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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새겨야 할 '교황의 충고'

한국작가회의/영화연극음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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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새겨야 할 '교황의 충고'
[손석춘칼럼] 공중을 대중과 군중으로 만드는 자 누구인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손석춘(ssch) 기자   
공중이 '군중'이 되었단다. 창간 84돌을 맞은 <조선일보>의 개탄이다. 또 조선일보 비판이냐고 눈흘기지 말기 바란다. 오늘의 조선일보는 단순히 그 신문 내부 구성원들의 신문만이 아니다. 소설가는 물론이고 '균형감' 갖춘 학자들까지 '참여'해 날마다 수 백만 부의 인쇄물을 이 땅에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일보 주장이 지닌 선동성과 허구성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정작 조선일보 내부에 있는 구성원들이나 그에 동조하는 윤똑똑이들이다. 누군가 그 잘못을 지적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옳다고 착각하기 십상이기에 더 그렇다. 이를테면 2004년 3월5일 창간 기념일을 맞아 내보낸 사설 '포위된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보라.

제법 현학적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를 사명으로 하는 독립언론과 절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사명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는 근대 시민사회가 탄생시킨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공중(公衆·public)을 그 토대로 해서 함께 출현한 기관"이라고 선언한다. 옳다. 누가 그 말에 반대하겠는가.

새삼스럽지 않은 <조선>의 선동성과 허구성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운명 공동체라 할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공격받고 위협 당하고 있는가" 물으면서 "이것을 꿰뚫어 보는 투철한 인식이야말로 독립언론을 지켜내고 대의민주주의를 방어해야할 이 시대의 선결(先決) 과제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대목도 참으로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수구신문들을 비판해온 필자의 주장과 전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차이는 그 다음부터다. 조선일보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위기는 양자가 함께 딛고 서있는 공중이 정치권력의 상징 조작에 따라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대중(大衆·mass)과 군중(群衆·crowd)으로 급속히 교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여기서도 현실은 정반대다. 눈을 씻고 현실을 보라. 군사독재시기와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대중과 군중에 머물러 있던 민중이 '급속히' 깨어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 군사독재는 물론이고 일본제국주의와 손잡고 더불어 부귀영화를 누리던 조선일보가 이 땅의 공중을 대중과 군중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바로 그랬기에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조선일보 구독거부운동'이 일어나고, 뜻있는 대학교수들과 문인들이 '조선일보 기고 거부운동'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렇다. 수구신문들의 여론 왜곡과 조작으로 공중은, 그리고 공론장은, 이 땅에서 뒤틀릴 대로 비틀어졌다. 바로 그 공중이 깨어나고 공론장이 이제 겨우 만들어지는 과정이 현 단계다. 욕설과 인신비방이 춤추는 일부 '댓글'의 부정적 현상도 꼭 비뚤게 볼 일만은 아니다. 댓글을 쓰는 이 또한 그 과정에서 진실을 학습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공중의 깨어남과 공론장의 형성을 지금 이 순간도 저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인가. 바로 수구신문이다. 조선일보의 잘못를 비판하면 곧바로 '친정부'나 '친북' 따위로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의 '언론분류법'을 보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언론에 던지는 '충고'

"권력이 기피하는 언론과 총애하는 언론의 지도를 당장 그려낼 수가 있다"고 나선다. 참으로 보기 딱하다. 자신들의 주장처럼 '비판적 독립 언론'을 지향한다면, 왜 권력이 '기피'하거나 '총애'하거나를 사설에서 따지는가. 기피나 총애라는 말 자체가 이미 우리 시대 언론에 대한 자발적 모욕이 아닌가.

거듭 새삼스럽지만, 조선일보가 마치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전담해온 듯 다짐하는 것도 희극이다. 과연 언제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비판했던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비판했다고 자부하고 싶은가. 색깔공세와 지역감정 조장도 비판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다. '비판언론'과 '독립언론'을 부르대며 "외길을 걸어가겠다"는 조선일보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저널리즘은 여론에 막대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집단, 이득, 특정이익단체에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2000년 6월, 언론인들에게 보낸 교황의 이 충고를 새겨듣고 차분히 성찰하기 바란다. 과연 오늘 이 땅에서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집단, 이득, 특정 이익단체"를 누가 대변하고 있는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듯이 바로 수구신문 아닌가. 그 '외길'을 앞으로도 걸어갈 셈인가. 하여, 간곡히 당부한다. 더 이상 공중을 군중으로 착각하지 말라.
손석춘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칼럼니스트 입니다. 1988년 평론 '분단시대 민족언론의 길'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언론비평을 해온 언론비평가입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한겨레> 논설위원입니다. <신문읽기의 혁명>을 비롯한 언론비평서들과 함께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과 <유령의 사랑>을 썼습니다.

2004/03/05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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