룹의 불법 대선자금을 여야 정치인 등에게 제공한 핵심 '전달책'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당시 추석을 앞두고 '떡값' 명목으로 전·현직 검찰 간부들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도 나와 있다. 이로 인해 홍 전 대사는 지난 2월 22일 취임한 지 7개월째 되던 지난 9월 23일 주미대사직을 사임했다. 또 지난 9월 30일과 10월 21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 도청수사팀으로 소환을 통보받았지만 귀국을 미뤄왔다.
"삼성이 여길 왜 옵니까?" 홍 전 대사의 도착을 10여분 앞두고 공항 입국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수 명의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홍 전 대사 마중나온 분들이죠?'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일보인가요, 삼성인가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그는 "삼성이 여길 왜 옵니까?"라고 답했다. 기자는 '중앙일보에서 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소속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오후 2시 42분. 수 명의 사람들을 대동한 홍 전 대사가 입국장에 나타났다. 홍 전 대사에게 한 마디라도 들으려고 따라붙는 기자들로 인해 입국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홍 전 대사를 기다리고 있던 <중앙일보>측 사람들과 홍 전 대사가 대동하고 나타난 사람들은 홍 전 대사를 '호위'하기에 바빴다.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홍 전 대사를 호위하던 한 사람은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라고 외치며 따라붙는 기자들을 밀치기도 했다. 이들의 적극적 방어로 홍 전 대사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특유의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공항 계류장에서 일부 기자들에게 짧은 귀국 소감을 밝힌 것 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홍 전 대사는 젊고 건장한 몇몇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 출입문 바로 앞에 주차된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에 올라탔다. 이 모든 과정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약간의 실랑이를 겪었지만, 홍 전 대사는 신속하고 안전하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기자는 당시만 해도 홍 전 대사를 호위하던 이들을 <중앙일보>측 인사나 파견된 경호원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홍 전 대사의 귀국 장면이 보도되고 난 뒤 "어, 홍석현씨 왼쪽에 있는 사람은 ○○○ 기자가 아니냐", "국회 출입하던 △△△기잔데"라는 반응이 기자들 사이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도 속해 있었다.
"회사와 관련된 분이 아니니 대답할 수 없다" <중앙일보>는 'X파일' 사건과 관련, 홍 전 대사의 거취를 물으면 "지금은 회사와 관련된 분이 아니니 대답할 수 없다"고 언급을 회피했다. 그랬던 <중앙일보>의 사장과 기자들이 홍 전 대사를 마중나온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들은 홍 전 대사의 호위를 도맡으며 타사 기자들의 취재를 막기도 했으니….
<중앙일보> 기자들은 이른바 'X파일'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인 지난 8월 5일 지면을 통해 '중앙일보 기자들은 다짐합니다'라는 제목의 결의문을 실었다. 기자들은 이 글에서 "옛 안기부 도청 녹음테이프 내용 중 일부가 중앙일보 대주주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관련된 사안이란 걸 알고 난 뒤 참담함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며 “과거의 부적절한 관행이 혹 남아 있다면 이를 과감히 끊어버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이 특정 정파나 사주·기업 등의 이해관계에 휘말릴 경우 엄청나게 큰 후유증을 겪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면서 "중앙일보는 신뢰받는 정론지로서, 삼성은 일류 기업으로서 각기 제 갈 길을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포공항에서 목격된 <중앙일보> 일부 기자들과 간부들의 모습은 6년 전 대검 청사앞에서 외치던 '사장, 힘내세요'가 사주를 위한 거친 몸싸움으로 형식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독자와 국민을 두려워하는 겸허한 자세로 더 힘차게 뛰겠다"던 <중앙일보> 기자들의 굳은 결의가 새삼 아쉬운 날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지난 8월 5일 <중앙일보>에 실린 기자들의 결의문 전문이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다짐합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옛 안기부 도청 녹음테이프 내용 중 일부가 중앙일보 대주주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관련된 사안이란 걸 알고 난 뒤 저희는 참담했습니다. 