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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사람들이 떠난 유치면 금사리 마을엔 백로가 없다. 지난 해까지 백로, 왜가리가 수백 마리씩 찾아와 알을 낳고 부화시켜 한 세대를 이루어 돌아갔는데, 금년엔 백로 떼가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2월 27일 아침 일찍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유치에 흑두루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카메라 가방을 챙겨 나서면서 흑두루미라는 것에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유치에 도착하니 흑두루미는 없고 왜가리 한 무리가 파헤쳐진 논 가장자리에 앉아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아마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왜가리가 흑두루미처럼 보여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이틀이 지나자 왜가리들은 한 마리씩 예전에 살았던 금사리 마을의 느티나무로 자리를 옮겨 다시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 금사리 마을엔 지난 50년대부터 백로, 왜가리떼가 수십 년간 찾아왔다. 해마다 왜가리 떼가 먼저 찾아오고 일주일쯤 지나면 백로 떼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벌써 보름이 지났는데도 유치마을엔 백로 떼가 보이지 않는다.
2000년 어느 여름날 탐진댐 본댐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부산면 지천리 마을에 하얀 백로가 찾아왔다. 마을 사람 모두가 고향을 떠나 전국으로 흩어지고 나순 할머니와 마덕림 할머니 두 분만 고향에 남아 아직 이사를 가지 않고 있었다. 늘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녔던 마덕림 할머니를 어렵게 만나 마을 뒷산에 백로가 왔다고 하니 할머니는 “인자 참말로 좋아져불란가 보네, 볼래 저런 흑-한 새가 오믄 동네가 잘살게 된다고 했는디,” 할머니는 말을 하면서도 이미 고향을 쫓겨 나간 고향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란디 그라믄 동네가 잘살게 됐어야 하는디 동네사람 몽땅 쫓아 내불었응께 뭔 일인지 모른당께” 혼자 말처럼 말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집들이 뜯겨나가면서 그 다음해인 2001년부터는 지천리 마을 뒷산에 찾아왔던 백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여름이면 탐진강을 따라 흰 백로 떼가 떼를 지어 낮게 비행을 하며 유유히 강물처럼 날던 모습은 이제 장흥에서는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해가 바뀌면 언제나 변함없이 제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왔던 철새들 마저 떠나버린 고향엔 마지막으로 찾아온 왜가리 떼만 금년 여름을 이곳에서 위태롭게 보낼 것이다. 왜가리, 백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근처에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수백 년을 살다가 떠난 마을 터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서 이름 모를 새와 작은 풀벌레와 야생동물들이 마을에 찾아왔다. 하지만 금년 10월이면 모두 물 속으로 잠기면서 한동안 마을과 사람들의 빈자리를 차지했던 작은 곤충들과 잡초들도 결국 사람들의 빈자리를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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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9 오전 11:35 ⓒ 200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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