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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던 장철우(59)씨의 얼굴에 이제야 여유가 묻어난다. 경력 27년의 베테랑 버스 운전기사라지만 운전대 앞에선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나 보다. 운전에 방해된다 생각해 라디오며 음악이니 하는 것도 일절 듣지 않는 그다.
새벽길 나서는 첫차 버스기사에겐 새벽이 주는 '희망'과 첫차가 주는 '시작'의 의미보단 잠도 제대로 못자고 나서는 '고단함'이 더 크다. "무엇보다 잠을 자지 못하니까요. 많이 자야 서너 시간이니 아무래도 힘들죠."
"전 없어도 될 거 같아요. 요즘엔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 진짜 심했죠. 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욕부터 했어요.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해 차가 밀려서 늦게 왔지만 승객들이 어디 이해를 하나요? 그냥 듣고 있어야죠. 같이 싸우면 되나요?" 자식뻘 되는 승객들의 욕지거리에도 그는 말 한마디 못했다. 물론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는 그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대기하고 있던 첫차에 올라타는 승객이 한마디 한다. 첫차 이용객의 대부분은 노인분들이나 빌딩 청소 또는 길거리 상인들이라고 한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두 명의 승객을 태운 월요일 첫차가 그렇게 출발한다. "요즘은 손님이 정말 없어요. 물론 노선이 좋은 데는 다르지만요. 마을버스가 구석구석 다 다니는 데다가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니까 이제는 정말 손님을 찾으러 다니는 거라니까요." 지난 27년의 세월 동안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원이 사라졌고, 몇 십 원이었던 서울 시내버스 요금은 700원으로 올랐다. 그와 함께 서울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그는 그저 "높은 빌딩이 무척 많아진 것이 가장 많이 변한 거 같다"고 말한다.
다음 차 시간까지는 고작 이삼십 여분 정도 여유가 있을 뿐이다. 식사하고 커피 한 잔 마시기엔 빠듯한 시간이다. 그나마 첫차인 덕분에 정체가 없어서 그렇지 평상시엔 화장실 가기도 바쁘단다.
알고 보니 2700만원이 들어있었던 거예요. 당시 돈 2700만원이면 정말 큰 돈이었죠. 부부가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하려고 가던 길이었데요. 그런 돈을 찾아줬으니 뿌듯했죠.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고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마지막으로 그가 조심스럽게 꼭 간직해뒀던 꿈 하나를 고백한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부모가 버린 아이를 고아원에 데려다 준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부터 언젠가는 고아원을 설립해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꿈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 ||||||||||||||||||||||||||||||||||||||||||
2004/01/09 오전 10:29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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