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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집 큰 아이 인효는 그토록 좋아하던 컴퓨터 타령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겨울 방학 내내 '컴퓨터 노래'를 불렀던 녀석이 말입니다. “텔레비전 그만 보고 책 좀 읽어라.” “책 읽고 컴퓨터 해도 되지?” “개학도 얼마 안 남았는데, 숙제는 다 한겨?” “숙제 해놓고 컴퓨터 하면 안돼?” “너 오늘 개밥하고 닭밥도 안 줬지?” “밥 주고 나서 컴퓨터 해도 되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생인 녀석은 뭘 하든 컴퓨터를 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래도 이건 그런 대로 봐 줄만 했습니다. 낯선 손님들이 찾아오면 때는 이때다 싶어 컴퓨터를 하겠다고 졸라댔습니다. 치사한 녀석이었습니다. 낯선 손님들 앞에서 자식놈하고 컴퓨터를 하니 못하니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녀석은 난감해 하는 아빠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컴퓨터로 인해 버릇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컴퓨터를 하고 나면 녀석의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게슴츠레해 집니다. 컴퓨터를 오래하면 정서가 불안정해 집니다. 동생하고 다투는 횟수가 많아지고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밥벌이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빠 주변을 불안스럽게 얼쩡거리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대고 있는데 녀석이 주변을 뱅뱅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뭐해?” “보면 모르냐?” “심심해 죽것네.” “밖에 나가 놀아. 임마, 심심하면 인상이 하고 축구를 하든지, 산에 올라가 본부 짓고 놀든지.” “그래두 심심해.” “너 또 컴퓨터 시켜달라고 그러지, 안 돼!” “……” 녀석이 말없이 등뒤에서 컴퓨터 화면을 기웃거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고 들어왔습니다. “어? 이놈 보게, 너 또 컴퓨터 병 걸렸지?” “아빠는 나보다 더 많이 컴퓨터하고 있잖어?” "아빠는 임마,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겨, 아빠는 제발 이 컴퓨터에서 탈출했으면 좋겠다." “에이,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이 맑은 겨, 아빠가 맨 날 하니께 나도 자꾸만 하고 싶다구.” “그래? 너 말 잘~했다.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이 맑은 거지… 니가 자꾸만 하고 싶으니까 아빠도 이러구 있는거지….” “아, 아녀, 아녀, 잘못 말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거지….” “너 지금도 봐라, 아빠 옆댕이에 바싹 붙어 가지구, 너 이러니까 컴퓨터 병 걸렸다구하는 거여, 전 보다 더 하잖어.” “아빠는 담배를 못 끊고 있잖아, 전에 끊어놓고 다시 피우니까, 담배 중독이잖아.” “중독? 하 참, 이 놈 자식이, 그래 좋다, 아빠 오늘부터 담배 끊을 테니께 너도 컴퓨터 끊어 알았지?” 말을 뱉어 놓고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과연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미지수였습니다. 나는 한동안 담배를 끊었습니다. 헌데 지난해 가을, 방송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자 녀석은 종종 시비를 걸어오곤 했습니다. “아빠 정말로 담배 끊을 수 있어?” “그럼 자식아! 우리 시합하자, 너 컴퓨터 끊고 아빠 담배 끊고.” 내친김에 담배를 확 끊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빠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녀석은 방고래가 꺼지도록 한숨을 푹푹 내쉬었습니다. 물먹은 병아리 새끼처럼 천장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떨구곤 했습니다. “뭘 고민해 임마, 아빠가 손해야, 25년 넘게 피워온 담배를 끊는 것이 더 힘들겠냐, 아니면 너 컴퓨터 한 지 한 2년 됐지? 2년 해 온 컴퓨터를 끊는 게 더 쉽겠냐?” “…….” 말이 많아 수다쟁이 아줌마란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한숨만 푹푹 내쉬었습니다. “너 말없는 거 보니께…. 인정하는 거지?” “아, 아냐, 잠깐, 잠깐만 더 생각 좀 해보고….” “너도 분명 니 입으로 그랬지, 컴퓨터하고 나면 정신 없다고, 그런 정신 없는 컴퓨터 끊어서 똘망똘망 해지고…. 아빠는 담배 끊어 건강 좋아지고, 서로 좋잖아?" “쪼끔만 하면 안 돼, 아빠도 담배 쪼금만 피고….” “쪼끔이 어딨어, 너 맨날 그랬지 아빠 담배 끊으라고, 아빠 담배 피우면 일찍 돌아가신다고. 그래도 좋아?” “아, 아니 알았어, 알았어, 컴퓨터 끊을게, 아빠도 약속 지켜야 돼.” 녀석이 참 대견했습니다. 치사하게 건강을 내세운 아빠를 순순히 받아 들였습니다. 녀석은 오늘 이 순간까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물론 녀석은 예전처럼 일주일에 두 번씩 컴퓨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컴퓨터 때문에 불안하게 칭얼거리지도 않습니다. 컴퓨터에서 벗어난 만큼 산과 들에서 뛰어 노는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예전처럼 게슴츠레한 눈빛이 아닙니다.
“어, 아빠 담배 피웠지?” “아냐 임마, 조금 전에 막내 삼촌이 피웠어, 너 임마 아빠가 지금 뭘 쓰고 있는 줄 알아?” 녀석에게 지금 쓰고 있는 원고를(아빠 컴퓨터 주변에서 얼쩡거린다는) 보여줬습니다. 어깨 너머로 슬쩍 보더니 녀석이 ‘히히’ 웃으며 한마디 툭 던지고 밖으로 나갑니다. “아랫물이 맑은데 윗물도 맑아야지…. 아빠 담배 피우지 마.“ 아빠의 담배끊기는 어떻게 됐냐고요? 녀석도 일주일에 두 번씩 컴퓨터를 하는데 갑자기 끊을 수야 있었겠습니까? 녀석과 ‘굳은 맹세’를 하고 나서 사나흘 정도는 끄떡없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 한동안 녀석 몰래 화장실에서 몇 가치 정도 피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끊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두 달 가까이 담배를 사지 않았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딱 한번 샀습니다. <오마이뉴스> 창간기념일 때 서울에 갔는데 그 때 정신이 없어서 담배 한 갑을 사서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서너 가치 정도 피웠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아궁이 불 속에 넣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단 한 가치도 피우지 않지만 손님들이 찾아오면 한두 가치 정도 피우고 있습니다. 사실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는 담배 맛도 괜찮았는데, 그래도 아빠 건강 생각하는 자식과의 약속인데 굳게 지켜야겠지요. 앞으로요? 그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랫물이 맑아져 가고 있는데 당연히 윗물도 맑아지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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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4 오후 6:50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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