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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3·1민속문화제와 텃세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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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3·1민속문화제와 텃세

- 관리자 (http://ww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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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창녕 영산에서는 매년 3월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3·1민속문화제`가 펼쳐진다. 1919년 3·1만세운동과 영산 출신 `24인의 결사대`를 기리기 위해 만든 3·1민속문화제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영산줄다리기와 영산쇠머리대기를 비롯, 다채로운 문화·예술·민속행사가 열려 경남의 대표적 민속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특히 예부터 이어져온 전통민속놀이인 줄다리기와 쇠머대기는 옛 영산고을(계성 장마 남지 영산 부곡 길곡 도천면)을 동·서군으로 편을 나눠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주민화합의 공동체적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줄다리기와 쇠머리대기에서 이긴 지역은 그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져옴에 따라 양 지역 주민들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비축해둔 볏짚으로 어른 허리굵기 만한 줄을 만들고 기와집보다 높은 쇠머리대기 틀을 만들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유년시절 3·1민속문화제가 열리면 동네친구들과 길곡서 영산까지 20리길을 걸어 구경가곤 했다. 보릿고개가 극성을 부리던 그때, 집안에서 돈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때라 부모님께 용돈 달라는 말은 엄두도 못내고 버스비를 용돈 삼아 두어시간을 걸어 한낮에 도착하면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야시장에서 그당시 처음 나온 삼립호빵 하나로 허기를 채우고 둘러보는 3·1민속문화제, 어린 나이에 볼 것도 신기한 것도 참 많았다.

 집채만한 황소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싸우는 듯한 쇠머리대기도 좋았고 용의 몸이 저만큼 됐을까 싶을 만큼 길고 굵었던 줄다리기도 볼만했다.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에 좋았던 것은 가설극장의 영화와 서커스 공연이었다. 없는 용돈에 돈 주고 들어갈 수는 없고 공연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 경계가 느슨해질 즈음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 보는 영화나 서커스는 정말 환상이었다.

 하지만 3·1민속문화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은 무척 힘들었다. 배 고프고 다리 아픈 것은 애초부터 각오했다 치더라도 영산서 도천을 거쳐 길곡까지 돌아오는 길에서 맞닥뜨리는 다른 동네 아이들의 텃세는 정말 괴로웠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마을어귀에 나와 놀고있던 다른 동네 아이들은 평소에 못보던 아이들이 지나가면 붙들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니 집이 어디고” “니 몇살이고” 등 시비는 예사고 별난 형들은 `통행세` 명목으로 호주머니까지 털기도 했다. 그러다 호주머니에 먼지밖에 없다는 걸 알고는 꿀밤 세례를 퍼붓기 일쑤였다. 그러구러 집에 도착하면 말 없이 멀리 갔다 왔다고 부모님께 또다시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영산3·1민속문화제가 열리면 만세운동이나 쇠머리대기·줄다리기 보다는 이웃 마을 아이들의 텃세가 먼저 생각나 슬며시 웃음짓곤 한다.
이종구기자 jg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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