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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9대째 전수받아 400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옹고집' 옹기장이 이학수(51·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씨. 그는 오늘도 직접 물레를 발로 돌려 그릇을 빚고 부엽토의 일종인 약토에 재를 섞은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워내는 전통 방식 그대로 옹기를 만든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세월도 변했고, 그가 평생을 만들어온 그릇도 그 모양이나 쓰임새가 오지랖 변했지만, 이씨는 오늘도 이처럼 고집스럽게 물레를 돌리며 그릇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그가 땀 흘려 빚고 구운 낙엽색깔 그릇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안에는 숱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크게 깨우친 놈, 적게 느끼고 느리게 배우는 놈, 큰 지식을 가진 놈, 얄팍한 재주로 슬금슬금 살아가는 놈.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간그릇'들의 모습이 옹기를 빚는 그의 손끝에서 투영된다. 하지만 이씨는 크다고 더 각별히 여기거나, 작다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크다고 해서 녀석들만 쓰이는 것도 아니고, 작다 해서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기에 그렇다. 비가 오면 빗물을 받는 데야 큰 독이 제격이겠지만, 작은 그릇은 손 가까이에 두고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가 다듬고 매만지는 옹기를 바라보노라면 그의 인간에 대한 삶의 철학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자기 쓰임에 맞는 곳에서 이웃에게 도움을 주며 알차게 살아가자는 것. 그리고 겉모양만으로 사람을 쉽사리 판단하거나 차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그는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통옹기전시회를 열었다. 옹기를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장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신세대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고, 건강과 심성을 맑게 해주는 전통 그릇이라는 점을 알리고파 해마다 한두 차례씩 꼭 여는 전시회였다. 앞서 인사동 통인화랑과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서 열었던 전시회에 이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이번 전시회에는 달항아리, 소래기, 두리물항 등 우리네 선조들이 써왔고, 생활그릇으로 자리매김했던 200여점의 옹기들이 선을 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옹기의 용도도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 같았으면 우물물을 담아두거나 물건을 보관했을 저박기나 널벅지 같은 대형 항아리들이 요즘에는 정원을 장식하는 인테리어 용기로 많이 이용되고 있지요." 설명을 이어가던 장인의 눈가에 문득 서운함이 스쳤다. 그릇이란 자고로 뭔가를 담아두는 게 그 쓰임의 본 용도이건만, 요즘은 원래의 사용처에서 조금씩 멀어져 탁자나 정원 미관용으로 쓰이는 것이 안타까운 탓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그는 근래 들어 새로운 용도의 옹기를 만드는 게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조상 대대로 써 내려온 민족 고유의 그릇이지만, 현대인의 생활양식이나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요즘 시대에도 불편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옹기를 만들겠다는 뜻에서다. 옛날에야 주로 뜰에 묻거나 장독대에 두고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마당도 없는 집이 태반이라 아파트 베란다나 실내에 두고 써도 큰 불편이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실생활에 맞춰 냉장고에 들어가는 옹기로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제작이 까다롭기는 해도 이렇게 변화를 주다보면 누구든지 일상에서 쉽게 질그릇을 사용하게 되고, 전통그릇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순간, 옹기가 앞으로 그의 손을 통해 어떠한 모습으로 진화해 갈 것인지 자못 기대되었다. 자리를 일어서며 옹기 제작방식도 많이 현대화되고 있는데 선생은 왜 아직도 고된 전통방식을 고집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해답을 '자연'에서 찾았다. 얼마나 자연에 충실한가가 사람에게 건강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한다는 해석이었다. 또 그렇게 만들어야 인간에게 도움과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기계에게 자신의 옹기를 내맡길 수 없나 보다. 옹기 한 꾸러미를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 그리 예쁠 것도 없고 매끄러운 자태를 한껏 뽐내는 우아함도 없지만, 시골 아낙처럼 푸근하고 투박한 옹기가 빚은 이의 생애와 함께 어느덧 감동이 되어 가슴에 안겨 있었다. 인스턴트 같은 세상에서 오늘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숨 없던 옹기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 그의 열정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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