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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권자 신성미(34·가명)씨를 만나기 위해 강서구 등촌동 주공 임대아파트로 향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빈곤층 700만명. 2006년 새해를 여는 한국 사회의 화두는 양극화다. 지난 3일 오후 신씨의 집을 찾았을 때 아들인 바람이(가명)는 낮잠을 자고 있었고, 딸 소망이(가명)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람이와 함께 장애인 복지관에 다니는 이웃집 정연이(여·가명)와 정연이 엄마가 놀러 와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신성미씨는 상당히 주저했다. 자기보다 형편이 못한 이웃들이 훨씬 더 많은데 자신이 나서는 것이 과연 맞을까라는 고민 때문이었다. 1만원 들고 도망치듯 들어간 쉼터 결혼 전까지 신씨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았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으로 집안이 기울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 했고 신씨도 20대 중반까지 직장 생활을 했다. 신성미씨의 삶이 변화를 겪기 시작한 것은 아들 바람이를 낳고부터다. 사지가 멀쩡한 아이가 돌 무렵이 돼도 뒤집기를 하지 않자 이상해서 개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아이 상태가 이상하다며 큰 병원에서 종합 진단을 받으라고 권했다. 큰 병원에서 MRI를 찍었지만 의사는 "아이가 정상이 아니다"는 의견을 낼 뿐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바람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신씨는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했다. 일은 하지 않았던 남편의 폭력이 상습화되고 거기다 바람까지 피우기 시작한 것. 참다 못해 이혼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남편의 간통 현장을 확인하고 "이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이혼을 한 것이 2003년 겨울이었다. 그 해 여름 신씨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친구에게 꾼 돈 1만원을 반바지에 넣고 무작정 집을 나와 쉼터로 간 적이 있다. "한 방 안에 세 가정 정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쉼터에서 전혀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정말 밥 세끼 빼고는 해주는 게 없었던 셈이죠. 아이들한테 쵸코파이, 과자 하나 안 사줬어요. 큰 아이가 먹을 것에 집착하면서 점점 이상하게 천덕꾸러기로 변했어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다른 쉼터로 도망쳐 가듯 옮겼어요." 처음 머물렀던 쉼터에서 그는 '분노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폭력과 간통까지 한 남편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쉼터에서는 심리적인 치료를 해주기보다는 강사를 불러 매듭을 만드는 교육을 시켰다. 신씨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 안정을 찾았다. 심리치료와 가족치료가 진행되면서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되찾았다. "아이들과 굶어죽게 생겼는데 장애진단서를 어떻게..."
"수중에 1000원도 없어서 이웃들한테 돈을 꿔서 살았어요. 그런데 수급권자 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두 달을 기다려서 겨우 수급권자가 됐어요. '급하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너무 관료적으로 이런저런 서류를 요구하는 거예요. 동사무소에서는 만 2살이 넘은 바람이 상태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진단서가 담긴 서류를 원했어요. 진단을 받으려면 검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잖아요. 수녀님들한테 도움을 받아 겨우 후원금 100만원을 마련해 1급 장애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어요." 물론 동사무소 직원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신씨는 "아이들하고 굶어죽게 생겼는데 서류만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신씨는 3인 최저생계비 70만원을 받아 살았다. 10kg에 가까운 아들을 데리고 장애인 복지관을 찾아 다녔다. 거동도 하지 못하는 바람이를 업고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통에 무릎에 항상 파스를 붙이고 다녀야 했다. 하월곡동이 철거되면서 갈 곳이 없었던 그는 후원금과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긴 돈을 합쳐 강서구 등촌동 임대 아파트의 보증금 200여 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전 운이 좋은 편이예요. 이렇게 임대 아파트에라도 살고 있으니까. 만약에 천주교에서 운영했던 그 쉼터로 가지 못했다면 저와 아이들이 어떻게 됐을까요? 아이 둘은 시설에 버리고, 전 노래방 도우미나 하면서 누군가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겠죠. 전 사실 양극화 해결이 거창한 뭔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끝없이 추락하는 사람들에게 완충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봐요. 주눅들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관료화되지 않은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왜 생색내듯 주나요?"
신성미씨는 몇 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 듯 했다. 그래서 세상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현재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방법에 대해 끝없이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됐다. 강서구로 이사를 오고 나서 바람이와 함께 장애인 복지관 다니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관 시설을 이용하면서 아쉬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장애인 복지관에 수급권자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한다. 그리고 정작 필요한 치료는 진료비가 전혀 지원이 되지 않는다. 매달 20일께 신씨의 통장에는 3인 최저생계비 76만 8120원과 장애인인 바람이 보육비 14만원이 지원된다. 이렇게 들어온 90만원 가운데 20만원은 바람이의 치료비로 사용된다. "바람이가 4살이 됐지만 말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언어 치료가 필요해요. 그 외에도 꼭 받고싶은 치료가 있는데, 의료 수가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어요. 그런 세밀한 부분에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장애아의 엄마로 그리고 수급권자로 살면서 사회복지예산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사회복지 예산이 늘어나서(GDP 대비 2002년 1.5%→2005년 1.8%) 더 많은 혜택이 제공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먼저 예산과 집행에 대한 수용자들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이라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사회복지 예산도 그래서 필요한 거고. 그런데 수급권자들은 항상 주눅들어 있고, 주는 쪽에서는 매번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생색내고.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사회 복지 예산을 눈먼 돈으로 아는 경우도 많다고 봐요."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하고 싶다
"얼마 전 TV를 봤는데 300만원을 벌어도 빠듯하다는 말을 듣고 사실 허탈했어요. 90만원 수입 가지고 아이들 교육을 시킬 생각을 하면 참 아찔하죠. 소망이가 학교에 가면 90만원 수입도 깎이게 되는데 바람이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급권자의 자녀로 사회의 편견 속에 살아야 할 소망이를 생각하면 신성미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웃 엄마가 그러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수급권자 아이들을 대놓고 불러서 햇반 하고 라면 남은 것을 준데요. 그것 들고 오면서 아이가 엄마한테 '선생님이 왜 이거 나한테 주는 거지'라고 물으면 엄마는 너무 괴로운 거죠. 수급권자가 무슨 주홍글씨도 아닌데." 아이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없는 이들에게 사회가 세 번쯤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신씨는 강조했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바람이나 소망이에게 세 번쯤의 기회가 주어져야 다른 평범한 집 아이들과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신씨는 바람이와 소망이를 키우면서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딱 정해 놓은 것 같아요. 시각 장애인들은 꼭 안마사를 해야만 하나요? 바람이가 치료를 해서 뭔가 일을 할 수 있게 돼도 지금처럼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면 열심히 병을 치료하는 이유가 없잖아요. 장애인들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디자이너 될 수는 없는 건가요?" 신씨가 말하는 양극화의 해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완충장치를 마련해 주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스템이 지원된다면 '뭐가 두렵겠냐'는 것이다. 빈곤의 끝에 있는 신성미씨와 바람이, 소망이 세 식구에게 지금 필요한 약은 바로 희망의 단초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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