밤낮없이 현장을 누비며 쌓아온 독자와 국민 여러분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느낌입니다. 저희는 이번 사태로 중앙일보에 대한 독자와 국민 여러분의 실망과 질책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주의 잘못일 뿐이라고 떠넘기거나 책임을 피하려 하지도 않겠습니다. 일부 핵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거나 그때와 지금의 중앙일보는 달라졌다는 말들도 모두 변명으로 비칠 수밖에 없음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판과 감시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언론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 도덕성과 규율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삼성과 정치권의 부적절한 관계에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개입한 것은 언론사 책임자로서 있을 수 없는 처사였습니다. 중앙일보 독자와 국민을 실망시킨 이런 과거의 잘못에 대해 당사자인 홍석현 대사는 물론 우리 기자들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99년 삼성과 완전 분리됐습니다. 물론 이번 사태가 그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여전히 중앙일보가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니냐는 독자와 국민 여러분의 우려가 있음을 저희는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다시 한번 주위를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부적절한 관행이 혹 남아 있다면 이를 과감히 끊어버리겠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중앙일보는 신뢰받는 정론지로서, 삼성은 일류 기업으로서 각기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중앙일보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스스로를 얽어 넣었던 불행한 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성과 깨달음을 통해 새 출발을 다짐했고, 2002년 대선 보도 등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저희는 언론이 특정 정파나 사주.기업 등의 이해관계에 휘말릴 경우 엄청나게 큰 후유증을 겪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저희 기자들은 공정보도위원회의 내부감시 활동을 강화하는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위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저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그리고 독자와 국민 여러분께 더 다가가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겠습니다. 신뢰 회복에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믿습니다. 오늘의 고통과 시련이 중앙일보가 보다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이제 독자와 국민을 두려워하는 겸허한 자세로 더 힘차게 뛰겠습니다. 많은 격려와 함께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십시오. 2005년 8월 5일 중앙일보 기자 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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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언론사주가 불법정치자금 배달부로 나선 'X파일' 사건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건과 관련, 오동명 중앙일보 전 기자의 기고를 싣는다. 오 전 기자는 지난 99년 중앙일보가 당시 홍석현 사장의 탈세혐의 구속을 언론탄압이라고 보도하자 이에 항의하고 떠난 바 있다. 그는 이후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시민상 등을 수상했고, <당신 기자 맞아?> 등을 책을 펴냈다. <편집자 주> |
