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보다 먼저 결혼한 딸아이에게는 이제 돌 지난 지 몇 달 안 되는 아들이 있다. 자기 자식, 자기 손자 안 예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하는 짓 하나 하나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외삼촌이 되는 아들도 어찌나 조카를 예뻐하는지 어쩌다 조카를 만나면 잠시라도 품 안에서 떼놓지를 않는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했다.
“남자 여자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들 낳고 싶어요”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다면서 아들을 낳고 싶다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왜 그런지 물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딸 겁나서 키우겠어요. 아들은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하겠지만 딸은 자기가 잘 한다고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세상이 만만치 않으니까.”
심드렁한 아들의 말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주제에 별 소리를 다 한다 싶기도 했지만 아들 딸 다 키워본 나로서는 일견 이해가 갔다. 아들 딸 모두 대학 다니면서 집에 똑같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솔직히 아들은 어디서 뒹굴든 자기 알아서 하겠지 제쳐놓는다 싶더라도 딸은 뭔 일 생기는가 싶어 걱정이 달랐던 게 사실이다.
뜬금없이 딸 키우는 게 겁난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성폭력 가해 연령이 낮아졌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그 낮아졌다는 나이가 단순히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 아니라 13세 이하 가해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13세 이하라면 초등학교 6학년 이하라는 말이다. 난 이 뉴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 볼 수 있다는 데 슬퍼지기까지 했다.
서른이 다 돼가는 아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방에 숨겨놓았던 도색 잡지를 나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나 역시 당황스럽긴 했지만 최대한 겉으로 감정을 표내지 않고 무심하게 넘어 갔었다. 오히려 아들이 너무나 당황했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아들은 부끄러워 하며 그 때 무심하게 넘어가줬던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사고(?)도 치지 않은 아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10년만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13~14년 정도 지나니 오히려 훨씬 어린 아이들이 단순히 간접 경험으로 호기심을 해소 하는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세상이 온 것이다.
가장 표면에 드러나는 이유로 인터넷을 들 수 있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한 시간 정도 인터넷 앞에 앉아 있으면 어른도 낯 뜨거운 장면들이 무작위로 뜨니 애들에게는 음란물로부터 도무지 안전한 장소가 없다. 이유야 어쨌든 이런 현상을 애들 잘못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절대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 해야 마땅하다. 초등학생과 성폭력. 도저히 어울리지도 않고 어울릴 수도 없는 말을 붙여놓은 것은 그야말로 그런 세상을 만든 어른들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교육이 마찬가지겠지만 기본은 가정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10살 남짓한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제는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끊임없는 관심과 대화로 자기 자신의 몸이 소중하고 그만큼 다른 사람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할 것 같다. 학교도, 사회도 해야겠지만 그 시작은 가정이어야 한다.
* 경남도민일보는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입니다. 기사게재일자 : 200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