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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사위가 촛불행사에는 왜?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2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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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지자 막내사위가 촛불행사에는 왜?
전라도 여자와는 결혼도 안한다고 장담했던 그였지만....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모형숙(mogija) 기자   
우리집 막내사위가 촛불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막내사위요? 제 막내 동생의 남편이지요.

제 여동생이 산달을 앞두고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내려왔습니다. 제가 촛불행사에 참석하러 간다니까 여동생도 궁금하다며 집회 장소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그런 동생을 보고 막내 사위가 “내가 태워다 줄께” 하며 슬그머니 말을 꺼냅니다.

▲ 20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동생 부부의 모습. 가운데는 조카
ⓒ2004 모형숙
왜 슬그머니냐구요?

우리집 막내사위는 얼마 전까지도 한나라당 지지파였답니다. 카리스마 때문이라나요. 실은 한나라당보다 이회창씨 지지파였답니다. 율곡비리사건을 파헤친 통쾌한 감사원장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런 막내사위가 탄핵 발의가 될 때만 해도 ‘설마 탄핵이야 시킬까’ 하며 무심코 넘어갔답니다. 그런데 덜컹 탄핵안 가결되는 모습을 보고 큰 허탈감에 빠졌다네요.

어찌됐든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인데, 다수라는 이름으로 몰아붙이는 장면을 보고 그동안 지녔던 믿음에 상처가 났다고 막내 사위는 솔직히 말합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믿은 만큼 배신은 더욱 커진다'는.

그런 까닭에 막내사위는 태어나 서른 되는 동안 처음으로 집회라는 곳에 참석한 것입니다.

지난 20일 익산에서의 집회는 5시, 환한 대낮부터 시작했습니다. 6시를 넘기면 불법집회와 관련해 논란이 있다며 야간 집회 허용을 안한다나요? 50명 가량 모인 사람들은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어둠에 밝힌 200여 개의 촛불이 제 빛을 발했습니다.

90년대 초만 해도 집회의 필수품은 화염병과 최루탄이었는데, 그래서 참석할 때마다 마음 졸이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음이 실감납니다.

이젠,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저녁밥 대신 빵을 나눠먹는 모습, 초를 쥔 딸아이의 손에 '민주주의'라는 피켓을 들려주는 아버지, 잠이 든 아이를 둘둘 싸매고 '너흰 아니야'를 따라 부르는 고운 새댁까지….

평화는 이렇게 소리 없이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런 무리 속에 우리 집 막내사위가 어색한 듯 집회에 끼어들며 농민회 집행부가 외치는 연설에 귀를 기울입니다.

막내사위는 한때 전라도 여자랑 결혼도 안한다고 했던 사람이랍니다. 그런 그가 제 여동생에 반해 5년을 쫓아다니며 3시간 동안 차타고 내려와 2시간 얼굴보고 3시간 올라가는 구애작전을 펼친 결과, 재작년 결혼해 이제 곧 아이 아빠가 됩니다.

무뚝뚝하며 말수도 적은 막내사위는 속정이 깊은 편이지만 정치 얘기가 나오면 괜시리 자리를 비우곤 했습니다.

내심 지역감정이라는 생각을 했나봅니다. 전라도는 억세고 정치적 견해도 다르다고. 하지만 전북지역을 자주 다니며 먹는 것, 입는 것 등 공유하는 것들이 비슷하고 전혀 어색함을 못 느꼈답니다.

사실, 사람 사는 것은 거의 비슷합니다. 제 여동생은 경기도 오산에 살지만 그쪽이 물가가 조금 더 비싸다는 것 외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국회에서 일하는 높은 분들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 논리 아닙니까. 정치적 당리당략에 서민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색깔론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지역 감정이, 어색하면서도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는 자신이 당선되면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입김에, 우리 지역만 챙길 것이라는 서민들의 순진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른 동안 처음 참석하는 촛불집회가 우리 집 막내사위와 제 여동생에게는 무척 쑥스러웠을 것입니다. 아직도 써늘한 날씨 탓에 여동생은 ‘배가 당긴다’며 촛불행사가 끝나기 전에 먼저 일어섰지만, 가기가 아쉽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태어날 2세에게는 좋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참석하고 싶답니다.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애칭을 ‘튼튼이’라고 했다는 제 여동생의 2세가 살아갈 미래는 '날치기 국회, 방탄 국회' 같은 무능한 세상이 아닌, 진정 서민을 위해 일하는, 겸손한 국회의원들이 판치는 그런 세상이길 기대해 봅니다.

다음은 지난 20일, 전북 익산에서 가진 촛불행사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2004 모형숙

ⓒ2004 모형숙

ⓒ2004 모형숙

ⓒ2004 모형숙

ⓒ2004 모형숙

ⓒ2004 모형숙

2004/03/21 오전 12:1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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