‘J?’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춰 부르려니 요즘 세상을 뒤엎고 있는 도청사건이 나와도 무관치는 않아 쓴웃음이 절로 나오는군요. 기억납니다. 1999년 10월 말쯤 내가 중앙일보를 그만 두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당신은 전화를 걸어왔었지요. 공중전화로 말입니다. 당시 중앙일보가 기자들에게 나눠준 삼성 핸드폰을 쓰지 못하고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회사에서 도청할까봐 공중전화로 잠깐 목소리 듣고 끊으려고... 잘 있지? 우리가 미안해 해. 오형과 같은 마음인 기자들이 많지만... 어떻든 미안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누군지 알고 있었고요. 나 역시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마음 아니까 전화하지마. 나랑 통화하고 만나는 걸 중앙일보에서 알면 안 좋을 테니까. 나처럼 절대 회사 그만 둬서는 안돼.” 99년 <중앙> 기자 "회사에서 도청할까봐..." 1999년 비슷한 때 중앙일보는 뜬금없이 정부가 도청한다는 기사를 연일 1면에 보도했던 걸 기억합니다. 도청사건이 터진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쯤이었구나 싶으니 쓴웃음이 나옵니다. 도청테이프 및 도청기록인 소위 ‘X파일’에 대해 삼성과 중앙일보가 제보 또는 협박을 받고 있을 즈음과 같은 시기임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랬죠. “정부기관의 도청을 고발하는 신문의 기자가 그 신문사로부터 도청을 염려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을 훌랑 뒤집고 있는 이번 도청사건을 들을 때마다 도청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던 그때 우리 통화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실제 도청은 아니더라도 '신문사 내부정보 문건의 외부유출' 당사자를 찾아내려는 행적 뒷조사로 당시 편집국장과 한 기자의 불편한(법적 소송까지 갈 뻔했던) 사건을 우려와 불안으로 입에 오르내려야 했으니까요. 나는 지금 중앙일보에 몸담고 있는 J, J와 같은 기자나 직원들을 걱정합니다. 6~7년 지난 일이지만 중앙일보에서 나눈 우리의 대화, 염려를 새록새록 상기합니다. 마감을 끝내고 모여 군것질하던 작은 매점이 아직 중앙일보 5층에 있는지요? 타사 취재경쟁에서 깨진 후배를 아이스크림으로 위로하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올라온 편집국 각 부서 선후배간에 몇 천원의 '빵 호의'가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때론 신문사 앞날도 걱정하고, 희망도 나눴던 솔직하고도 사심 없는 토론장이기도 했습니다. 1992년에도 1997년에도 거기서 우리 이랬지요. “대선을 치르고 나면 중앙일보 부수가 줄줄이 떨어지는 소릴 매번 들어야 하니...” 중앙일보의 편향된 논조를 심히 걱정했습니다. 삼성과의 끊을 수 없는 관계, 홍석현 당시 사장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욕심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사장님 힘내세요" 탈법사주에 아부하는 기자들
홍석현씨 탈세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드디어 올 게 오고 있다 했습니다. 홍씨 탈세 건이 처음 드러난 때는 1999년 봄이었을 겁니다. 1997년 대선 당시 지면을 통해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던 중앙일보에 대한 국민정부의 보복성격이 짙다는 걸 얘기하면서도 우린 한편으론 홍 사장의 정치적 욕구로부터 중앙일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도 여겼습니다. 우리는 5층 매점에 모여 이랬지요. “편집권 독립을 확보해야 한다. 사주의 정치지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언론을 권력으로 어찌 해보겠다는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해서도 강력히 항의하자.” 당시 부사장이 편집국에 내려와 입장을 얘기하는 토론의 장도 마련이 됐구요. 분위기 참 좋았습니다. 그 후 정권과 타협이 잘 됐다느니 하는 소리가 편집국에 들리면서 홍씨 탈세사건은 흐지부지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내심 걱정했지요. 또 뒷거래로 불법이 감춰지는가 보다 하고요. 그런데 그해 9월 다시 홍씨가 검찰에 출두하게 되었고 국민정부와 중앙일보의 기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중앙일보 기자들은 출두하는 사주 앞에서, 국민들 앞에서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치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창피했습니다. 의기는 사라지고 탈법사주에게 아부나 하는 기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검찰청사 앞에는 20여명의 기자들만 모였습니다. 출두시간을 알리며 특별한 일이 없는 기자들은 검찰청에 모이자고 방송까지 했음에도. 