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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치권력의 핵심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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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치권력의 핵심이 바뀌어야 한다"
[원로에게 듣는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장윤선(sunnijang) 기자   
탄핵정국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나. 어떤 이들은 비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라며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을 봤다고 얘기하고, 또 어떤 이들은 군사독재 후계자들이 민주주의의 꽃을 또 한번 꺾었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87년 6월항쟁 17년, 그리고 2004년 봄.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 원로들을 찾아 길을 묻는다.... 편집자 주

▲ 강 총장은 "지금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21세기 세대'"라고 말했다.
ⓒ2004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근대 기득권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결국 또 이런 일을 만든 거지요. YS정부도 군사독재세력과 야합했고, DJ정부도 김종필씨와 연합했지요.

그러나 노무현씨는 민간정부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과거 기득권세력과 상관없이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이런 권력에게 위기감을 느낀 기득권세력이 탄핵 같은 무리수를 둔 거죠."

원로 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 그의 눈에 비친 3·12 탄핵의결은 어떤 것일까. 지난 18일 오후 그와 전화인터뷰 했다.

강 총장은 지난 12일 텔레비전에서 탄핵가결이 이뤄지는 걸 보면서 "저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는 정치권력의 핵심이 바뀌어야 해요. 촛불집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노사모라고 할 수 없지만, 지금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야말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씨를 당선시킨 힘이거든요. 나는 그들에게 개혁이니 진보니 그런 말을 붙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들은 새로운 세대지요. 나는 그들을 21세기 세대라고 명명합니다."

"촛불집회 중심세력은 21세기 세대"

강 총장이 규정한 21세기 세대는 이런 것이다. 남북분단과 동서대결의 20세기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세력.

"나는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시작된 촛불집회를 '반미시위'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반미가 아니라 '탈미시위'입니다. 50년간 우리의 한미관계는 비정상적 관계였어요. 한불, 한영과 다른 관계잖아요. 그런 걸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거든요.

한미관계가 정상화되기 전에 우리에게 평화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같은 한미관계라면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세력화 속에서 통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SOFA도 개정하라고 주장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어린 자식을 목마 태워 나오는데 그게 무슨 반미야. 돌 하나도 안 던지는 데…."

강 총장은 시시각각 다채로운 형태로 촛불시위가 일파만파 번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의회민주주의가 꼭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아니거든요.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소환제도를 실시하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거지요."

헌재의 첫 평의가 열리던 날 가진 인터뷰에서 강 총장은 "헌재는 물론 법대로 움직이는 조직이겠지만 세상에 국민을 떠난 법은 없다"며 "헌재가 국민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러 국민생각보다 법이 늦는 경우가 있지만 현명한 재판관이라면 법보다 앞선 국민의 생각이 무엇인지 헤아릴 것"이라고 전했다.

노무현정부 1년과 탄핵정국

강 총장은 지난 참여정부 1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소위 보수적 관점의 엘리트들의 평가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던진 질문이었다. 그의 명쾌한 해석이 신선하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은 말할 나위가 없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대통령은 말할 나위도 없고, YS나 DJ도 군사권위주의 시대에 같이 정치를 해온 사람들로 그들에게도 이른바 '민간권위주의'라는 게 있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걸 깨뜨리는 정권이에요. 그가 서툴러 보이고, 거칠게 보이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것도 권위주의를 탈피해가는 모습이지요.

나는 우리가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거라고요. 구라파의 왕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일본의 왕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 이유는 일본이 구라파보다 덜 민주화 돼있기 때문이라고요. 민주화 될수록 점점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거죠.

그런데 구세력들은 그런 걸 못 보는 거지요. '저게 무슨 대통령이야?' 그런 거지 뭐. 그렇지만 이런 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역사발달입니다. 아니, 역사가 진보하지 않으면 왜 살아?"

강 총장에게 분열과 갈등으로 현재 한국사회를 해석하는 보수기득권 진영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쉽게 답변했다.

"세상이 변할 때 수구들은 언제나 위기의식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말세다, 말세다 해도 세상이 끝나지 않잖아요. 오히려 세상이 나아지고 있죠. 역사를 발전적으로 보느냐, 수구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지식인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강 총장은 이 대목에서 힘을 주어 강조했다.

"지식인이 필요한 건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머무는 학자는 필요 없지요. 현실은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에게 맡기면 잘 할 거예요.

지식인들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한층 더 나은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부 지식인은 잘 하고 있고, 또 일부 지식인은 잘 못하고 있고 그렇지요, 뭐."

"정략적 이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진보진영에서는 민노당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제2의 정몽준쇼크'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 총장의 견해는 무엇일까.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도 결국 약간의 진보성이 있는 정당이 의회의 핵심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런 흐름은 더 혁신적인 진보세력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짧게 보면 이번에 또 손해구나 생각할 지 몰라요. 그러나 이후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정략적 이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길게 봅시다!"

민노당 등 진보진영이 이번 탄핵국면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은 탄핵무효 깃발이 너무 강하게 펄럭여 다른 사회현안들이 거기에 묻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특히 반전평화의 관점에서 이라크파병을 결정한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기저에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강 총장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분단극복 사관 제시한 역사학의 대가
강만길은 누구인가

민중사를 뜻하는 '여사'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1933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분단 극복을 화두로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1978년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 냉전 하에서의 분단 극복의 역사관을 제시해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공감을 샀던 그는 1980년 초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퇴직 당한 바 있다.

대학에서 정년 퇴직한 뒤에는 연구와 저술 활동을 계속해왔고, 2000년에는 역사대중잡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창간했고, 1991년 월간 <사회평론> 발행인, 1999년 청명문화재단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중앙문화대상 학술상, 국민포장(1999), 제13회 단재상(1999)과 제2회 한겨레통일문화상(2000)을 수상했고, 현재는 상지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1990), <역사를 위하여>(1996), <통일지향 우리 민족해방운동사>(2000) 등이 있다.
"이회창이 됐다면 파병을 하지 않았을까?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나는 지난번에 노 대통령을 만나서도 얘기했습니다만, 이라크 파병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는 아마도 상당히 고뇌에 찬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게 바로 동등한 대미관계입니다. 이른바 국익을 앞세우는 보수세력과 대미관계 때문에 노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내렸겠지요.

그러나 나는 노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한다면,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도 규탄할 명분이 없다구요. 일본 사람들도 그때 국익이라고 그랬거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게 더 정의로운 것이냐, 또 어떤 게 더 평화적인 것이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데 가치판단 기준을 둬야 하지 않을까요?"

강 총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뜨겁고 쿨한 화법으로 얘기했다. 끝으로 그가 던진 아쉬움이 내내 가슴에 남았지만, 한국사회에서 강만길 총장 같은 역사학자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이구, 대학총장 자리가 그래요. 나도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요. 글쎄, 어떤 행동을 실천한다는 의미보다는 역사학자가 역사의 현장을 봐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동참이나 구경? 이런 걸 좀 하고 싶은 거죠."

2004/03/19 오후 9:11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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