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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보내고 봄을 맞이하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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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며
<포토에세이>가는 것들과 오는 것들 사이에서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 수선화
ⓒ2004 김민수
이제 마지막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육지에는 100년 만에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이곳 제주의 평지는 다소 차가운 바람과 간헐적인 빗발이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무언가 변화의 시기가 되면 격동기가 있듯 계절의 변화도 그냥 덤덤히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샘도 하고, 자리싸움도 하면서 오는 듯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은 앞서가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은 참으로 추웠습니다.

70여년 만에 큰 눈도 내렸고, 날씨가 추워 예년 같으면 끄떡없던 수선화들도 얼어서 꽃을 피우다 말고 한참동안 몸살을 앓아야만 했습니다. 쓰러진 몸을 일으켜 다시 일어나 꽃을 피우는 수선화를 보면서 자연의 힘, 그 작고 연약한 것들 속에 들어있는 강인함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추운 겨울을 견디며 꽃을 피우기 좋은 호시절이 온 것 같은데 피었던 꽃들이 이내 시들거리며 말라갑니다. 그들이 생존하기에는 너무 날씨가 따스한가 봅니다. 함께 피어났던 동백도 아직 생생한데 수선화는 이제 서서히 겨울을 기약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힘들이고 공들여 얻은 것은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생 끝이라고 하는 그 순간에 자신의 화려한 순간들을 놓는 수선화, 그것이 그들의 삶인가 봅니다. 고난 속에서 오히려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라서 그렇게 향기도 진동했는가 봅니다.

▲ 팽나무
ⓒ2004 김민수
봄은 어디에서부터 올까요?

저 깊은 땅 속에서부터 옵니다. 그 깊은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는 봄의 기운을 받아 온 몸에 보냅니다. 그러면 가장 여린 나뭇가지가 먼저 봄의 기운을 받고 초록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손에 쥔 것 없이 하늘을 잡으려는 듯 하늘을 향하던 나뭇가지들에 연한 초록빛이 감돌면 머지않아 그 곳에 푸른 이파리가 돋아날 것을 압니다. 무언가 그릇에 담으려면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하듯, 아무것도 움켜 쥔 것이 없는 저 나뭇가지는 입춘지절에 봄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새로운 변화의 삶을 살아갑니다.

지금은 저 자잘한 나뭇가지들 모두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하면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다시 보려면 늦가을 그들이 가지마다 입고 있던 옷들을 벗어놓을 때에야 성큼 자란 가지들의 군상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때가 되면 다 내려놓을 줄 안다는 것. 그래서 다시금 연한 이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인데 버려야할 때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할 때에 내려놓지 못함으로 갈등하고 번뇌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묵묵히 서있는 나무보다 지혜롭게 사는 것인지요?

▲ 팽나무와 일몰
ⓒ2004 김민수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갑니다. 농어촌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생체리듬이 자연의 리듬을 좇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탓인지 잠자는 시간만큼은 자연의 리듬을 좇아가질 못합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합니다. 겨울에 밤이 긴 이유는 다른 계절보다 추위를 견디려면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니 더 많은 휴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요, 여름에 밤이 짧은 이유는 따스한 햇살 덕분에 많은 에너지들을 공급받으니 조금만 휴식을 해도 그 날 살아갈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곳 분들은 해가 뜨기가 무섭게 일터로 나갑니다. 종일 바다나 밭에서 일하고는 해가 지기 직전에 들어와 씻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합니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이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따스한 정이 가득합니다.

삶의 무게가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다 보니 그들을 닮은 것 같습니다.

▲ 유채(동지나물)
ⓒ2004 김민수
사계절 늘푸른 제주, 일년 열두 달 꽃이 지지 않는 제주.

60년대 이후 제주의 대표적인 꽃이 된 유채는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주로 나물로 먹어서 동지나물이라고 하고, 4월경부터 꽃을 피우는 것은 씨를 받아 기름을 쓰니 유채라고 한답니다.

어쩌면 가고 옴의 연장선상에서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 꽃인 듯합니다. 꽃을 많이 달고 있을 수록에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있는 꽃, 그리고 바람에 세면 셀수록 또 더 깊이 고개를 숙이는 꽃대를 보노라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 벚꽃(2004년3월4일)
ⓒ2004 김민수
이웃집 담장을 넘어 화들짝 피어난 벚꽃의 행렬은 거역할 수 없는 봄이라는 증거입니다. 입춘이 지나면서 참으로 많은 꽃들이 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봄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벚꽃까지 보고 나니 봄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계절의 혼재 속에서 명확하게 봄, 또는 겨울을 가르는 전령사로 저는 벚꽃을 꼽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간혹 역사의 격동기에도 이렇게 분수령이 되는 이들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어른'이라고 표현되는 분들, 존경할 만한 '어른'을 모시고 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는 사회요, 건강한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두리뭉실병에 걸려있는 것 같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으면 나오라!'고 오물을 뒤집어 쓴 이들이 큰소리를 칩니다. 제 눈에 대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의 티끌을 탓합니다.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입니다. 그러면 그 나무람에 털어서 먼지 나는 놈이나 눈에 티끌 들어있는 사람이나 재 묻은 개는 나도 그 놈과 똑같다고 생각하게 되나 봅니다.

겨울 속에 봄이 들어있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완연하게 겨울과 봄을 가르는 분수령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겨울이 아닌 봄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도 미적미적 청산해야 할 것을 끝까지 끓어 안고 가거나, 두리뭉실 넘어가거나 하지말고 명확하게 선긋기를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3/05 오후 3:25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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