진짜 우리 모습은 아니었다 싶어 다행으로 여겼지요. 그러나 사주 편을 들고 정부에게 항의하는 대자보가 편집국과 복도 벽을 채워갔습니다. 나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이게 아니다'며 화를 내고 중앙일보를 나왔구요. 홍 사장 아들 내방.. 편집국장 "따라다니며 사진 찍어라" J. 시간이 많이 흐른 얘기지만 달라진 게 없습니다. 홍석현씨의 정치적 욕심과 이를 우려하면서 그의 정치적 행보에 부하뇌동하고 있는 기자, 간부들은 여전합니다. 이번 도청사건으로 홍씨의 끝이 보이지 않던 꿈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8~9년 전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합니까?”도청사건이 보도되자, 워싱턴 주재 특파원 앞에서 보인 홍씨의 첫 반응입니다. 그에 대한 측은지심은 동정으로 바뀌어갑니다.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중앙일보의 사과문을 읽고, 삼성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접하고 그의 뻔뻔함도 끝이로구나 싶으니 측은지심은 동정으로 바뀐 거지요. 그러나 난 오히려 중앙일보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침묵할 수밖에 없던 중앙일보의 진정한 모습인 J들이 하나하나 가슴속에 새겨집니다. 여러분이 침묵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지요. 1999년에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우리가 노조를 통해 중앙일보와 삼성 경영진에 요구했던 것처럼 경영-편집의 완전한 분리를 명문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1994년 삼성코닝에 있던 홍석현씨가 하루 아침에 중앙일보 사장으로 부임하며 부자세습을 한 며칠 뒤 J와 난 이런 얘기를 나눴지요. “역시 똑똑해서 언론권력의 맛을 일찌감치 체득하고 있군.” 우리는 삼성코닝에 있을 땐 연단 뒷좌석에 앉았는데 신문사 사장이 되고 나니 연단 앞자리에 모셔지더라고 했던 홍씨 말을 걱정스럽게 되새겼잖습니까. 홍씨 큰 아들이 대학입시에 떨어진 직후, 친구 네 명(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시기)과 함께 편집국을 '시찰'하고 판매지국을 둘러보며 부자세습을 과시하던 모습을 보며 3대를 이어가려는 신문의 개인소유화에 우려하지 않았던가요. 홍씨 아들의 편집국 내방 당시 사진부 기자에게 아들을 따라 다니며 사진 찍으라고 지시한 편집국장 이름이 이번 도청테이프에 실려 있더군요. 그 사이 처세해 국회의원이 되어서요. 부자세습을 막아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리고 중앙일보와 삼성의 가교자인 '삼성맨'을 중앙일보에서 축출하는 것입니다. 그의 본 고향인 삼성으로 보내는 겁니다. "침묵, 동조로 홍씨 두둔하다간 함께 죽는다" J. 정당하게 살아나십시오. 침묵이나 동조로 홍씨를 두둔하다간 함께 죽습니다. 제2의 ‘회장 힘내세요’로 독자 마음을 저버리면 국민은 돌아섭니다. 구독거절! J와 같은 중앙일보 기자들이 거듭나려고 노력할 때 국민은 의외의 성원을 보내주리라 믿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못한 일을 중앙일보 기자들이 했구나 하는 신뢰교감은 조선일보 발행부수마저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방송 등 언론은 과거를 묻고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은 이를 들추기는 방송이나 검찰에게 맡겨두고 중앙일보 미래에 눈을 뜨십시오. 중앙일보 미래는 한 개인의 소유물 또는 출세용 도구(전유물)로 신문을 전락하게 한 과거로부터 탈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 과거는 홍석현씨와 삼성입니다. 당당하게 현실로 돌아오십시오. 중앙일보를 나왔을 때 주위에서 이러더군요. ‘너, 미쳤냐? 그 좋은 직장에서 스스로 나오게!’ 직장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난 기자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중앙일보 부임 직후 홍석현씨가 편집국에 자주 내려와 '1등 신문'을 만들고야 말겠다던 의지 어린 눈을 아직도 순수하게 보고 있으니 아둔한 거지요. 그는 편집국 바로 위인 6층에 사장실을 두고 열성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6개월만에 부친과 사돈어른인 고 이병철씨가 '별천지층'으로 쓰던 22층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달라졌던 거 J도 잘 알지요? 방문객은 21층까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한층은 걸어 올라가야 했던, 그만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려는 조악한 선민의식. 결국 이것이 그를 망쳐놓았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또 그의 주변이 그를 망치게 했습니다. 