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일 동안이나 있다보니 주둔지 같다" 12일 늦은 오후 전남 영암군 시종면 월롱리. 육군 황금독수리부대 비호대대 6중대 장병 20여명이 7m 높이의 비닐하우스에 올라 구조해체작업을 벌이고 있다. 토마토와 국화를 재배하던 자동화비닐하우스 700평이 폭설로 붕괴된 현장이다. 주인 김용복(50)씨는 "'위험하니까 올라가지 마라'고 말렸는데도 저렇게 하니 미안해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전한다. 김씨는 "간식거리라도 좀 주려했더니 '그러면 병력을 빼겠다'고 해 물밖에 챙겨주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거듭 밝힌다. 전남 영암에서 폭설피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황금독수리부대 장병들은 모두 600여 명. 장병들은 호남지역에 폭설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16일 이 곳에 도착했다. 원래 부대 주둔지는 경북 경산. 한 장병은 "27일 동안이나 이 곳(전남 영암)에 머무르다보니 이곳이 주둔지 같다"고 말한다. 부대배치 후 3개월 만에 폭설피해 현장으로 지원을 나온 이진희 일병. 하지만 이 일병의 모자에 새겨진 계급장은 아직도 이등병이다. 지난 1월 1일자로 진급했지만 피해복구지원을 나와 있다 보니 '작대기 하나 더 붙일' 짬이 없었던 탓이다. 중대장인 김용섭 대위는 "이 일병 같은 사례가 각 소대별로 약 13명은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김 대위는 "부대에 있었으면 나름대로 진급식도 하고 그랬을 텐데…" 하며 미안한 표정으로 웃는다. 이 일병은 "계급장은 아직 바꾸지 못했지만 진급해서 기분은 좋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자란 이 일병은 "농사일은 근처에도 가본 적 없지만 이렇게라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다"고 수줍게 말한다.
김정광 일병은 "오리 축사로 쓰던 하우스의 비닐을 뜯어내는 게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일병은 "농민들이 피해를 많이 입어서 마음이 아프고,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일손을 빠르게 놀린다. 강당 바닥에 스티로폼 깔고 자며 비닐하우스 851동 철거
장병들의 현장복구를 돕는 기보선 시종면 산업계장은 "장병들이 안 왔으면 피해농가가 따로 인건비를 지출해서라도 자력으로 복구해야 했을 것"이라며 "때 아닌 폭설로 시름에 잠긴 주민들에게 장병들이 장기간 일손을 도와주는 것 자체가 뜻밖의 큰 선물"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부대 관계자는 "따로 복귀시한을 정해 두진 않았다”며 "피해농가에서 'OK' 할 때까지 작업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장병들은 낮엔 영암군이 연결해준 피해현장으로 달려가 비닐하우스 해체작업 등을 하고, 밤엔 영암 군민회관과 마을회관 등에서 휴식을 취한다. 강당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아 냉기를 막고 부대에서 가져온 군용 모포를 덮고 자는 것이 장병들이 취하는 휴식의 전부다. 식사는 인근 향토사단에서 지어준 밥을 수송·배급해서 해결하고, 간식은 영암군에서 주는 컵라면이나 빵이 전부다. 피해농가에서 주는 간식도 받지 않고 있다. 김 대위는 "도와드리러 왔지 폐끼치러 온 것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아직까진 부상을 입었거나 큰 병이 난 장병은 없다. 하지만 장기간 복구작업을 돕다보니 피로가 계속 누적돼 감기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소위 임관 후 첫 대민지원을 나온 오형범 소위는 "대원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복구작업을 해줘서 미안할 뿐"이라며 "군인인 만큼 하루빨리 복구작업을 끝내고 부대로 돌아가 총을 잡고 훈련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폭삭 무너져 내린 비닐하우스와 함께 희망마저 무너져 복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폭설피해 농민들. 정치인들의 요란한 방문과 생색내기 자원봉사도 끊겨가고 있지만 한 달 가까이 함께 고생하고 있는 장병들을 보며 농민들은 마음을 다잡고 있다.
|
입양엄마 가 쓴 동화 <고슴도치 아이>를 읽고 (0) | 2006.01.17 |
---|---|
'옹고집' 옹기쟁이의 삶 (0) | 2006.01.15 |
지금 재래시장에 가면 (0) | 2006.01.14 |
더디고 힘들지만 희망을 만듭니다 (0) | 2006.01.13 |
내 아이도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요 (0) | 200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