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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혔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얼굴에 눈은 풀렸으며, 채 5분도 앉아 있지 못하고 이내 누워버렸다.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아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5일 새벽 0시30분경 경북 안동의 한 거처에서 만난 '천성산 지킴이' 승려 지율의 첫 모습이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하루 전날 경남 창원에 머물다가 안동으로 내달렸다. 밤 12시 넘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안동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한적한 시골마을이 나왔다. 도로 가에 승용차를 세워놓으니 마을의 모든 집들은 소등한 상태라 깜깜했다. 논두렁 건너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이 한 채 보였다. 더듬거리며 집 앞에 섰다. '스님' 하고 불렀더니 기척이 없다. 서너번 불렀더니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스님을 돌보고 있는 보살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그 보살은 "방금 전까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조계종 호법 스님들이 막았다"고 말했다. 지율의 거처가 알려진 뒤 4일 저녁까지 경찰은 물론, 안동시장까지 찾아와 안부를 물었고 언론사 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는 것.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섰다. 방안 공기는 따뜻했다. 지율도, 기자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왜 왔어요, 할 말도 없는데…"라며 운을 뗀 지율은 "그래도 천성산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취재해온 기자니까 반갑다"며 손을 내밀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 식구들이 다 하는 싸움이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사람을 앞에 놓고 무슨 말을 물을 수가 없었다. 지율이 하는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만약에 대법원에 계류 중인 도롱뇽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우리나라에서 30년 동안은 개발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소송이다. '그까짓 도롱뇽이냐'고 했던 소송인데 지금은 대법관 전체회의에서 다루어질 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시간이 조금 지나니 방 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깎은 부처상이 지율의 맞은편에 있고, 방 바닥에는 무와 과실을 잘게 썰어놓고 말리고 있었다. 방바닥 그릇에는 큼지막한 무 3개가 담겨 있었다. 하반신은 마비되었지만, 손을 쓸 수 있어 기력을 되찾기 위해 운동 삼아 무와 과실을 잘게 썰었다는 것이다. 지율은 "우리 사회는 여론과 확률로 움직이기보다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율이 지난 해 9월부터 다시 단식에 들어간 이유이기도 한 말이다. 천성산 공동환경조사를 약속해 놓고 고속철도시설공단과 정부측에서 불공정행위를 계속했고, 정부와 몇몇 언론이 약속위반과 왜곡보도를 하는 데도 가만히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해 지율만이라도 문제제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5년간 하면서 한번도 두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도롱뇽이 뭐냐고 하지 않았느냐. 소송 1심과 2심에서 졌을 때 변호사를 비롯해 모두 힘들어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5년간 안해본 일이 없지 않느냐. 참 많은 일을 했다." "오늘부터 묵언" 지율은 5일 오후 동국대 일산불교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다. 지율은 "오늘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말은 했는데, 이제부터는 묵언이다"고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기자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자는 말을 꺼냈지만, 지율은 고개만 내저었다. 기자는 더이상 요구하지 않고 일어났다. 지율은 천성산 공동환경조사위원에서 탈퇴한 뒤, 지난 해 9월부터 혼자서 단식을 시작했다. 경기도 신륵사에 머물던 지율은 지난 해 12월 9일경 언론에 거처가 노출되면서 이곳 안동의 한 거처로 옮겨왔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지율이 말했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 우리 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바란다. 언론도 그렇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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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어디서,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왜 뭇 생명의 공존과 가치를 주장하는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하였는지 궁금하지만 현재의 저로서는 세세히 알지는 못한다. 정말 미물 중의 미물이라 할 도롱뇽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지, 아니면 명분에 등 떠밀린 어리석음의 산물인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 명분이란 것은 마(魔)와 같은 사회적 편견일 수도 있고 제도적으로나 의식적인 가치의 미비일 수도 있습니다.
'뭇생명'이란 말을 썼습니다. 인간에게만 생명이 있는 게 아니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에도 생명은 있고 가치가 있다는 말에 정색하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있어 '뭇'이란 접두어는 필요할 때만 이용되는 입발림용일 때도 많습니다.
가끔은 '나'라는 인간의 생존 자체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손의 주체임을 실감해 섬뜩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리적인 작용이라고는 하지만 먹고 싸대니 거기서 배출되는 똥오줌이 맑은 물을 오염시키고, 연명하기 위해 음식을 먹고 옷들을 걸친다지만 그것들은 다름 아닌 무엇인가를 죽였거나 파손시켜 얻은 결과물입니다. 생태계의 순환을 들먹이고 자정능력 운운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생존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도 엄밀히 말해 그 자체가 살생이며 환경오염이고 자연파괴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사인이라도 하듯 연필을 들어 하얀 백상지에 방하착(防下着)이라는 글을 수십 번이고 휘갈겨 써 봅니다. 놓으라 했는데, 착(着)을 놓으라고 했는데 혹시 스님께서는 중생들의 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착을 잡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스님께서는 생명존중을 모토로 환경파괴를 저지하려 온몸을 던지셨습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고리타분하고 어리석게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수신이라 할 당신의 생명보존조차 명분에 따라 마음대로 결론지으려 한다면 그건 순리가 아니고 자가당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한다거나 알 것 같다'라는 말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심오하게 고민하고 있는 당사자를 김빠지게 하는지를 한두 번 정도는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설만큼, 암 덩어리만큼이나 커다란 고뇌나 걱정꺼리도 삼자의 입장에서는 손톱 끝에 박힌 가시만큼도 아프지 않고 성가시기만한 게 사실이니 해답을 얻기 위한 고민이나 궁리는커녕 노력조차 하지 않거나 한다고 하더라도 시늉에 가까우니 밋밋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감히 생명존중이나 자연환경에 대해 스님의 염려나 고뇌를 이해한다거나 알겠다는 표현으로 얼버무리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막연하나마 정말 지고지순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 가치의 인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던지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솔선하고 계심에 경배의 예를 올릴 뿐입니다. 저 역시 불자로 입문하며 가장 기본이 된다는 의례로 수계를 받았습니다. 수계식에서는 불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로 오계(五戒)를 다짐하게 하였습니다. 살생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삿된 마음을 갖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 이렇게 다섯 가지가 불자가 지켜야 할 기본 계율이 되는 셈인 모양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뜻을 미처 헤아리지도, 어림하지도 못하는 범부의 어리석음이 시공을 초월한 스님의 숭고하고도 고매한 가치를 재단하려드는 우를 범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이승에서의 가치와 자연의 섭리는 승속(僧俗)에 걸쳐 따로따로가 아닌 불이(不二)로 대동소이할 거란 생각입니다.