부친과 사돈으로 엮어지는 백그라운드, 거대하고 막강한 권력인 신문사 소유의 파워에 빌붙으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되며 이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도 홍석현씨를 두둔해주고 있습니다. 경질하지 않고 자진사퇴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도청 사실에 무게를 더 두고 있지 않습니까? 주미대사 업무를 잘 하고 있다? 북미대화나 6자회담 등 산적한 과제를 놔두고 도청 테이프 방송금지가처분신청 등 개인 일에도 신경 써야 하는 그가 외교관 역에 전념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주미대사를 얼마나 했다고 벌써 다른 자리(유엔 사무총장)를 염탐하고 있으니 본업인 대사 역할에 절대 충실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왜 홍씨를 두둔하고 나오는 걸까요. ‘나는 너를 짜르지 않았다. 짜르고 싶지 않은데 할 수 없이....’ 자진사퇴와 경질은 차원이 다릅니다. 일시적 권력(정권)의 영원할 듯한 권력(언론과 재벌)에 대한 아부가 아닐까요. 더구나 이번 도청사건은 1997년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거지요. 2002년엔 없었을까요. 드러난 2002년 대선 당시 삼성의 불법정치자금이 천억에 가깝지 않은가요? 대통령을 포함한 대선후보 등 당사자들은 이 사건을 과거로만 보지 않을 겁니다. 도청사건, 불법정치자금은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진행될 것임을 소홀히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J. 당신과 같은 진정 중앙일보를 사랑하는 기자들이 불순한 유착의 끈을 떨쳐내야 합니다. 몇 년 뒤 또 휘둘릴 겁니까?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삼성에서 불법으로 받은 정치자금 액수를 토해냈습니다. 한나라당보다 10분지 1밖에 안 먹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삼성 감싸기에 들어갔고 홍씨를 주미대사로 임명했던 것 아닙니까? 제발 중앙일보가 다시는 정권이나 개인의 욕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 이번 도청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권력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앙일보가 희망의 미래로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중앙일보 지면을 보면 자기 잘못은 없고 남에 탓, 남들을 끌어들여 희석시켜보자는 의도로 일관하더군요. ‘우리만 먹었냐, 너도 먹지 않았냐’라고 나올 부류, 아시죠? ‘난 너희의 10분지 일만 먹었으니 난 죄가 없다’라고 나올 부류 역시 아시죠? 현재 중앙일보 편집으론 절대 소생하지 못합니다. 중앙일보를 위태롭게 하는 건 이제 홍석현씨가 아닙니다. 문제 본질을 대충 넘겨버리려는 움직임과 조만간 벌어질 제2의 도청사건이나 불법정치자금에 촉각을 세우면 지금 중앙일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겁니다. 언론의 정도를 가는 길이기도 하고요. 사주는 부자세습-기자는 눈치세습... 홍석현씨 신문사 복귀 안돼 이번 도청사건으로 홍씨 개인의 정치적 욕심은 끝났지만 그 욕심은 대를 이어갈 게 분명합니다. 그의 추락은 홍씨 큰 아들의 중앙일보 장악시기를 재촉하게 될 겁니다. 주미대사 발령 시점에 맞춰 중앙일보(지난 5월부터 전략기획실 근무)에 분신으로 박아넣어둔 부자세습에 대응해야 합니다. 기자들이 20대 젊은이에게까지 눈치세습을 해야만 할까요? 끝나지 않은 권언유착과 부자세습. 이를 통한 언론장악 음모부터 끊어야 합니다. 그럼 홍씨를 금의환향해서는 안 되겠지요. 1999년 탈세범으로 구속된 후 풀려난 그를 중앙일보가 무엇으로 다시 맞이했지요? 사장님을 회장님으로 승격시켜준 게 누구냐는 겁니다. 중앙일보에 홍씨의 발을 붙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익금만 그의 통장에 잘 넣어주는 것으로 그와 중앙일보의 인연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래 기억에 남게 하려면 빚을 갚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자로부터 오래 기억되려면 정당한 방법으로 독자와 만나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빚을 갚지 않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인지, 과거 빚을 떨쳐내고 독자의 사랑을 오래 받을 것인지는 J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민단체나 다른 힘에 의해 끌려가지 말고 독자에게 진 빚을 스스로 갚아가길 바랍니다. 나는 압니다. J가 이런 자발적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그런 연후 J가 아닌 당신의 진짜 이름을 떳떳하게 부를 수 있게 되길 진정 소망합니다. 도청하지 않는 신문사에서, 도청 받지 않는 사회에서. 2005년 7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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