남들은 구걸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당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그 용기와 거칠 것 없는 맑은 혜안으로 이쯤에서 모두를 어우를 수 있는 반야의 용선을 내보이고 그 반야의 용선에 희망과 화합의 돛을 활짝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있어 스님의 힘찬 젓가락질을 두 눈으로 목견하고 카메라에 담았던 사람으로, 수도승들이 화두를 깨치는 그 찰나에 맛본다는 환희심으로 다시 한 번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힘차게 젓가락질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싶음을 진지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치료하고 회복되는 과정을 거쳐 건강해진 모습, 생면과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고민하며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삶에 에너지를 얻기 위해 힘차게 젓가락질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당신의 모습을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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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5일 오후 6시5분] 병원 치료 거부... 동료 스님 "설득 후 치료 시작할 것"
세영(신륵사 주지) 스님과 김영권(동국대 일산병원 중환자실) 실장은 이날 오후 4시 10분께 병원 5층 중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율의 상태 등에 대해 기자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김 실장은 지율 스님이 혈압과 맥박은 정상이지만 체중이 급격히 줄어 31kg밖에 되지 않는 다고 밝혔다. 또 근력저하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가 매우 힘든 상태다. 이 때문에 지율 스님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알아듣지만, 자신이 말하는 데에는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명이 위독한 상태가 아니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갑작스럽게 문제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답해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지율 스님은 입원 후에도 단식을 풀지 않고 있다. 김 실장은 "스님이 지금 필요한 것은 수분공급인데도 정맥주사를 거부하고 있다"며 "동료 스님들과 동생을 통해 지율 스님이 물을 섭취하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머지 상태는 정밀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며 "다행히 스님이 혈액 검사는 수긍을 해 채혈은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율 스님은 또 병원 치료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영 스님은 "지율 스님이 아직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며 "함께 (천성산 터널 반대) 활동한 스님 등 가까운 이들이 설득하고 이해시켜 치료를 받게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경애 불교환경연대 국장은 "추측컨대 지율 스님은 천성산 공동조사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천성산 생명들과의 약속 때문에 또 다시 단식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세영 스님은 언론에 지율 스님을 공개하려 했으나 다른 스님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다시 비공개로 입장을 바꿨다.
지율, 동국대 일산병원 도착 지율은 5일 오후 3시 15분께 동국대 일산병원(경기 고양시 일산 동구)에 도착해 3층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지율은 회색 털모자를 쓰고 이동침대에 실려 구급차에서 내렸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 언론 공개를 피했다. 구급차에는 진관, 세영, 각천스님 등이 동석했지만, 취재진의 물음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지율이 머물고 있는 병실은 일체 공개되지 않은 채 세영은 3시 45분께 지율의 근황과 단식 여부에 대해 브리핑할 예정이다. [1신 : 5일 오후 1시 35분] 지율, 병원으로 후송 '천성산 지킴이' 지율이 5일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후송됐다. 지율은 지난해 9월부터 음식을 끊은 채 단식을 해왔으며 12월 9일부터는 경북 안동의 한 거처에서 지내왔다. 지율은 당초 입원을 거부했지만,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과 불교환경연대 수경 상임대표, 신륵사 세영 주지 등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부담 때문에 지율의 경북대병원 입원을 검토했다가 애초 일정대로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오전 10시경부터 지율의 거처 주변에는 취재진과 불교환경단체, 천성산대책위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지율 여동생과 손정현 천성산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세영 주지, 지관 불교인원위원회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지율의 병원 후송작전이 진행됐다. 오전 11시20여분경 동국대병원 의료진이 도착, 지율의 건강상태를 먼저 파악했다. 이후 지율은 세영 주지의 등에 업혀 앰뷸런스까지 이동했다. 지율은 시종일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율을 태운 앰뷸런스는 오전 11시45분경 출발했다. 지율이 그동안 거처했던 방에는 나무 불상이 놓여 있었으며, 책 <초록의 공명>이 놓여 있었다. 주방에는 지율이 마시다 만 것으로 보이는 물병 10여개가 보였다. 세영 주지는 "지율 스님이 단식한 지 100여일이 지났는데, 수경 스님 등이 '환경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며 여러차례 설득을 폈다"고 말했다. 지율을 검진한 의료진은 "탈수가 심한 상태이나 그나마 혈압은 정상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상태는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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